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가 26일 오전 세종시 소재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 관련 가짜뉴스 유포'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간협은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 면허증 4만 3천여 개를 박스에 담아 반납했다. 이은지 기자간호법 제정 무산 이후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준법투쟁'을 벌여온 대한간호협회가 26일 보건복지부를 항의 방문하며, 전국 각지에서 취합한
면허증 4만 3천여 개를 반납했다.
간협은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한 복지부가 법안에 반대해온 대한
의사협회 등 직역단체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인용해 간호법 관련 '가짜뉴스'를 유포해왔다고 비판했다.
'간호사 준법투쟁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탁영란 제1부회장은 이날 오전 세종시 소재 복지부 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15일
'간호법은 전문 의료인 사이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언급한 조규홍 복지장관의 발언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무슨 근거로 간호법이 '국민건강을 저해하는 법'이라고 발표했나"라고 반문하며
"명확한 근거와 객관적인 지표가 없는 조 장관의 주장은 그저 '찌라시'의 거짓뉴스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또 조 장관이 복지부 수장으로서의 전문성은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 관점,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리더십도 일체 보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탁 1부회장은 "병원협회와 의협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 복지부는 한 나라의 보건의료정책을 책임지는 공무조직이 맞는지를 의심케 하는 매우 부적절한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만큼
중립적인 업무수행이 필요함에도 이번 간호법 처리과정에서 복지부의 처사는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했다"며
"62만 간호인의 '자긍심'과 '미래 돌봄'을 위한 간호법의 숭고한 가치마저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 등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앞에서 '간호법 허위사실 유포·불법진료 묵인 보건복지부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간호사 면허증 반납을 위해 보건복지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탁 1부회장은 현장을 함께 찾은 간호사 약 30명과 함께
한 달여 간 전국 각지에서 취합한 간호사 면허증 4만 3021개도 복지부에 반납했다. 지역별로 서울에서 가장 많은 면허증(8168명)이 모였고, 대구(5831명), 경기(4598명), 인천(3334명), 부산(3천 명), 광주(2816명), 대전(262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간협은 "62만 간호인을 대표해 조규홍 장관에게 요구한다"며
△간호법의 가치를 심각히 훼손하고 간호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할 것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할 것 등을 촉구했다.
협회는 지난달 17일부터 PA 간호사를 비롯해 일선에서 처방·시술 등 의료현장에서 의사 업무를 암암리에 수행해온 회원들의 '준법 투쟁'을 이어왔다. 법령상 간호사 본연의 일에 해당되지 않는 '불법진료 지시'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PA 간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험 등 별도의 절차가 있는 나라도 있지만, 한국에서 PA 간호사는 제도 밖 직군으로 '합법적인' 존재가 아니다.
간협 백찬기 홍보국장은 "저희가 준법투쟁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은 간호사 업무 이외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다) 'PA 간호사'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란 것"이라며
"이미 (채혈·대리처방 등을 대리하는 것이) 관행으로 만연돼 그냥 일반 간호사들도 (불법 진료 행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준법투쟁을 위해 현장에 제시한 불법업무 리스트를 두고 정부가 '(적법성 여부는) 행위마다 개별적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해 "부적절한 시그널"이라고도 지적했다. 간협은
"병원의 불법행위를 방관하는 것을 넘어서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간호사들을 '범법자' 취급하기 전에 이를 강요한 의료기관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복지부가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입사 초부터 '불법'에 내몰리고 있는 간호사들이 과도한 업무부담에 처벌 위험까지 감수하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 리스트'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간호사 면허증 반납 나선 간호협회. 연합뉴스탁 1부회장은
"현행 의료법에 따라 간호사는 유일하게 피고용인으로 포함되어 있다"며 "고용인인 병원장·의사 등의 지시나 위력에 의해 불법진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어
"현 의료법은 더 이상 변화된 보건의료 환경과 간호사의 사회적 역할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 한계를 부정하지 못한다"며 "초고령사회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간호인력의 확충과 간호법 제정은 이 시대 변할 수 없는 대명제이자 진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 장관은 이날 간협의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임강섭 간호정책과장이 빗속에 세종을 방문한 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간협의 요청사항 등을 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배포한 공식 입장을 통해
"폐기된 간호법안은 'PA' 문제 해결과 무관하다"는 노선을 재확인했다. 복지부는 "폐기된 간호법안의 간호사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의 내용과 동일해 PA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은 전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협이 PA 문제를 간호법안 폐기와 결부시켜 단체행동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는 PA 문제 해결을 위해 이달부터 현장 전문가, 간협을 포함한 보건의료단체, 환자단체 등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간협의 간호사 면허증 반납은 법률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제1부회장 등 간협 관계자들이 26일 국민권익위원회를 방문해 '불법진료 행위'를 간호사들에게 강요한 의료기관 81곳에 대한 신고장을 접수하고 있다. 간협 제공한편, 협회는 지난 23일까지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들어온
신고 1만 4504건 중 간호사들에게 불법진료 행위를 강요한 의료기관 81곳(공공병원 27곳·민간 의료기관 54곳)을 이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소속 간호사들이
불법행위 지시를 거부했을 경우 폭언, 위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례들로 신고된 병원들이라는 게 간협의 설명이다. 간협은 실명으로 신고된 364곳 중 간협 임원, 변호사, 노무사 등 전문가 총 10명으로 구성된 준법투쟁 TF가 해당 병원들을 1차로 추려냈다고 전했다.
'준법 투쟁'으로 인해 일터에서 해고된 사례도 6건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탁 1부회장은
"제4기 권역책임의료기관과 지역책임의료기관 중 불법진료 지시 행위가 명백한 의료기관을 먼저 선정했다"며
"민간 의료기관은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기준으로 했다"고 말했다. 또 의료법이나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을 지시한 사람과 구체적 지시사항, 지시장소 등 3가지 이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신고한 병원들이 신고 대상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