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제공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미움이나 슬픔 따위가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끈기 있게 들여다 본다"는 평가를 받은 한여진 시인의 시 48편을 골라 엮은 첫번째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가 나왔다.
문학동네시인선 201번째인 한 시인의 이번 시집은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라는 제목과 새하얀 표지가 건네는 첫 느낌처럼 여러 시의 배경이 하얀 눈으로 가득하다. 양('어떤 공동체'), 흰고래('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밤은 없고')부터 순무('순무는 순무로서만'), 밀가루 반죽('미선의 반죽'), 하얀 문('검은 절 하얀 꿈')까지 주요 이미지가 온통 하얀색이다.
고즈넉한 정경에 힘을 실어주는 흰색은 화자와 만나 또다른 사유를 가능케 한다.
그의 시는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낸 두부처럼, 부드럽게 내려와 모든 것을 감싸안는 순백의 눈처럼 희고 고요한 힘을 뽐낸다.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시인선 202번째로 출간하는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는 오래된 테이프를 재생하듯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 요소들을 배치해 읽는 이를 공감과 향수 가득한 시세계로 끌어들인다.
체념과 무기력만 남은 듯한 세상에 희망이라는 농담을 던지며 자신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는 청년 세대를 그리는 시인답게 뒤섞인 여러 감정, 지나치게 무거워진 마음, 잡념, 나 자신. 그런 것들을 세수하듯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풀어 나오는 청량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던진다.
조금만 견디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어떻게 현재를 견뎌내고 있을까.
삶의 무게를 떨쳐내고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청년의 초상이 '샤워젤과 소다수'의 청량한 향기로움으로 그려진다.
임유영 '오믈렛'
2020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아침' 연작은 기존의 익숙한 분법과 다른 낯선 목소리의 힘을 발했다.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뭐야. 이게 시인가? 근데 왜 자꾸 생각나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 임유영의 시다.
'오믈렛'은 임 시인의 첫 시집이다. 죽음과 탄생, 이야기와 다양성, 시쓰기에 대한 의식과 여성성 등이 알알이 녹아 있다.
1부('살아 계신 분을 묻어드릴 수도 없었고')는 임 시인의 시쓰기의 기원에 대한 힌트를 드러낸다. 2부('가서 돌 주우면 재미있을')는 꿈인 듯 현실인 듯 아릅답고도 쓸쓸하고 그만큼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3부('한데 섞인 흰자와 노른자의 중립적인 맛')과 4부('어디 가는 어린애와 어디 갔다 오는 개')는 그의 강렬했던 '아침' 연작에 새로운 제목을 달아 선보이는 죽음 이후 다시금 깨어나는 듯한 반복과 각성의 장면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한 결과로 탄생한 색다른 창조성을 느끼게 한다.
한여진·고경선·임유영 지음 | 문학동네 | 각 152쪽·176쪽·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