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진, 상온 초전도체 개발 주장. 김현탁 박사 제공 유튜브 캡처세계 최초로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국내 연구진의 주장과 맞물려 관련 테마주들의 주가가 급격히 오르다가 4일 폭락했다. 해당 주장에 대한 진위 논란이 가열된 영향이 크다. 최근 들어 특정 테마로 묶인 종목들의 주가 변동성이 유독 두드러지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적지 않다.
4일 유가증권시장에선 서원(-14.64%), 덕성(-5.26%), 대창(-26.00%) 등 초전도체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들의 주가가 줄줄이 급락해 마감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모비스(-28.30%) 등 관련주 낙폭이 컸다.
이들 종목은 '꿈의 물질'로 불리는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국내 연구진 논문이 나오면서 최근 며칠 사이 폭등세를 이어왔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를 비롯한 연구진은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 공개 온라인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올렸다.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된 물질엔 'LK-99'라는 이름이 붙었다. 초전도체란 특정 조건에서 모든 전기 저항을 상실하는 물질이다. 극저온·초고압이 아닌 일상 온도에서의 초전도체가 현실화되면 송전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등 파급효과가 커 세계 과학계의 이목이 쏠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서원, 덕성, 대창 주가는 지난달 27일부터 전날까지 6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이 기간 주가 상승폭만 각각 83.3%, 179.6%, 70.4%에 달한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서남, 모비스 주가가 같은 기간 연속으로 올라 각각 262.3%, 130.2% 상당한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렇다보니 주가 급등에 따른 한국거래소의 시장 경보 조치도 잇따랐다. 앞서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됐던 서남은 이날 하루 동안 매매 거래가 정지됐으며 서원·대창은 투자주의 종목, 덕성과 모비스는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됐다. 거래소는 투자주의, 경고, 위험 단계로 시장 경보 종목을 지정하는데, 투자경고·위험종목 단계에선 주가 상승세에 따라 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
초전도체 테마주 열풍의 중심엔 개인 투자자들이 있다. 예컨대 서남의 경우 최근 6거래일 연속 주가 상승기에 개인이 101억 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10억 원 어치를 순매수하는데 그쳤고, 기관은 오히려 8800만 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덕성은 개인 투자자 홀로 6억 2700만 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다른 종목들도 비슷했다.
해당 종목들의 주가가 이날 일제히 무너진 건 상온 초전도체라는 'LK-99'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LK-99 관련 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구성한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검증위에서 논의된 내용"이라며 "아카이브 논문을 통해 발표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을 기반으로 판단할 때 논문과 영상의 물질은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2일 밝혔다. 시편(샘플)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오른 기업 가운데서는 명확한 관련성이 없음을 직접 공표한 곳도 있다. 특히 주가 상승폭이 컸던 서남은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주식시장에서 서남이 관련주로 여겨져 집중되고 있는 상황은 조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의 초전도 기술은 REBCO 물질을 기반으로 한 2세대 고온초전도선재로, 절대온도 섭씨 -180도 이하에서 초전도 특성이 발현되는 물질"이라며 "당사는 해당 제품을 만들고 응용하는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현재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연구기관과는 어떠한 연구협력이나 사업 교류가 없었음을 안내드린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테마주로 분류됐던 대정화금도 "초전도체와 관련해 퀀텀에너지연구소와 구리 등을 포함한 거래 내역이 없음을 알린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묻지마식 테마주 베팅'은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관련 종목 온라인 토론방에선 "팔지 못해 또 물렸다"는 불안 심리와 "반전은 남아있다"는 식의 기대심리가 종일 교차했다. 테마주 열풍은 최근 들어 이차전지 관련주를 중심으로 휘몰아친 뒤 초전도체로 옮겨 붙었다가 기로에 놓인 모양새다. 지난달에도 이차전지 테마로 묶인 여러 종목들의 주가가 급등했다가 곤두박질치면서 시장이 혼란스러웠다.
증권가에선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 눈높이가 높아진 가운데 향후 경제 상황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을 맞다보니 '뜨는 테마주'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 펜데믹 초반에 유동성 장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주식, 부동산 등으로 상당히 큰 폭의 수익을 기록했다.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에 대한 눈높이가 그때에 비해 낮아지지 않았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동성은 많고, 경기 방향성은 뚜렷하지 않으니까 결국 작은 테마에 많은 돈이 몰리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장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