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개원 82년만에 경영난으로 폐원 수순을 밟는다. 연합뉴스경영난으로 개원 82년 만에 폐원 수순을 밟게 된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교수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중구를 포함한 서울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종합병원이 이렇게 문을 닫을 경우, 심각한 '의료 공백'이 초래될 거라고 우려했다.
또 폐원을 결정하고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절차 자체도 매우 '일방적'이었다며, 법인의 철회를 촉구했다.
서울백병원 조영규 교수협의회장은 12일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저는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며 "법인(인제학원)이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교수협의회는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TFT'에서
병원 폐원안을 법인 이사회에 상정하기로 결정한 직후인 이달 2일 구호석 병원장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게 전부였다고 전했다.
해당 메일에는 'TFT 위원 과반수의 동의로 폐원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게 됐다', '병원장으로서 이사회에서 서울백병원 유지 결정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서울백병원 폐원 철회를 위해 병원장 본인이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폐원 철회를 위해 교직원들이 합력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때부터 메일을 수신한 교직원 모두가 불안에 떨었지만, 행여 내원 환자들에게 영향이 갈까봐 공론화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지난 5일 서울백병원 폐원 관련 보도들이 잇따르면서 "매일같이 병원 문 닫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수백 통의 민원전화에 시달리고 있으며, 실제로 과거 진료기록을 차트 복사해 가는 환자들이 늘고, 검진 예약취소도 증가했다"는 게 교수협의회의 전언이다.
6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의 모습. 연합뉴스앞서 서울백병원은 지난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했다. 병원 측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2016년부터 경영정상화 TFT를 운영해 왔으나, 20년간 누적된 적자가 올해 기준 174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백병원은 2017년 기준 276개였던 병상을 122개로 줄이고, 인건비를 지속적으로 감축해 왔다.
수련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상당 포기하는 '구조조정'을 거치기도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교직원에게만 운영난의 책임을 물었던 병원 측 입장과 달리, 구성원들은 오히려 '피해자'라는 점도 강조했다.
조 회장은 "저는 2006년부터 만 17년 동안 서울백병원에서 근무했다"며 "모태 병원인 서울백병원이 없었으면 법인도, 다른 형제병원들도 없었을 텐데 왜 이렇게 서울백병원 교직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지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서울백병원의 중흥기에 얻은 이익과 자산은 서울백병원에 재투자되지 않았고, 형제병원의 건립과 법인의 운영을 위해 사용됐다"며 "병원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서울백병원을 키우지 않고 다른 형제병원을 새로 건립하기로 한 법인의 경영전략 때문이었지, 교직원들 때문이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구 원장이 부임 후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레지던트 수련병원, 지역 응급의료센터 등의 지위를 포기한 점을 두고는
"마치 '이렇게까지 여건을 어렵게 만드는데도 너희가 서울 중심에서 대학병원을 유지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 듯하다"며 "임상시험을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개원 82년만에 경영난으로 폐원 수순을 밟는다. 연합뉴스서울백병원이 폐원 수순에 들어가며 분원들에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뽑아 가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 회장은 "형제병원들에서도 당연히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교수들을 원한다"며 기존의 신경외과 교수(3명)·심장내과 교수(2명) 모두 근무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수들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비싼 급여를 받는 계약직 진료 교수'는 늘어나 실제 인건비 감소 폭은 미미하다는 게 교수협의회의 입장이다.
지난 2년간 병동 리모델링 등에 수십 억이 투입되는 것을 보며 폐원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교직원들이 공간 재단장에 맞춰 병원 활성화 방안들을 준비했던 것도 무용지물이 됐다며 "이는 서울백병원 교직원들을 우롱한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폐원 시 일자리를 잃게 된 교직원들을 분원에서 '고용 승계'한다는 얘기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같은 수도권 내 상계백병원은 지난 4월 적자가 17억, 일산백병원은 '마이너스 10억'으로 서울백병원(-10억)과 비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교수들은 오히려
현 상황에서 법인이 다른 병원들로 서울백병원 교직원을 흡수시킬 경우, '연쇄적인 경영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각 병원의 적자 증가세를 전환시킬 복안이 법인 측에 있는지 의문이라고 되묻기도 했다.
연합뉴스중구의 유일한 대학병원인 서울백병원이 코로나19 팬데믹 최전선에 서있었단 점도 강조했다. 조 회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지금도 응급환자를 이송할 병상이 부족해 지역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며 "서울백병원이 폐원된다면 중구를 비롯한
서울도심에 심각한 의료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병원을 창립한 고(故) 백인제 박사의 설립이념이었던
'인술제세(仁術濟世·인술로써 세상을 구한다)'도 내세웠다. 조 회장은 "서울백병원을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폐원하는 것은 백 박사께서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백병원을 위해 평생을 바쳐 일해온 교직원들과 평생 동안 서울백병원을 다니며 건강을 관리해온 환자들, 그리고 중구 지역민들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처절한 고민 없이는 함부로 폐원을 결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저희 서울백병원 교수들은
폐원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겠다는 TFT 결정을 취하하고, 서울백병원 회생과 발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교직원들과 대화할 것을 법인에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제학원 측은 폐원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충분한 내부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