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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코인 받고 군사기밀 넘긴 특전사 대위가 징역 10년만 받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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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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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사건 공판에 들어가 보면 보통 피고인석에는 중년 남성이 앉아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586 운동권' 출신인 것만 같죠. 직업도 대동소이합니다. 국보법 위반이라는 어마어마한 혐의여도 정작 한 일은 통일이나 북한 관련 인쇄물 제작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늘 비슷한 국보법 재판 풍경이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공작원을 만나 엄청난 군사기밀을 넘겨주고, 말 그대로 간첩 짓을 한 '나쁜놈 재판'은 정말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안보 최전선에 있는 특전사 대위가 2급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사안들을 북한 공작원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넘겼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거짓말처럼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소위 '김정은 목도 딸 수 있다'는 13특수임무여단 소속 중대장이 자신의 부대 기밀을 텔레그램으로 넘긴 겁니다.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김모 대위가 왜 이런 일을 벌이게 됐는지, 도대체 그가 넘긴 기밀은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5천만원에 2급 비밀 팔아넘긴 30대 특전사


반삭발에 수의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선 30대 청년. 옆집 청년처럼 보이는 그는 2015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13특수임무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대위였습니다.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이미 1심 군사법원에서 징역 10년에 벌금 5천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넷 도박빚에 시달리던 김씨는 2021년 대학 동기로부터 '보리스(텔레그램 대화명 )'라는 인물을 소개받았습니다. 김씨는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어쨌든 2021년 11월 KJCCS 단말기(한국군 합동지휘통제체계. 전·평시 실시간 작전 상황 공유, 작전 지시 하달 등에 쓰임) 부팅 영상과 로그인 화면을 보리스에게 넘기는 것으로 범행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부팅 영상과 로그인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어 넘겨줬을 뿐(?)이지만, 보리스는 차츰 더 대범하고 전문적인 범죄를 요구해 왔습니다. 김씨에게 손목시계형 몰래카메라를 주면서 이 장비로 기밀 문서들을 찍도록 한 겁니다. 김씨는 보리스의 요청대로 움직였습니다. 김씨는 2022년 2월까지 12번에 걸쳐 이런 식으로 군사 기밀을 팔아넘겼죠.

13특수임무여단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시행되는 대량응징보복체계(KMPR)의 일환으로, 지도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decapitation strike)' 수행을 위해 확대개편된 부대입니다. 김 대위가 팔아넘긴 문건 중에는 유사시 이를 어떻게 시행할지를 다룬 '전시 작전계획', '전투세부시행규칙'뿐 아니라, '적(敵) 인물·장비 식별 평가' 문건도 포함됐습니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은 5천여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이 전부였고요.

김씨가 탐지하고 수집해 팔아넘긴 정보는 대부분 2급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들이었습니다. 군사기밀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2급 비밀은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위험을 끼칠 것으로 명백히 인정되는 가치를 지닌 정보를 말합니다. 하지만 김씨는 '적 인물·장비 식별 평가'의 내용은 이미 일반인에게 알려진 사실이라며 군사상 기밀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한 군사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2022. 10. 25 중앙지역군사법원 선고 中
위 문서에는 여단의 전시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전시 타격 및 제거 대상인 인물과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장비가 기재되어 있는데… 여단이 임무 수행 시 제거해야 할 우선순위가 번호로 부여되어 있으며… 여단이 임무를 수행하는 지역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통일부에서 발간된 자료(북한 기관별 인명록 등)나 언론 기사에 공개된 자료의 내용이 위 문서 내용과 일부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나 이러한 자료만으로는 여단의 임무 대상과 그 순위 및 임무 수행 지역을 특정할 수 있거나 알 수 없으며, 여단이 이를 외부에 발표하거나 알린 사실도 없으며 이를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위 문서는 여단의 임무 등이 적시되어 있고, 이를 통해 아군의 정보수집 능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에 유출되는 경우 전·평시 적으로부터 기만을 당하는 등 여단의 임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즉, 문서의 극히 일부분이 공개되긴 했지만 김씨가 통으로 넘긴 자료에는 그 이상의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고 우리 군의 공격 우선순위까지 담겨 있으니, 이 자료가 만약 북한 손에 들어갔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매복해 있던 북한군에게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김씨는 자신에게 접근 권한이 없는 군사기밀까지 '탐지'해 빼돌리는 등 적극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항소심 판단도 군사법원의 판단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1심과 마찬가지로 보리스가 건넨 비트코인의 대가성도 명백하다고 봤고요.

