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던 미국인 1명이 무단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하는 일이 발생했다. 현재 북한군이 이 미국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뜻밖의 사건을 계기로 물밑에서 북미접촉이 진행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은 미지수다.
유엔군사령부는 18일 트위터를 통해 "공동경비구역을 견학하던 미국인 한 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해당 미국인의 자세한 신원 등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주한미군 소속 병사로 알려져 있다.
이어 "현재 북한이 이 인원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건 해결을 위해 북한군과 협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사는 UN에서 미국에 권한을 위임해 운영하는 사령부로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JSA 경비대대에는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있지만, 유엔사의 통제를 받고 유엔사에 보고를 하며 유엔사가 미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한다. 다만 유엔군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한다.
판문점 구조상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T1),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 중간을 MDL이 지나간다. 해당 미국인은 실외에서 이 건물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SA 경비대대 자체는 무장 병력이지만 9.19 군사합의 이후로 JSA가 비무장화되면서, 이 곳에서 현장 근무하는 경비병은 남북 모두 총기를 소지하지 않는다.
월북한 미국인이 북한으로의 귀순을 원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미국이 자국민의 송환을 요구하면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북미 간 협상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비슷한 전례가 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실제 북미협상이 진행될 경우 의외의 국면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에서 바라본 군사분계선 북측에 자라난 풀들이 한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12월 무단 입북한 북한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은 한 달여만에 석방됐는데, 당시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되는 등 북미 관계가 풀려 가는 상황이었다. 2009년 3월엔 북중 국경지대를 취재하던 미국 기자 로라 링, 유나 리가 북한에 억류되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과 직접 대면, 같은 해 8월 이들을 데려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18년 5월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해 억류돼 있던 한국계 미국인 김학송, 토니 김, 김동철 3명을 데려온 전례가 있다. 당시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접촉이 한창이었다.
다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담화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이나 전략자산 전개 중단과 같은 '가변적이고 가역적 조치'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할 수 없다고 강변한 만큼 가능성은 미지수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북한은 이번 사건을 단기적으로는 선전에 이용하고, 중기적으로는 협상용으로 전환할 듯하다"며 "미국은 자진 월북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월북자와의 직접적인 면담을 요구하고, 유엔사 채널과 뉴욕 채널을 통해 송환 자체에 집중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965년 월북했다가 2004년에야 돌아온 찰스 로버트 젠킨스와 같은 사례가 될지, 또는 미국의 고위급 특사 파견과 동행 귀국으로 대화 국면 전환의 계기점이 될지 속단은 이르다"며 "현 단계 북미간 대립과 대결 상황으로 볼 때 의미 있는 접촉과 성과 도출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