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날 시가행진하는 지대지미사일 '현무'. 사진공동취재단"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는 없지만, 세계 최고 수준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성공한 데 대해 축하드린다." (2020년 7월 23일, 문재인 대통령)
3년 전 현무-4로 추정되는 고위력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성공 뒤 국군통수권자의 입에서 나온 이 발언은 한국이 거부적 억제 수단인 대량응징보복체계(KMPR) 전력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지만 군은 현무-4, 5는 물론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등장한 '고위력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도 공식 명칭과 제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군이 아껴둔 이러한 KMPR 전력은 현행 '3차 핵 시대'의 초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서로가 핵무기를 가지면 상호억제가 가능하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대전의 단상이다.
베일 속 '고위력 탄도미사일'…'보복적 억제' 추구하는 KMPR
올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나온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 이동식 발사차량(TEL) 자체는 현무-2C와 같지만 뒤쪽의 방열판이 더 크며 발사관 길이도 더 길다. 연합뉴스
군은 지난 9월 26일 국군의 날 기념행사와 시가행진에서 비닉(庇匿) 사업으로 분류돼 제식명조차 공개되지 않는 '고위력 탄도미사일'을 처음으로 대중에 선보였다.
우리 군은 지대지 미사일로 '현무' 시리즈를 운용하는데 현무-1은 구형 나이키 허큘리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현재는 모두 퇴역했다. 현무-2A·B·C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현무-3는 순항미사일(CM)이다.
2017년 6월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에서 발사되는 현무-2C(위), 올해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나온 현무-2C(아래). 연합뉴스그 이후 등장한 고위력 탄도미사일의 정확한 이름과 제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내용이 알려졌을 뿐,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공개한 바는 없다. 국군의 날에서 공개된 미사일은 현무-2C와 같은 이동식 발사차량(TEL)을 사용하는 미사일이었는데, 이는 탄두중량 2톤에 사정거리 800km로 알려진 현무-4, 또는 현무-2를 기반으로 고위력 탄두를 장착한 다른 미사일로 추정된다.
2021년 9월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 속 고위력 탄도미사일의 모습. 이는 현무-2에 고위력 탄두를 단 버전이다.국방부가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공개한 현무-5의 발사 영상
또다른 고위력 탄도미사일로는 현무-5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22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영상을 통해 발사 모습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같은 해 국정감사 발언에 따르면 탄두중량 8톤에 총중량은 36톤인데, 미국의 미니트맨 3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필적하는 무게다.
물론 세간에 알려진 '전술핵급'이라는 비유와 달리 고위력 미사일의 위력이 실제 전술핵급은 아니다. 핵무기는 수백킬로그램 탄두로도 킬로톤(kt) 단위 폭발력을 낸다. 1kt은 TNT 1천톤을 모아놓고 한 번에 터뜨리는 위력으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15kt이다. 재래식 무기로는 핵무기의 '파괴력'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
고위력 현무 미사일이 노리는 것은 관통력이다. 물리학 기본공식상 'E=1/2mv^2', 즉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과 질량을 곱한 값의 절반이다. 즉 1차적으로 속도, 2차적으로 질량이 늘어날수록 운동에너지는 커진다. 발사할 때 질량을 크게 하면 탄도미사일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뒤, 그 질량에 따라 위치에너지가 더해지면서 종말단계 낙하에서 속도가 더 빨라진다. 땅에 격돌해서 일단 깊게 파고든 뒤에 폭발하면 지하 시설에 주는 피해는 커진다.
같은 폭발이라도 공중폭발과 지표면에서의 폭발, 지하에서의 폭발은 각각의 목표에 작용하는 파괴력이 전혀 다르다. 미국이 지하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만든 '벙커버스터' 폭탄의 원리도 비슷하다. 대부분의 중요 시설을 지하화한 북한 지도부를 노리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는 이유다. 김정은 입장에선 아무리 못해도 자주 옮겨다녀야 할 뿐만 아니라 미사일에 일정한 피해를 입어 전쟁 수행에 지장이 생긴다. 김정은 자신이 사망할 수도 있다.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크다는 점을 인지시키는 보복적 억제(deterrence by retaliation)다.
'핵에는 핵으로만 대처'는 옛날 얘기…비례적 대응을 통한 '확전우세' 도구 된 KMPR
세간의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핵무기에는 핵무기로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맞는 이야기였다. 현재는 아니다.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KMPR이 한국의 '와일드 카드'로 떠오른 이유다.
학계에선 핵 시대를 3가지로 나눈다. 1차 핵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다. '공포의 균형'이 통했던 시기다. 냉전이 끝나며 2차 핵 시대가 개막한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냉전 시대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던 국가들뿐만 아니라 북한 등 신흥 행위자들까지 나섰다. 이들 국가의 정치적 상황은 불안정하다. 테러나 사고에 의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커졌다.
현재는 3차 핵 시대의 초입으로 사이버·전자전, 비핵 정밀타격(극초음속 미사일 등),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상대의 핵무기를 찾기가 더 쉬워졌고, 굳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됐다. 이러면 서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억제에 불확실성이 커진다. 당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재래식 전쟁이 핵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전시억제(inter-war deterrence)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다.
미국은 그 대책으로 '핵-재래식 통합(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을 내놨다. 기존의 작전계획에서는 재래식 작전과 핵 작전을 별도로 취급해 재래식 작전은 각 지역을 맡는 통합전투사령부가, 핵 작전은 전략사령부가 다뤘다. 그 부작용으로 재래식 전력 부대가 핵억제의 정확한 원리나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책이다.
CNI는 상대의 전술핵공격 또는 핵무기를 대상으로 한 비핵공격에 곧장 전략핵무기로 대응하는 식이 아니다. 물론 강력하게 대응은 하지만 상대의 임계점을 넘어 버리면 위기관리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강력한 재래식 무기가 필요하다. 대응 수단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서다. 이쪽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응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만 끌어올려, 상대의 추가 공격을 단념시키는 확전우세(escalation dominance) 달성이 가능해진다.
국방대 설인효·손한별 교수는 올해 7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국가안보와 전략'에 실린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방안: 북한 전술핵 위협과 한미 통합 핵억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우리의 KMPR과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통해 대북 억제태세를 보완하는 것이 "북한이 어떠한 위기단계에서, 어떠한 공격 혹은 공격 위협을 가하더라도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모두 사용하는 유연성 있고 균형 잡힌 대응 방안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융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이 워싱턴 선언에서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한다고 언급한 이유이자, 한국이 강력한 KMPR 전력을 갖추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언제 얼마나 사용하고, 또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KMPR 전력을 조기에 모두 써 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해서 확전우세를 달성하려 할 수 있다.
때문에 KMPR 전력을 운용할 전략사령부가 이러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연구해야 한다. 사령부 창설 과정에서 전평시 구분이 모호한 회색지대 등에서의 위기관리, 확전우세 등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워싱턴 선언의 내용처럼 '한반도에서의 핵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활동을 강화'하고 한국형 억제전략을 정립하는 일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