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연합뉴스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해 양국간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튼 가운데 경제사령탑 재닛 옐런 재무장관 역시 6일부터 9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찾는다.
중국은 옐런 장관의 방중에 앞서 첨단제품에 사용되는 핵심소재의 수출을 통제하며 미국에 맞불을 놓으면서도 '대화와 협력을 할 준비가 돼있다'며 양손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쥔 모양새다.
옐런 방중 목전에 핵심소재 수출 통제로 맞대응 능력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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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무부는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 갈륨 및 게르마늄 관련 품목에 대해 수출 통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전세계 생산량의 60~80%를 담당하고 있다.
성명에 따르면 이들 품목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최종 사용자 및 최종 용도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하며, 동시에 상무부에 이들 품목의 수출을 신청하면 국무원에 보고해 최종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시 형사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군사 및 통신장비 제조에 주로 사용되는 핵심소재다. 갈륨은 집적회로,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패널을 위한 광전지 패널 등의 제조에 쓰이며, 특히 산화갈륨과 질화갈륨은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게르마늄은 광섬유와 적외선 카메라 렌즈의 필수 소재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수출 통제로 하드웨어 제조 비용이 상승하고 첨단 컴퓨팅 기술 개발 경쟁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며 이는 산업과 군사 역량에서 필수적인 기술을 통제하려는 글로벌 전쟁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이같은 수출 통제 조치가 옐런 장관 방중 발표 바로 당일날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중국 재정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옐런 장관의 방중 계획을 공식 발표했고, 당일 저녁 중국 상무부는 수출 통제 조치 내용을 공개했다.
미국 정부의 경제사령탑으로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차르'(군주)로 불리는 옐런 장관의 방중을 목전에 두고 중국이 자국에 대한 공급망 배제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을 향해 강한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동시에 중국이 전격적으로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한 배경에는 방중 기간 옐런 장관과 양국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제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표한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 당장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향후 희토류와 수산화리튬 등 첨단제품에 쓰이는 핵심소재로 수출 통제 범위를 넓힐 경우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미국이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정책을 지속할 경우 중국 역시 공급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로 얼마든지 맞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며 옐런 장관 방중시 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뜻이다.
블링컨과 다른 옐런 맞이…美 선물보따리 내놓을까?
연합뉴스이와 동시에 중국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 대중 매파에 비해 다소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옐런 장관의 방중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로 셰펑 주미 중국 대사는 지난 3일 옐런 장관을 만나 방중시 논의할 현안에 대해 조율하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관영매체 중국중앙(CC)TV 보도에 따르면 셰 대사는 이 자리에서 "(양국이) 행동으로 방해를 제거하고 불일치를 관리하기를 희망한다"면서 "성의로써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고, 중미관계의 악화를 멈춰 정상궤도로 되돌리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즈 역시 이를 주요 기사로 다루며 "셰 대사의 발언은 양국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저점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대화와 협력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매우 분명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매체는 이어 중국국제무역경제협력학회 저우미 선임 연구원의 인터뷰를 인용해 "옐런 장관은 풍부한 경제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잘 돌아가는 경제는 주요 무역 파트너 간의 정상적이고 건전한 시장 협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를 추켜세웠다.
지난달 블리컨 장관 방중 전 중국 정부가 "함부로 도발하면서 소통과 교류를 요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중국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등 의도적으로 적의 가득한 메시지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중국의 '정랭경온'(정치적으로는 냉랭하고, 경제적으로는 유화적) 기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동시에 옐런 장관은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공급망 배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등 미국 외교.안보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해 왔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옐런 장관은 지난달 13일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 "중국과의 디커플링 시도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중국의 경제 발전을 막는 게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비록 원론적인 발언이지만 현재 중국 입장에서는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다만, 옐런 장관 역시 경제분야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 입안자 가운데 한명이고, 중국이 디커플링과 다름없다고 여기는 '디리스킹'(위험 배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이 기대하는 만큼의 선물보따리를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옐런 장관의 이번 방중 주요 목적이 양국간 꼬일대로 꼬인 경제현안 해결 보다는, 경제분야에서의 충돌방지 '가드레일'(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연임 이후 등장한 허리펑 부총리 등 새 경제라인과의 소통채널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