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반면 그동안 유럽 시장의 강자였던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에 점유율을 내주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업계에서는 유럽 시장 내 한·중 배터리 기업 간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 걸로 내다보면서 가격 경쟁력 강화와 신규 시장 선점 등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29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셀 업체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20년 15%에서 올해 상반기 39%로 급증했다. 반대로 한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68%에서 58%로 감소했다. 한국 업체들의 경우 2021년 점유율 70.6%로 정점을 찍은 이래 계속해서 하락세다. 50%를 넘어가던 한·중 격차는 이제 불과 19% 남짓이다.
그렇다고 유럽의 전기차 수요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8월 유럽 내 배터리 전기차(BEV) 판매량은 19만 4천 대로 전년 동기 대비 103.2% 성장하며 고점을 높여가고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판매량은 전년보다 15.7% 감소했지만, 자동차 1대당 배터리 셀 탑재 용량이 4~5배가량 큰 BEV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평가다.
유럽 배터리 시장 내 한국 업체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걸로 전망된다. 먼저 중국 CATL의 삼원계(NCM) 배터리 셀을 탑재하고 있는 지리자동차·상하이자동차 등 중국 완성차 OEM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이 최근 17%로 급상승했다. 여기에 유럽 완성차 제조업체들의 LFP 배터리 채택도 본격화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그동안 중국 업체가 시장을 주도해왔다. 한국 업체들이 주력 생산하고 있는 NCM 배터리보다 가격 면에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업체들의 유럽 시장 내 점유율 회복 방안으로는 우선 가격 경쟁력이 거론된다. 전기차 구매가 성능 중심에서 가격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도 이같은 방안에 힘을 싣는다. 일찍부터 값싼 LFP 배터리 개발을 선도해온 중국 업체들에 맞서려면 한국 업체들도 늘어나는 LFP 배터리 수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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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 배터리 업체들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2026년부터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이 차량용 LFP 배터리 양산 목표를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외에 삼성SDI와 SK온도 전기차용 LFP 배터리 양산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다.
유럽이 아닌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그중 대표적인 시장이 북미다. 중국 배터리 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유럽과 달리 북미 시장은 미·중 갈등의 여파로 중국 견제가 심하다. 반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게 북미는 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조성돼 있다.
특히 북미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 기준 침투율이 7%에 불과해 다른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세가 기대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미국 진출을 노리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현지 밸류체인을 구축해야 하는데,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합작사 설립과 신규 수주에도 유리한 환경이다.
하이투자증권 정원석 연구원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무게 중심은 점차 중국으로 기울어지고, 국내 업체들의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북미 지역 배터리 셀 증설 규모의 약 75%를 차지할 한국 업체들은 향후 북미 전기차 시장 확대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