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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100년…日정부 '모르쇠' 우리 정부도 소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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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은 간토대학살 100년 되는 날
잊혀지는 '아시아판 홀로코스트'…추모공간도 없어
韓 '무관심'·日 '모르쇠'…"진상규명 필요" 목소리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술과 꽃. 연합뉴스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술과 꽃. 연합뉴스
'아시아판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간토대학살은 정확히 100년 전 오늘(9월 1일) 발생했다.
 
한국인 피해자가 6천 명으로 추산되고 있을 뿐 아직도 정확한 피해규모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로 대량의 인명 피해가 있었지만 이렇다할 추모공간도 없다.
 
간토대학살은 역사의 먼지만 뿌옇게 쌓이면서 서서히 망각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이라도 간토대학살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실체를 바로 밝히고, 역사적 책임을 묻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살 피해 인원 미지수, 추모 공간조차 없어

간토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 수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일본 도쿄 유학생으로 조직된 이재동포위문반에서는 6661명, 일본 사법성이 380명, 독립신문(상해판)은 2만 1600명으로 발표하는 등 각 조사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이 가운데 언론 등에서는 6661명이 자주 인용된다.
 
지난해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명부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성주현 부소장은 "연구소에서 작년에 자료집, 언론 등을 통해 확인한 인원은 중복자 빼면 약 440명"이라며 "보통 희생자가 6661명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명단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이 남지 않아서 명단에 추산되지 않은 실제 피해자 수는 매우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질적인 피해 인원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애초 사건 당시에도 조사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 부소장은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 시신을 빨리 없애버려야 문제가 안 되니까 전부 다 불태우거나 묻어버렸다"며 "그래서 피해자 명단 확보가 아주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피해 인원 및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공식적인 추모 공간마저 마련돼있지 않다. 시민모임 독립의 박덕진 대표는 CBS와 전화통화에서 "국내에 국가에서 마련한 공식적인 추모 공간은 없다"며 "정부의 관심, 지원은 전무했다"고 밝혔다.

정부, 피해 조사에 소극적…日측에 요구도 안해

그동안 우리 정부는 간토대학살에 대해 무심한 태도를 보여왔다. 한국 정부에서 피해 조사를 위해 움직인 것은 1952년 12월 이승만 정부가 '일본 진재시피살자 명부'를 확보했던 것이 유일하다.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정보 수집과 실태 파악조차 실시하지 않은 것이다.
 
박 대표는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일본 측에 진상규명을 요청한 적도,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다"며 "역사의식 부재이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 언론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추도식에 화환 안 보내는 것을 뭐라 하는데 정작 대한민국 정부는 화환을 보낸 적이 없다"며 "대한민국에서는 이게(간토대학살) 그냥 없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성 부소장은 "나라 잃은 것도 서러운데 일본에 가서 학살을 당했다니 얼마나 억울하냐"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대학살 자행해 놓고 모르쇠로 일관

일본 정부는 간토대학살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무분별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5월 다니 고이치 국가공안위원장은 간토대학살에 대해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관되게 간토대학살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김인덕 소장은 "일본 사회도 최근 우경화되는 바람이 강해지고 이 문제를 덮고 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일본 정부는 알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회피적 태도에 대해 일부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7월 입헌민주당 소속 스기오 히데야 참의원은 국회에서 "간토대지진 100주년인 올해가 사건을 제대로 다룰 마지막 기회"라며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또 야당인 사회민주당 대표 후쿠시마 미즈호 참의원은 6월 국회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를 내보냈으면서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간토대지진 순난자 추도비. 연합뉴스일본 도쿄 간토대지진 순난자 추도비. 연합뉴스

"일본에서도 문제제기하는데 정작 한국에선 잠잠"

간토대학살은 다른 사건과 달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생존자가 없다. 이 때문에 더욱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위안부, 강제징용은 희생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지만 이 문제는 피해자나 그것을 직접 목격한 분들이 다 돌아가셨다"며 "누가 피해자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가족들도 아직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파악된 유가족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라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사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유가족들이 나서기 쉽지 않다"며 "사실 명예회복 작업이나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하면 유가족들이 나서겠는데 지금은 이들이 굳이 나와서 얘기할 것도 없다"고 전했다.
 
또 "일본 시민사회는 1973년부터 진상조사와 추모 활동을 벌였고 재일동포들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나 몰라라 했다"며 "학자들이나 시민사회나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이 사건을 잘 안 가르치고 한국 사회에서 사건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간토대학살 때 나타난 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일본인들이)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라며 "사건의 상징성, 의미, 식민지배 속에서의 모습에 주목하면 좋겠다"고 했다.

'간토학살 특별법 제정' 발의…정치권 무관심에 또 묻히나

현재 여야 국회의원 100명은 지난 3월  '간토 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특별법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적이 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자동페기 됐다.
 
특별법에는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책임 규명, 피해자 명예 회복 추진, 피해자 추도 공간 조성 방안 등이 담겨 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유 의원은 "돌아가신 분들은 억울하게 방화범이나 우물에 독을 탄 테러범으로 몰려서 학살 당했다"며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히고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회복을 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고 희생자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했다.
 
박 소장은 "특별법이 제정되고 피해자 명예회복 작업이 시작되면 유가족들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 부소장은 "유가족들은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며 "국가가 보상 관련 조사를 하게 되면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게 되고 유가족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간토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어나 10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00만여 명이 집을 잃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회에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울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등 헛소문이 퍼지며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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