2023. 12. 14 서울고법 4-3형사부 선고 中
(피고인은) '적 인물·장비 식별 평가' 제목의 문건을 국방망 이메일을 통해 받게 됐고, 이를 알게 된 보리스로부터 위 문건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같은 날 17시경 출력물을 촬영한 사진을 텔레그램을 통해 보리스에게 전송했습니다. 피고인은 '적 인물·장비 식별 평가' 문건의 내용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군사상 기밀은 반드시 법령에 의해 기밀사항으로 규정됐거나 명시된 사항에 한하지 아니하고, 필요에 따라 기밀 사항은 물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음으로써 이익이 있는 사항도 해당합니다. '적 인물·장비 식별 평가'는 여단의 임무와 목표 및 상황 변화, 분석과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공개된 자료와 일부 일치하지만,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여단의 임무 대상과 그 순위 및 임무 수행 지역을 특정할 수 있거나 알 수 없으며 여단이 이를 외부에 발표하거나 알린 사실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 내용 자체에 일부 시중에 알려진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정만으로는 군사상 기밀이 아니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군사기밀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2급 비밀에는 특수공작계획 또는 보안이 필요한 특수작전계획, 군사령부급 이상까지 모두 포함된 편제 또는 장비 현황, 중장기 전력 정비 및 운영·유지 계획, 암호화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북한 지도부와 북한군 장비에 대한 내용이 일부 대중에 공개돼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고 군에서 별도로 분석한 자세한 정보, 제거 우선순위 등이 포함돼 있기에 이 내용은 2급 비밀에 해당한다는 거죠.


중국 동포? 北공작원? 보리스한테 비트코인 받고 대가성 없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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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마어마한 기밀을 넘겨 놓고도 김씨는 무죄를 항변했습니다. 보리스는 북한 공작원이 아닌 데다 보리스가 대가를 바라고 비트코인을 준 게 아니고, 자신은 이 돈을 노트북 컴퓨터 등 군사자료 제공을 위한 장비를 구매한 비용에 썼다는 겁니다.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 모두 단호히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군사자료 제공을 위한 장비를 구매했다고 하지만 그 장비는 김씨의 소유이므로 보리스로부터 받은 금품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보리스와 일면식도 없이 군사 자료를 넘겨주고 대가를 받으려는 목적에서 알게 됐고, 이 사건 당시에도 보리스의 이름이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등 개인적 친분관계가 없었으므로 보리스가 피고인에게 사교·의례를 위해 금품을 지급할 이유가 없었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명절 축하금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후 이를 반납하지 않았으므로 보리스의 일방적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군사자료 탐지 수집 또는 제공을 용이하게 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받은 금품은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했고요.

그런데 왜 1, 2심 법원은 군사기밀보호법만 유죄로 인정했을까요. 왜 국보법은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까요? 대가성도 명백하고 넘긴 자료들도 국가안보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고급 정보인데요. 바로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인지 아닌지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보법은 반국가단체, 즉 북한에 대해서만 적용됩니다.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이거나 최소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사실이 증명됐어야 김씨에 대해 국보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군 검찰은 당초 보리스를 현역 군인을 포섭해 작전계획 등 우리 군의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하는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즉 정찰총국 공작원이라고 봤습니다. 또 평소 "일 없습니다"와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보리스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김씨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이 되긴 해도 군 검찰의 증명이 '합리적 의심'을 완벽히 해소하지는 못했다고 봤습니다.

