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박지성과 이영표. 연합뉴스2011 카타르 아시안컵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설이자 버팀목이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동시에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 축구는 오랜 기간 대표팀 주전 자리를 차지해 왔던 두 전설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우선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맡았던 측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엔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김보경(수원 삼성) 등 이른바 런던 세대가 뒤를 이었다.
박지성만큼의 영향력은 아니었지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1980년대 후반 출생 선수들이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대표팀 주전 자리를 꿰차며 한국 축구 공격을 한동안 이끌었다.
왼쪽부터 손흥민, 이강인. 류영주 기자이후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더불어 이재성(마인츠), 권창훈(수원 삼성) 등도 이 포지션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쳐 나갔다. 런던 세대에서 1990년대 초중반 출생 선수들로 자연스레 대표팀 공격형 미드필더 계보가 이어진 것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홍현석(KKA 헨트) 등도 이 포지션에서 선배들의 뒤를 이을 든든한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왼쪽부터 윤석영, 김민우, 박주호.
왼쪽 풀백을 봤던 이영표의 뒤를 따를 선수를 발굴하는 것도 당시를 기준으로는 어렵지 않았다. 런던 올림픽에서 맹활약한 윤석영(강원FC)을 비롯해 박주호, 홍철(대구FC), 김진수(전북 현대), 김민우(청두 룽청) 등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생까지, 왼쪽 풀백 선수 풀이 넓었기 때문이다.
이 세대 선수들은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울리 슈틸리케, 신태용, 파울루 벤투 감독이 재임한 대표팀에서 거의 돌아가며 레프트백 자리를 맡았다. 이 기간 열린 3번의 월드컵에서도 왼쪽 풀백 자리는 이 선수들의 몫이었다.
이번 국가대표에 소집된 이기제(왼쪽)와 김진수. 류영주 기자·연합뉴스우려스러운 점은 벤투 감독 재임 기간에 축구선수로서 전성기 나이를 보낸 이 세대 선수들이 새 감독이 들어선 현재 대표팀에서도 주전과 후보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생까지 대표팀 문을 두드리고 있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10여 년이나 뒤처진 상황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9월 A매치 영국 원정 당시 "대표팀은 현재 세대교체 중"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 자리만큼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소집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부름을 받은 선수가 또다시 1991년생 이기제(수원 삼성), 1992년생 김진수이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부임 이후 총 4차례 대표팀을 소집했다. 이기제는 클린스만 체제에서 모든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진수도 부상으로 제외된 9월을 제외하고 모두 선발됐다.
지난 7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한민국과 일본의 결승전에서 박규현이 일본 선수와 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이 둘을 제외하고 클린스만 체제 대표팀을 맛본 전문 왼쪽 풀백은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왼쪽 풀백도 '가능한' 강상우(베이징 궈안), 박규현(디나모 드레스덴), 설영우(울산 현대) 등이 선발됐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2001년생 박규현이 지난 6월 이 자리에서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박규현은 이후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해당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신선한 왼쪽 풀백으로 거듭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박규현은 대표팀 9월 소집은 물론, 이번에도 대표팀에 입성하지 못했다.
이기제. 연합뉴스
반드시 새 얼굴을 뽑아 큰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존 선수들과 비교해 사령탑의 성에 차는 선수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 한 자리라도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발탁하고, 평가전을 통해 실험은 해볼 수 있다.
10월 A매치 상대는 튀니지와 베트남이고, 객관적 전력상 베트남은 약체로 분류되는 상대다. 세대교체가 눈에 띄게 늦어지고 있는 이 포지션에서 더 오랜 미래를 함께할 선수를 평가해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전임 감독이었던 벤투 감독은 지난 2020년 10월 올림픽 대표팀과 대결을 앞두고 소집한 대표팀 명단에 왼쪽 풀백으로 당시 K리그에서 활약했던 이주용(제주 유나이티드), 심상민(포항 스틸러스)을 넣었다. 결과적으로 이 선수들이 월드컵까지 동행한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선수들을 골라 써보기에 딱 좋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했던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류영주 기자
당장의 목표가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인 것은 맞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계약 기간이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까지이며, 이 대회가 최종 목표임을 염두하고 이를 대비해 미리 팀을 꾸려야 한다. 이기제와 김진수가 3년 뒤엔 각각 35세, 34세의 나이다.
김진수는 지난 11일 파주 NFC에서 K리거 중에서도 새 얼굴이 아시안컵에 갈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김진수는 그러면서 "감독님께서 대표팀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얘기를 하셨다. K리그 선수들과 외국에 있는 선수들이 얼마만큼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