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르포]방류 전부터 손님 '뚝'…여수 상인 "건어물도 안팔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국내 최대 어항 여수 국동항 어민들 근심 가득
반세기 넘은 여수수산물특화시장도 직격탄
매출 4분의 1토막…"지금도 난리, 누가 먹으러 온다요"
"이런 불황 난생 처음…방류? 그럼 집에서 쉬어야지"

여수 국동항 어민들이 다음날 조업을 위해 미끼 작업이 한창이다. 박사라 기자여수 국동항 어민들이 다음날 조업을 위해 미끼 작업이 한창이다. 박사라 기자
12일 아침 전남 여수 국동항. 국내 최대 규모의 어항단지인 국동항은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소식에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항구에는 수백 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다. 항구와 맞닿아 있는 수산인협회 건물 벽에 걸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절대 반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일찌감치 새벽 조업을 마치고 나온 어업인들은 내일 조업을 위한 미끼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한데 따른 우려 섞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40년 넘게 국동항에서 어업 활동을 하고 있는 어민 박모(70)씨는 "벌써부터 판로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소비가 줄어드니 생선 가격도 반토막 나고 일하려는 선원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고기 잡아서 자식들 다 키웠지만 젊은 어업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 막막하겠다"고 우려했다.
 
겨울에는 낙지, 여름에는 갯장어 조업을 한다는 선주 강모(67)씨는 갯장어 가격이 한 달 만에 바닥을 쳤다고 했다. 강 씨에 따르면 1kg에 5만 원이던 갯장어 가격이 한 달 사이 2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강 씨는 "방류 전인데도 반토막 났는데 방류라도 시작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후 3시에 위판장에 경매하러 가는데 얼마나 더 떨어질지 기대감도 없다"며 "경비도 안 나오는 상황이 되니 실감이 난다"고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며칠 후 서해안으로 오징어 조업을 떠난다는 강모(60)씨는 "이번에 잡히는 오징어는 어떻게든 판매가 되겠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후쿠시마 오염수라는 말로 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이미 높아졌는데 앞으로 고기를 잡은 후가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어업인들은 오염수 방류를 결사 반대하면서도 자신들의 반대 목소리에 괜히 수산물에 대한 불신을 더 높여 소비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여수수산인협회 한 관계자는 "국동항 어업인들은 모두 오염수 방류를 결사 반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어업인으로서 규탄이나, 항의 집회 등을 직접 하지 못하는 데는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해 소비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상황을 전했다.
 
반세기 넘는 전통을 가진 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현대화 시설 이후 '수산물 아울렛'으로 불리며 명성이 높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가 불거진 뒤 관광버스 주차장이 텅 빈 모습. 최창민 기자반세기 넘는 전통을 가진 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현대화 시설 이후 '수산물 아울렛'으로 불리며 명성이 높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가 불거진 뒤 관광버스 주차장이 텅 빈 모습. 최창민 기자
근심어린 표정이 가득한 어민들을 뒤로하고 차를 몰아 10분 거리에 있는 여수수산물특화시장을 찾았다.
 
활어, 건어물, 젓갈 등 100여 개의 점포가 있는 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현대화 사업을 통해 2010년 지금의 모습을 갖춘 뒤 손님들로 북적였다. 1층에서 생선을 골라 회를 떠서 2층 식당에 자리를 잡고 오션뷰를 보면서 즉석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바다에서 바로 끌어온 해수를 공급해 신선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여수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수산물 아울렛'으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활어 횟집을 운영하는 박모(77) 할머니는 새벽 5시부터 나와 생선 상태를 살피고 바지런히 매장을 정돈했다. 이 시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한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걸 방류하면 우린 어찌 사나. 누가 요걸 먹으로 온다요. 지금부터 난린데. 방류 허도 안했는데."
 
평소에는 관광버스로 온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가 불거진 뒤 뚝 끊긴 손님들 발길에 한숨이 깊다. 박 할머니는 "바다에 그걸 풀면 어찌 살겠어. 매일 이걸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연산 갯장어를 취급하는 횟집 상인 박모(64·여) 씨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태평양으로 흘러서 5년은 넘어야 여기로 온다고 하는데 벌써 손님들이 위축이 됐는지 많이 줄었다"면서 "코로나 때는 손님들이 포장을 많이 해가서 버텼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갯장어 샤브샤브, 이른바 '하모 유비끼'는 여름철 별미. 1kg에 6만 원 정도로 적은 가격이 아닌데도 7~8월이면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박 씨는 "횟집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직업을 바꿔야하는지 고민"이라는 말로 지금의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여름철이면 갯장어 샤브샤브, 이른바 '하모 유비끼'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상인들만 한적한 시장을 지키고 있다. 최창민 기자.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여름철이면 갯장어 샤브샤브, 이른바 '하모 유비끼'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상인들만 한적한 시장을 지키고 있다. 최창민 기자.
각종 젓갈과 초장, 깻잎과 상추를 취급하는 젓갈가게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손님이 줄어들다보니 한낮에도 곳곳에 주인 없는 점포가 눈에 띄었다.
 
수산물특화시장은 첫째와 셋째주 화요일, 길 건너 수산시장은 둘째와 넷째주 화요일 각각 문을 닫는다. 수산시장이 문을 닫는 날이면 수산물특화시장은 그야말로 대목이다. 손님들이 배로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산시장 상가가 문을 닫은 어제도 손님이 없긴 매한가지.
 
김모(70·여) 씨는 "손님이 4분의 3은 줄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평소 같으면 하루 20만 원어치 정도 팔았지만 수산시장이 쉰 어제도 겨우 2만 원 벌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횟집이 잘되어야 우리 젓갈가게도 장사가 되는데 안된다. 오늘도 안 나오려다가 이제 나왔다"고 툴툴댔다.
 
멸치, 황태, 다시마 등 건어물 상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어물을 팔아 자식들을 건사했다고 말한 정모(60·여) 씨는 "겨우 오는 손님들은 단골들"이라며 "그나마 경제적으로 힘든지 10만 원씩 사갔다면 지금은 2~3만 원선"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아직 방류 전인데도 사람들이 안온다"면서 "방류가 시작되면 진짜로 안 올텐데 이제는 집에서 쉬어야 하나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