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봉읍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 재난 구호 쉴터가 설치된 모습이다. 양형욱 기자충북 청주시 오송읍을 휩쓸고 지나간 홍수를 직접 목격한 이재민들은 물에 잠겼던 집안 모습이 떠올라 어젯밤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미호강 범람 흔적은 마을 곳곳에 상흔을 남겼다. 비닐하우스에는 물이 여전히 들어차있었고, 하천 옆 수풀은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거주시설. 이날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만난 오송5구 마을 이재민들은 이번 홍수 피해를 두고 미리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호우가 예고됐으면 미리 대비해야 되는데 구조물이나 축대를 쌓는 준비를 하나도 안 해놓고 안일하게 갑자기 즉흥적으로 대응한 것이 보이잖아요"이재민 김기훈(58)씨는 기자에게 동네 주민이 보내준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가 공유한 영상에는 사고가 발생하기 2시간 전인 오후 6시 30분쯤 포크레인 한 대가 주변 흙을 퍼내어 급하게 임시 둑 높이를 올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수압을 견디려면 단단한 구조물로 대비해야 하는데 미리 재난을 대비하지도 않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홍수 피해가 났다"며 "아직 물이 넘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흙을 놓는데, 이 무슨 힘이 있겠나"고 울분을 토했다.
16일 오후 이재민들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양형욱 기자
80대 시어머니 집이 침수됐다는 유명하(58)씨는 "20년 전에도 수문을 안 닫아서 사고가 난 적이 있다"며 '인재'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 4시간 전부터 홍수경보가 있었다. 지자체에서 빨리 움직여서 통제만 미리 했어도 사고는 안났다"고 했다. 이어 "이 지역에 대파가 유명한데 농작물이 다 젖어버렸으니 상품성도 없고 큰일 났다"고 토로했다.
다른 이재민들도 "홍수 피해가 걱정돼 건설사에 몇 달 전부터 민원을 넣었다", "공사가 너무 길어졌다"는 등 이번 사고 책임이 건설사의 안일한 대응과 건설사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행정관청에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이웃 주민들이 생각나거나 사고 당시 참상이 떠올라 힘들다는 이재민들도 있었다.
임시거주시설에서 만난 A씨는 "지금 사촌동생이 궁평2지하차도에 갇혔다"며 "동생이 실종되고 집안은 물이 가득 들어차있고 어제부터 정신을 차리기 힘들고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했다.
침수사고가 난 지하차도에서 불과 약 500m 떨어진 궁평리에 산다는 황문구(64)씨는 물에 잠긴 자신의 집보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웃들을 먼저 걱정했다.
그는 "아들 딸 같은 사람들이, 꽃도 못 피운 젊은 사람들이 너무 죽었다"며 "하필 출근시간이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침수 당시 잠을 자고 있었다는 황씨는 옆집 이웃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겨우 탈출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딱 나오니까 물이 가슴팍까지 찼었다"며 "네 명이서 손을 꼭 붙잡고 그렇게 빠져나왔다. 물이 집 안을 꽉 채우기까지 1분도 채 안걸리더라. 아침에 집에 가보니 냉장고도 싱크대도 다 못 쓰게 됐다"고 했다.
김성진(28, 가명)씨는 "어제 대피 명령이 떨어져서 이쪽(대피소)으로 오게 됐는데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께 이렇게 홍수 피해가 난 게 50년 만에 거의 처음이라고 하더라"며 "저도 30년 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 처음 겪은 일"이라고 말했다.
임시구조시설 안에는 50여 가구 100명 안팎의 이재민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한적십자사에서 지원한 '재난 구호 쉘터'나 바닥에 돗자리와 매트리스를 깐 채 생활하고 있었다.
이재민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아 읍사무소 직원들이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부축하거나 화장실로 안내하기도 했다.
이재민들은 이날 오후 오송중학교, 오송고등학교, 오송종합사회복지관 등 임시대피시설 3곳을 떠나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