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가 부르는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학생들. 임진수 특파원하나, 둘, 셋, '김치'
단체사진 촬영을 위해 단상에 오른 70여명의 조선족 동포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파오차이가 아닌 김치를 외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단오절 휴일인 22일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후원자 등 300여명이 베이징 외곽의 한 컨벤션센터에 모여 정음우리말학교 10주년 기념식과 봄학기 수료식을 열었다.
지난 2012년 12월 1일 4명의 학생을 모아 한국어 강습소로 시작한 정음우리말학교는 이제 기초반과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등 12개 학급 128명의 조선족 동포 어린이가 참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 10년 동안 졸업생 규모도 1천여명에 이른다.
정신철 교장은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돌이켜 보면 10년이 훌쩍 지났다"면서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계속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정 교장과 자원봉사 형식의 교사 10여명은 한국인이 주로 모여사는 베이징 왕징의 한 상가에서 매주 주말 우리말학교 교실을 연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4년 동안 우리말학교에 다닌 고수영(12) 학생은 "우리말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한국말을 잘 못했다"라면서 "지금은 한국말을 진짜 좋아하고 학교에서 한국말을 좀 더 배울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호(10) 학생 역시 "우리말학교를 다니고 나서부터 우리말을 좀 더 잘하게 되고 친구들과 사귀기에도 좋다"면서 "한국에 가면 한국 친구들하고 우리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말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초등학생으로 조선족 4,5세대에 해당한다. 중국에서 나고 자라 한족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3,4세대인 부모들이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한국어를 배우거나 쓸 일이 거의 없다.
중국 역시 한국 못지 않은 학구열로 학업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도 정규 과목 외에 한국어를 추가로 배우는 것은 큰 부담이다.
북경정음학교 교사와 학생들. 임진수 특파원김소옥 교사는 "학교 수업도 벅찬데 한국어까지 배워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면서 "베이징에 있는 전체 조선족 학생들 중에 우리말을 할 줄 아는 학생은 5%도 채 안된다"고 설명했다.
둘째까지 정음우리말학교를 졸업시킨 학부모 한모 씨는 "몇달 전에 후배가 찾아와서 굳이 아이들을 한국말 학교에 보낼 필요가 있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3,4세대인 부모들 조차 한국어를 알아도 잘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다 보니 어린 학생들에게 한국어는 생소한 외국어가 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북경정음우리말학교를 비롯해 중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우리말학교는 조선족 동포 아이들이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육기관이다.
현재 북경과 그 인근에는 북경정음우리말학교 외에도 순의구의 순의정음우리말학교, 통저우구와 허베이성 연교지역을 아우르는 연통정음우리말학교가 있다. 또, 산둥성 옌타이시에 위치한 옌타이한글학교, 랴오닝성 다롄의 옹달샘배움터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 가운데 상당수는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인해 수업을 할 장소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사말 하는 정신철 교장. 임진수 특파원
도시우리말학교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는 정신철 교장은 "한 학기에 교실을 4곳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지금도 장소 문제가 제일 걱정이다"라며 "이상적인 건 학교 교실을 빌려서 여는 건데 사실 여의치 않다"라고 말했다.
북경정음우리말학교 개교 당시부터 후원을 이어온 북경애심여성네크워크 이령 회장은 "우리민족문화가 유실되고 소외되고 있는 위기의 시기"라며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민족 언어와 문화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조선족 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