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TV 영상 캡처최근 실시된 한미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은 역대 최대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옥의 티가 있었다. 이 훈련은 전례 없이 다섯 차례나 연달아 이뤄지며 무언의 대북경고를 했고, 윤석열 대통령과 폴란드 국방장관 등 내외 귀빈이 직관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훈련에는 세계 최고 성능의 K2전차와 K9자주포, K21장갑차 등이 대거 동원돼 막강 화력을 쏟아부었다. 공중에선 F-35A 스텔스기와 F-15K 전폭기, 아파치, 수리온 헬기 등이 입체적으로 기동하며 실전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이런 전투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장갑차의 해치(덮개)는 반쯤 열려있었고 조종수는 그 위로 얼굴을 살짝 내민 채 운전했다. 이는 조종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훈련을 주관한 육군 5군단 관계자는 "실전에선 당연히 해치를 닫아야 하는 게 맞지만 안전 목적상 그렇게 됐다"며 이해를 당부했다. 조종석 해치를 닫고 운전하는 '밀폐기동'을 하게 되면 잠망경의 좁은 시야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위험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국방TV 영상 캡처 이번 훈련은 내외 귀빈과 국민참관단이 지켜본 가운데 이뤄졌다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실전을 가정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시범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밀폐기동 여부를 너무 문제 삼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군의 밀폐기동 기피증이 거의 고질에 가깝다는 점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크워크 대표는 "제가 십수년 전부터 이 문제를 수없이 제기해왔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전투력 배양보다는 사고 방지에 급급하는 군대 문화가 근본 원인이다. 고강도 훈련에 수반될 수 있는 사고가 잘 용인되지 않는 풍토가 강병 육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이는 웬만하면 실전 상황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하는 미국 등 군사 선진국과 크게 대비된다. 더구나 한반도는 굴곡진 지형이 많은데다 시가전 등의 요인이 많기 때문에 실전적 조종 능력이 더욱 필요하다.
연합뉴스국방부와 합참은 지난 정부 5년간 실전적 훈련이 없었다고 비판하며 계기마다 '결전태세'와 '실전적 전투준비' '전투형 강군'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부활하고 사실상 연중무휴 훈련 체제에 들어갔지만 기본부터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신 대표는 "100억 원이 넘는 전차를 해치를 열고 조종하다 적 저격수의 AK 소총 1발에 당한다면 전차라는 게 의미가 없다"면서 "화력격멸훈련이란 실전적 기량을 보여줘야 할 훈련에서조차 자신이 없어서 해치를 열고 조종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망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