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한 미군들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연합뉴스인천시가 올해부터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국제행사 규모로 격상하면서 전쟁·안보의 측면을 너무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 "인천에 전쟁도시가 씌워지는 건 기우"라고 일축했다.
인천시, 14~19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주간 '역대급 기념행사'
인천시는 오는 14~19일 엿새간 인천상륙작전 기념 주간을 운영하면서 기념식, 상륙작전 재연·에어쇼, 국제포럼, 평화 축제, 음악회, 그림그리기 등 역대 최대 규모의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
인천시는 6·25전쟁 참전국 22개국에 주요 행사 초청장을 보냈으며, 이 중 미국·영국·캐나다 등 15개국이 참석 의사를 밝혔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인 15일에는 함정 20여척, 항공기 10여대, 장병 33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재연행사와 해군 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식 등이 열린다. 이들은 상륙 준비, 기뢰 대항 작전, 팔미도 등대 점등, 해상 화력 지원, 해상 돌격, 공중 돌격, 상륙 목표 해안 확보 등 순서로 73년 전과 같은 인천상륙작전을 선보인다.
재연 행사에는 우리 군뿐만이 아니고, UN군으로 함께한 작전의 주축인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도 함께 한다. 미국에서는 해군이 강습상륙함, 캐나다는 해군 호위함이 나선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해 12월 19일 국방부를 방문해 이종섭 장관에게 인천상륙작전 행사 국가행사 격상 및 인천시 건의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국방부에 "한미동맹 국가행사로 개최하자" 협력 요청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이처럼 확대된 건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해 11월 유럽 순방 기간 동안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해 프랑스 노르망디상륙작전에 버금가는 국제행사로 치르겠다"고 발표하면서 구체화됐다.
유 시장은 지난해 12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인천상륙작전을 국가행사로 기념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유 시장은 이 장관에게 "인천상륙작전은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과 가치"라며 "인천상륙작전 73주년 행사를 한미동맹 국가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협력하길 바란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올해 인천상륙작전 사업비는 정부 예산과 인천시 예산을 합친 합친 27억3000만원으로 확대됐다. 내년부터 국비를 추가로 확보해 사업비를 34억원까지 늘릴 방침이다.
'인천, 평화도시에서 전쟁도시로 회귀 우려' 시민사회단체 비판 이어져
올해부터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국가행사급으로 격상되면서 우려가 나온다. 가장 큰 지적은 '인천상륙작전의 그림자'로 불리는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에 대한 처우다. 이 사건은 1950년 9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닷새 앞둔 연합군이 월미도 어촌마을을 무차별 폭격해 원주민 수백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때 상당수가 숨졌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란을 나왔다가 아직까지 귀향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은 무차별 민간인 작전을 통해 완수될 수 있었다. 당시 월미도에는 600명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약 100여명이 희생됐다고 추정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2008년 이 사건을 조사한 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 또는 공동책임을 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위령사업 등 희생자들에 대한 상징적 화해조치를 할 것 △월미도 원주민의 귀향을 지원하거나 이에 부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할 것 등 3가지 권고조치를 내렸다.
또 법·제도적으로 월미도 희생자들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 오기되거나 누락된 공식기록을 복원하고,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에 대한 역사기록물 등재, 전시상황에서도 민간인 보호가 실효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에 동참할 것, 국제법 정신 함양을 위해 군대와 학교교육에 이 사건을 교육할 것 등의 조치도 강력 권고했다. 그러나 대부분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 지역 3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전70년 한반도 평화 인천행동이 지난 10일 인천 중구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서 '인천평화행동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인천 3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전70년 한반도 평화 인천행동'(이하 인천행동) 역시 이를 문제 삼았다. 이들은 전날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시 행사는 전쟁도시 이미지를 벗고자 '평화도시 인천'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그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가 상륙작전 기념행사와 관련해 "한반도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도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전승행사가 아닌 평화행사의 정체성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륙작전 기념에 앞서 민간인 희생자 진상조사를 먼저 진행하고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승자의 역사가 아닌 민간인의 역사에 더 귀 기울여달라'는 호소로 풀이된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11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 주간행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인천시 제공
유정복 시장 "인천상륙작전 행사, 전쟁도시 이미지는 기우"
비판이 커지자 유정복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 진화에 나섰다. 유 시장은 이날 인천시청 브리핑룸에 나와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는 자유를 지키고 평화를 지향하는 가치를 재조명하는 의미"라며 "(인천의) 전쟁 도시 이미지에 대한 우려는 지나친 표현이거나 기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시장은 "인천 상륙작전 당시에 월미도에 살았던 분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와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들이 생활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상륙작전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국방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 시장은 지난 8일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국제평화컨퍼런스'에 참석해 기조연설자로 나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의 가치를 조명하는 것처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인천과 대한민국 평화가 동아시아 평화를, 그리고 아시아 전체를 넘어 전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상징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인류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켰는지 재규정해, 이를 전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격상하겠다"고 덧붙였다.
월미도 원주민희생자 위령비. 인천시 제공 '월미도 민간인 희생자 추모' 軍 동참 여부에 '촉각'
국제행사로 격상된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군의 전향적인 행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오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의 본 행사에 앞서 열리는 '월미도 주민 희생자 위령비(이하 위령비)'에 우리 군이 헌화를 하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인천시는 오는 15일 중구 월미공원에서 해군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식과 월미도주민희생자위령비 헌화 행사를 잇따라 열 계획이다. 이 행사에는 이종호 해군참모총장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참여할 예정이다.
해군첩보부대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지시로 북한군으로 위장해 인천의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던 임무를 맡았던 부대다. 위령비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희생된 월미도 원주민들의 희생을 위로하기 위해 월미공원에 세워졌다. 과거사위의 권고를 인천시가 받아들여 2021년 건립한 것이다.
우리 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군인이 아닌 민간인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이종호 해군참모총장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직접 헌화 나선다면 이번 행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이 직접 헌화에 나설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인천상륙작전은 한·미·영 등 8개국 261척의 함정이 투입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상륙작전으로 기록됐다. 당시 연합군은 북한군의 측면을 공격해 90일 만에 서울을 수복하는 등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