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맞춤 논문' 앞세운 모래업계…받아준 '법원·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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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해사(海沙, 바닷모래)'는 건물의 골격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필수 골재다. 바다는 공공 소유물이기 때문에 해사 채취의 양과 범위는 법에 따라 엄격히 제한된다. 하지만 수익 극대화를 노린 업체들은 거침이 없었다. 허가받지 않거나 권한을 타 업체에 넘긴 상태에서 무단 채취하는가 하면, 갖가지 핑계로 과도하게 퍼올리는 등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CBS노컷뉴스는 국내 해사채취 업계의 어두운 '민낯'을 연속보도를 통해 고발한다.

[무법지대로 전락한 바닷모래 채취④]
과적 적발 급증 시기…부피증가 연구 의뢰
발주처는 해사채취 업체들로 구성된 단체
法·檢, 논문 결과 수용…범죄 규모↓ 영향
초과채취 알리바이로 '물다짐' 제시 논란도
'고봉밥' 채취 의혹, 어민 피해호소는 기각
전문가 "연구 샘플 부족, 변수 너무 많아"
논문 연구진도 "일반화 무리라고 의견 내"
협회지회 "연구 의뢰는 업체들이 주도해"

연구용역 표준계약서. 문서 캡처연구용역 표준계약서. 문서 캡처
▶ 글 싣는 순서
[단독]인천 앞바다 모래 업체, 형사처벌도 무시하는 '배짱 채취'
[단독]"기록 없이도"…'마구잡이 채취'한 바닷모래업체들
[단독] '허수아비' 감독기관?…바닷모래 불법채취 '복마전'
④[단독]'맞춤 논문' 앞세운 모래업계…받아준 '법원·검찰'
(계속)

허가량보다 과도하게 바닷모래(해사)를 퍼 올려 막대한 돈을 챙겨 온 의혹에 휩싸인 해사채취 업체들이 스스로 낸 '맞춤형 논문'을 초과 채취의 명분으로 내세워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재판부와 사정당국은 별다른 검증도 없이 논문을 인용함으로써 범죄 규모를 줄여주기까지 해, 불법 해사 채취가 업계에 만연해지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해사업체들, '28.8%' 부피↑ 맞춤형 논문 제작

 
23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용역계약서에 따르면, 한국골재협회 인천지회는 지난 2016년 한 대학 산하기관에 연구를 맡겨 이듬해 '세척에 따른 바다모래 밀도 변화' 논문을 펴냈다. 발주자명에는 지회장 직함, 참여업체 이름들과 함께 직인이 나란히 찍혀 있다.
 
연구계획서에는 '세척, 배수 완료 후 모래를 운반차량에 실을 때 겉보기 체적이 바지선 선적 체적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돼, 채취량과 판매량 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연구 목적이라고 적혀 있다.
 
이에 따른 연구 결과도 바다에서 해사를 퍼와 육지에서 세척, 배수, 건조 등의 처리공정을 거친 뒤 덤프트럭에 싣고 나면, '모래 부피가 28.8% 늘어난다'는 게 핵심이다.
 
모래를 퍼온 이후 판매하는 단계에서 그 양이 일정 정도 늘어난다는 업체들 주장의 근거를 학술적으로 공식화한 국내 유일의 연구 결과다.
 
연구계획서에 바닷모래 부피 변화 현상에 관한 과학적 검증 목표 내용이 담겨 있다. 문서 캡처연구계획서에 바닷모래 부피 변화 현상에 관한 과학적 검증 목표 내용이 담겨 있다. 문서 캡처
연구가 이뤄진 배경은 용역 계약시점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인천해양경찰서의 모래 운반선 과적 단속 실적을 보면, 만재흘수선(선박 화물탑재 안전 한계선)을 초과해 적발된 건수는 2014년 0건, 2015년 2건에서 2016년 30건으로 15배 널뛰었다.
 
이는 해당 연구 발주 시점과 맞물린 시기로, 해사 초과 채취와 부당 이익 편취에 대한 적발 위기감에 사로잡힌 업계가 알리바이를 마련하려던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논문을 발주한 지회 소속 해사채취 업체들 중에는 불법 채취 혐의 등으로 형사처벌 받은 곳들도 포함돼 있어, 이해당사자가 포함된 단체가 연구 의뢰 주체인 게 적절하냐는 물음표가 붙는다. 지회는 해사채취 업체들로 구성된 단체로, 13개사 중 10곳이 인천 업체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칫 논문이 과다 채취의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검증도 없이 모래 부피 증가 인정해준 '법원·검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제 이 논문은 올해 8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성진해운·성진소재의 골재채취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불법 초과된 해사 채취량의 수치를 28.8% 만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연구 결과에 대해 특정 바다구역에서만 실험된 것으로 과학적 한계가 있다면서도, 반박할 자료 역시 없다는 취지 등으로 제한적으로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심층적인 검증 절차 없이 논문을 직접 인용하면서, 범죄행위(과다 채취)의 규모를 줄여준 것이다.
 
논문이 허가량 이상의 불법 채취에 관한 혐의를 줄여준 사례도 있다.
 
인천에 있는 해사채취 업체 A사 소속 임원 등 2명은 초과 채취된 해사를 판매해 얻은 수익을 세금계산서에 누락(매출 누락)해 개인계좌로 빼돌리는 수법 등으로 8년여간 8억 4천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아 현재 인천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날(오후)이 1심 선고일이다.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이 사건 공소장(인천지검)을 보면, 혐의 내용은 피고인들이 '해사 세척 후 건조 등을 거치면 모래운반선 검정량보다 양이 늘어나는 점'을 이용해 허가량보다 초과 채취하고 허가량만큼만 세금발행을 한 뒤 남은 양을 빼돌려 비자금으로 챙겼다는 게 요지다.
 
