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박종민 기자설계 및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누락되는 이른바 '순살 아파트' 논란 이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최근 붕괴사고가 발생한 단지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에 대한 '묻지마 공포'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이 공법이 적용된 단지 주민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축되기 시작한 공급부족 사태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량판 구조 단지 주민들, 안전.집값하락 우려 이중고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무량판 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4월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단지 15곳의 지하주차장에서도 철근 누락이 발견되면서 무량판 구조 자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무량판 구조는 보(beam·대들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를 바로 얹는 방식이다. 공간 활용에 유리하고 시공비와 공사기간 단축이 가능한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층간소음에 강한 것으로 평가되며 정부와 지자체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시 허용 용적률 상향 조정과 분양가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 등을 주며 장려해왔다. 제대로 설계·시공 되면 장점이 많은 공법이지만 무량판 구조에 대한 우려는 확산되는 분위기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와 이파트 입주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특정 단지에 무량판 구조 적용 유무를 둘러싼 게시글들이 부쩍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일부 아파트는 관리사무소가 공고문을 통해 "우리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지어진 상당수의 아파트 주거동은 무량판 구조와 벽식 구조가 혼합된 공법으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무량판 구조가 아닌 아파트들은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안전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이런 내용이 알려질 경우 집값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분위기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아파트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히며 대상 단지 아파트 명단을 공개하려고 하자 해당 단지 일부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가 최근 언론에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아파트 실명 공개로 주민 혼란과 민원이 폭증했다'면서 명단 공개를 말아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 단지들은 아직까지는 뚜렷한 호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단지에 대한 거래 중개를 해온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에 대해 우려하는 집주인들도 일부 있고 이런 사실이 알려질 경우 회복세에 접어든 집값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우려하는 집주인들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다만 "몇 년 전만 해도 정부가 무량판 구조로 짓는다고 하면 각종 혜택을 줘서 당시 공사를 했던 많은 단지들이 무량판 구조이기 때문에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단지라는 점이 드러난다고 해도 당장 집값이 크게 조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량판 구조 권장하더니 전수조사 비용까지 내라니…주택사업 하겠나"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공급 부족 상황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시장 경색 등의 영향으로 주택 공급 감소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건축 인허가와 착공, 준공 물량 모두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올 상반기 건축 인허가는 7만7501동으로 지난해 상반기(10만5626동)에 비해 26.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2만6321동)의 건축 인허가는 30.5% 줄며 감소폭이 지방(5만1180동, 24.5%)보다 컸다.
올해 상반기 전국 착공 물량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8.7% 줄어든 5만8475동으로 집계됐다. 착공 역시 지방(4만187동, 26.5% 감소)보다 수도권(1만8288동, 33.1% 감소)의 감소폭이 컸다. 올해 상반기 준공된 전국 건축물도 6만6130동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1%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순살아파트 사태로 주택 사업 수익성이 악화되고 관련 규제까지 가중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공급 관련 지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지난 3일 '민간아파트 무량판 구조 조사계획 브리핑'을 열고 다음달까지 시공 중인 사업장 105곳,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곳 등 총 293곳에 대해 안전점검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상황이다. 다음달까지는 단지별로 전단보강근(철근)이 없어서는 안 될 기둥 샘플군을 10~15개소 정도 뽑아 조사를 진행하고 하자가 있으면 정밀조사를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철근 외에 콘크리트 강도와 설계도면대로 시공 여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점검 비용 부담 주체와 관련해 국토부 김오진 1차관은 "시공사에서 부담할 수 있는 관계 법령이 있다"며 "시공 잘못인지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에 시공사가 비용을 부담하고 부실과 하자가 발견되면 원인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시공사가 관련 비용을 부담한 뒤 문제가 생길 경우 설계 업체 등에 구상권을 청구하라는 설명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건설사들은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라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정부가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 무량판 구조를 권장하더니 하자 등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하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안전 점검을 시행하면서 부담을 건설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점검 결과가 문제가 생긴다면 구상권 등을 통해 관련 비용을 회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없을 경우 이 비용은 고스란히 건설사가 부담해야 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로 시공한 건설사가 문제라면 이런 구조를 권장한 정부는 어떤 책임을 지는가"라고 반문하며 "기존 수주 사업도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접을지 말 지를 고민하는 상황인데 6년 전 시공을 끝내고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혹시 문제가 있을지 모르니 확인해보자'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안전 점검 비용까지 건설사가 부담하라고 하면 신규 주택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정비 사업 전문가인 투미부동산컨설팅 김제경 소장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할 경우 정비 사업은 용적률을 인상해주는 등 혜택을 줬는데 논란이 되니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아파트를 전수 조사한다는 것은 넌센스"라며 "안 그래도 원자재 가격 등 원가가 크게 올라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데 안전 등 다른 부담까지 가중된다면 정비 사업 주체인 조합과 건설사 모두 신규 공급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