2022. 10. 25 중앙지역군사법원 선고 中
…북한 공작원은 포섭된 군인에게 '군사교범, 지도, 작전계획 등'의 자료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였던 것과 달리, 중국 공작원은 '미국, 일본, 중국과 관련된 자료' 등 자국과 관련국에 관한 정보를, 일본 정보원은 우리 군에서 생산하는 대북보고서, 북한 동향 등을 요청하였습니다. …(중략) 피고인은 2021. 9.경 보리스가 KJCCS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해커라는 점을 통해 북한 해커조직 구성원임을 인식하였고, 보리스가 "일 없습니다"라는 북한식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였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군 검찰은 보리스의 신상이나 국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출한 바 없고…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의심이 드는 사정은 대체로 이와 반대되는 사실 및 사정이 존재하므로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보리스가 캄보디아의 불법 도박장, 북한 사이버 해커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도 제출된 바 없습니다.

…(중략) 피고인이 보리스를 북한 공작원인가 의심했던 근거인 "일 없습니다"와 같은 북한 말투는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투입니다. 피고인은 일관되게 보리스로부터 자신이 러시아 정보국의 브로커라고 하는 것을 직접 들었기 때문에 가끔 북한 공작원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대체로 러시아 정보국이라고 믿었다고 진술하였고, 이 법정에서는 보리스로부터 북한과 관련된 자료 외에 주변국의 정보도 요청받았다고 진술하였으므로,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이 아닌 러시아 정보국 또는 주변국 정보국의 브로커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군 검찰이 2심에서도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을 만큼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완벽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2023. 12. 14 서울고법 4-3형사부 선고 中
당심에서 보리스가 북한 공작원임을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로 통신보고서가 제출됐지만… (비트코인용) 계좌로 금품이 송금됐는데 북한과 관련된 계좌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북한과 관련됐다는 연관성을 인정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군 검찰의 주장은) 여전히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측에서 북한 관계자를 포섭해 관련 정보를 탐지하지 않는 이상 북한 공작원의 신원을 완벽하게 증명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직접 증거를 손에 넣을 방법은 김씨가 그랬던 것처럼 북측 현역 군인에게 넘겨받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무기징역형도 선고할 수 있는 국보법 위반에 대해 쉽게 유죄로 인정할 순 없었겠죠. 국보법은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이 국가안전에 대한 중대한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하여 한정된 사람에게만 취득이 허용되고 적국 또는 반국가단체에 비밀로 하여야 할 사실, 물건 또는 지식인 경우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합니다. 김씨가 무기징역형이 아닌 10년형을 선고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 때문에 국가안보에 치명적 위험이 발생했다면서도 1심의 10년형 선고를 유지했습니다.

2023. 12. 14 서울고법 4-3형사부 선고 中
(중략) 하지만 피고인은 군사학과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하면서 주기적으로 보안 및 방첩교육을 받았음에도 인터넷 불법도박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죄질이 불량합니다. 그리고 이사건 군사자료가 여러 가지 국가안전보장 및 이익과 관련된 자료이고,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국가 안위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이 소속된 부대의 전시 작전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도 큽니다.  

이번 선고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동서고금 통용되어 온 법조계 격언에 따른 판결이었습니다. 다만 '찝찝함'은 여느 국보법 사건과 달리 짙게 남습니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김씨가 국보법이 '반국가단체', 즉 북한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허점을 이용해 무기징역형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지, 의심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사기밀보호법은 정보를 빼돌린 대상이 동맹국 혹은 우방국인지, 잠재적 적국인지 가리지 않고 적용됩니다. 군사기밀을 빼돌린 것 자체만으로도 엄격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 대상이 잠재적 적국이라면 동맹국에 빼돌린 것보다 더 무겁게 처벌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멸공의 시간'을 사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명확한 피아식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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