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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늦춰도 항의조차 못해"…면세점 '진짜 사장'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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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현상 해결하려면 3~4시간은 기본…'매장 비우지 말라' 핀잔도
휴게실·화장실도 열악한데 업무 비용조차 사비로 지불
면세점 업계, 엔데믹·유커 귀환에 운영시간 늘려 '반등' 모색중
하청 노동자 문제 해결하려면 "원청이 노동조건 책임지게 해야"

시내 면세점. 연합뉴스시내 면세점. 연합뉴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안 의결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파견 근로자들이 다수 근무하는 면세점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 대형 면세점. 매장 안은 값비싼 명품들이 즐비했지만, 면세점 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도 없는 환경이었다.

매장과 로비 사이 칸막이가 없는 면세점 특성상 면세점 노동자들은 휴게시간에도 매장에 머물며 고객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특히 매장을 홀로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생리현상도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이기주(34, 가명)씨는 "편의점은 문이라도 잠글 수 있지만 면세점 매장은 전부 오픈 형식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곤란하다)"며 "(손님이 많지 않았던) 코로나19 때도 '매장을 비우지 말라'고 피드백을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계속 (매장에) 있어야 되니까 최소 3~4시간은 생리현상을 참고 일해야 한다"며 "화장실을 가려면 매장 끝으로 이동해야 하니까 가는 시간만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고 토로했다.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개인 사비를 들여 업무에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거나 생수 등 기본적인 식품·음료 등을 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한소미(51, 가명)씨는 "기본적으로 팩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고, 매장에 있는 복사기 한 대를 사용하려면 약 2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며 "돈을 지불하면서 고객들이 사용하는 복사기를 이용해 본사에서 오는 서류들을 처리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3~400명 정도의 파견근로자들이 일하는 공간에 정수기는 딱 한 대라서 물을 사먹어야 한다"며 "좋은 탕비실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수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검은 곰팡이가 나온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면세점 업계는 코로나19 이후 근무자 수가 줄어들었지만, 올해 들어 일부 면세점이 코로나19로 줄였던 운영시간을 되돌리면서 고충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혼 노동자들은 갑자기 업무시간이 늘면서 육아휴직을 하거나 퇴사를 결정하는 일들도 부지기수로 벌어졌다.

시내면세점. 연합뉴스시내면세점. 연합뉴스
지난 7월부터 소화불량으로 소화제를 달고 산다는 김미영씨는 "집에 와서 식사를 하면 소화가 되지 않아 밤에 잠을 못 잔다"며 "수면의 질도 많이 떨어지고 나의 신체 기능, 신체 리듬이 다 깨져버렸다"고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에서는 등·하교 시간에 아이를 맡길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며 "남편도 (시간이) 되지 않다 보니까 잠깐 육아휴직을 들어가거나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해외 입국자 수가 줄면서 침체되었던 면세점 업계는 외국인 판매 수요가 돌아오기 시작한 틈을 타서 운영시간을 연장하는 등 '노동자 쥐어짜기'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2017년 3월 이후 7년 만에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인 한국행 단체비자 발급까지 중단하면서 반등을 모색하는 중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해외 출국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 자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제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수요도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업시간이 회복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판매 직원들의 고충은 브랜드 측과 협의를 해서 최대한 문제가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본사와 계약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 측에서 고용한 직원들이라서 도급법상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 여행객들이 면세점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 연합뉴스중국 여행객들이 면세점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면세점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감소한 인력이 돌아오지 않은 가운데, 영업시간만 늘리는 것은 면세점의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김소연 위원장은 지난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면세점에서 일하는 인력은 코로나 시기에 고용위기에 내몰리며 3분의 2나 줄어든 상태"라며 "교섭에 나온 입점 회사(하청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적으로 면세점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라며 자신들의 권한도 아닌 영업시간 문제를 교셥하기 힘들단 입장이라서 면세점이 교섭에 나와야 하는 이유가 더욱더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면세점 노동자들은 휴게실도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현행 노동법상 원청인 면세점은 파견 근로자들의 노동 처우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질 의무가 없다.

노동자들을 고용한 하청업체는 면세점에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발뺌하다 보니 면세점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수십년 째 제자리 걸음을 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조법 2·3조를 개정해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파견 근로자들이 근무지를 제공하는 원청업체에 직접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노동조합법 개정안 2조를 살펴보면,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며 원청의 사용자성을 명시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는 "노동시간은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 중 하나인데 사실상 원청인 면세점이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이라며 "'계약 관계가 없는데 왜 우리(원청)한테 교섭 요구를 하냐' 등 무작정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법 개정 이후에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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