잉여 수익을 개인 비자금으로 챙긴 혐의만 기소에 반영된 것으로, 불법 초과 채취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나 법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반쪽 기소'로 읽힌다.
 
결국 심층적 검증도 거치지 않은 논문이 일반적 개념처럼 거듭 인용됨으로써, 용역비 2천만 원짜리 연구 결과가 수십 억 원대의 초과 채취 당위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근거가 된 셈이다.
 

해상서 '고봉밥' 채취 논란도…어민 호소 기각한 法

 
바닷모래 채취선.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바닷모래 채취선.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
논문 외에 업체들이 해사 초과 채취를 합리화하는 근거는 또 있다. 해사가 물을 머금고 있어 이를 감안해 더 퍼 올리면 20~30%가량 부피가 더 늘어나 보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규정상 해사채취선은 한계 기준(선창, 배 테두리 막이)에 맞춰 모래 적치량 검정을 받는데, 이를 어기고 모래를 고봉밥처럼 수북이 채취해 해양생태계 훼손으로 어획량 감소 등의 피해를 입는다는 어민들의 민원제기가 지속돼 왔다.
 
이에 업체들은 물이 빠지면서 평평해지는 이른바 '물다짐' 현상을 들어 반박 해온 상황.
 
채취 과정에서 양이 많아 보인다는 의혹에 물다짐을 이유로, 세척 후 출고량이 증가하는 데 대해서는 부피가 불어난다는 논문을 근거로 맞서는 양상이다.
 
고봉밥 형태 채취의 경우 물과 불순물 등으로 불어나 보이는 것인지, 이를 고려하고도 과도한 채취량인지 여부 등은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이로 인해 생업을 위협받는 어민들이 피해를 호소해도 사실상 묵살되는 현실이다.
 
인천 인근 해역 어민단체들은 옹진군청을 상대로 1984년~2017년 해사채취업체들의 채취사업으로 어업피해가 발생했고, 감독기관인 군청이 점사용료 수입의 절반 이상을 수산자원 조성에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를 했으나, 지난달 인천지법 민사16부(부장판사 장민석)가 기각했다.
 
초과 채취의 객관적 증거가 제출되지 않은 데다 설사 허가량 이상의 채취가 있었더라도 군청을 발주자로 볼 수 없고, 담당 공무원의 고의·과실로 볼 수도 없다는 게 주된 기각 사유였다.
 
인천지역 한 어촌계 관계자는 "꽃게 같은 수산물들이 산란하는 곳을 마구잡이로 퍼 올리면 그걸로 먹고 사는 우리들은 어쩌라는 것이냐"며 "기관이나 사법부는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우리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답답할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전문가 "특정 지역+적은 샘플, 보편성↓"

 
바닷모래를 채취한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바닷모래를 채취한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
학계 일각에는 해사 부피 변화 논문을 보편 적용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견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가출연기관 선임연구원 출신인 B박사(해양·건설분야)는 "후속 처리 과정에서 모래 밀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은데, 이 논문의 연구는 샘플 개수가 너무 적고 특정 지역에 한정된 실험이다"라고 진단했다.
 
인천의 1개 업체 채취 구역에 대해 네 가지 경우의 바지선 채취 사례를 기준으로 평균값을 도출한 것으로, 현상의 대표성을 인정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B박사는 "그 장소에서는 큰 틀에서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증가량의 수치를 확정적으로 인정하기에는 변수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채취하는 곳마다 모래의 질이 다르거나 배에 선적 후 물이 빠지면서 다져지는 정도에도 차이가 날 수 있고, 트럭에 실을 때 흩뿌림으로 담으면 알갱이 사이 공간으로 부피가 늘어나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 "해상에서 모래를 퍼담을 때는 최대한 다져서 채우는 반면, 뭍에서 세척 후 트럭에 실을 땐 엉성하게 흩트리는 상황을 가정한 것 아니냐"며 "(모래 부피 증가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배에서 천천히 물을 빼며 다졌을 때 부피를 비롯해 지역적 특성, 트럭에 싣는 방식 등 여러 변수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사례별 변화 값을 산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채취 허가를 바지선에서 퍼 올리는 양을 기준으로 받으면서, 판매할 때는 부피가 늘어나는 현상을 강조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구진도 "일반 적용 무리"…협회지회 "업체들이 의뢰"

 
법원 사진. 연합뉴스법원 사진. 연합뉴스
논문을 펴낸 연구진 측 역시 관련 내용이 범죄 규모를 축소하는 근거로 오용된 데 대해 "예상치 못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해사 불법 채취에 관한 사건에 대해 '특정 지역에 한정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까지 제시했다는 것이다.
 
논문 연구를 맡은 한 관계자는 "(연구결과가 판결에 반영된 데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던 사안으로, 일부 인천 연안부두 모래 채취 상차 과정에 대해서만 연구한 것"이라며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새롭게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의견서를 냈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조차 일반화를 우려했는데도, 논문의 논리가 그대로 법적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장소와 시기에 따라 모래의 질이 다르기 때문에 소송의 대상이 된 모래 질 등을 고려해 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며 "연구 진행 중 발주처 등에서 추가 요청이나 의견을 줬던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안에 대해 계약서상 발주처인 한국골재협회 인천지회 측은 협회 차원에서 연구를 추진한 게 아닌, 업체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지회 관계자는 "3개 업체가 연구 의뢰한 것으로 확인된다"면서도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지만, 협회가 그런 연구와 논문 제작을 추진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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