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文정부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마지막 위안부 소송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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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2019년 11월 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종민 기자2019년 11월 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용수·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20명은 지난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국가면제 원칙'을 들어 이 소송을 각하합니다. 각하는 일정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을 심리할 필요 없이 소송 절차를 마친다는 뜻입니다.

'국가면제 원칙'이란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입니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해 각종 전쟁범죄를 이 원칙에서 예외로 둬야 할지 여부는 늘 논란이었습니다. ICJ(국제사법재판소)는 물론 전세계 법조인들이 골머리를 앓아왔죠.
 
한국 사법부는 오랫동안 이 고민을 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 등 다른 위안부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는 "일본은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고요. 일본군의 범죄에 대해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양측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지만, 이용수 할머니가 낸 소송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 할머니는 지난 11일 변론에 직접 참석해 "일본에 배상하라고 30년 넘게 외쳐왔다"며 "재판장님, 내가 죽기 전에 일본이 해결하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위안부 생존자는 단 아홉 분. 어렸을 때엔 나라를 잃어버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뒤에는 '주권주의'라는 벽 탓에 적절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국가면제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관부 재판'으로 유명한 야마모토 세이다 변호사의 증언을 토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까방권'이 있다는데… 

야마모토 변호사는 30년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활동해 온 인물로, 1992년 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이른바 '관부 재판'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해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지난 11일 한국 법정의 증인석에 섰습니다. 온갖 사례를 들어 일본 정부가 그동안 어떻게 '국가면제 원칙'을 변칙적으로 적용해 왔는지, 어떻게 배상 문제를 피해왔는지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국가 면제주의를 위안부 사건에만 적용하고, 다른 사례에서는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죠.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中
원고 측 대리인: 이 규정에 따르면 가해자가 고문 등으로 사망 상해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일본에서 발생했고 가해자가 일본 국내에 있었다면, 가해자의 행위에 국가면제 원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야마모토 변호사: 그렇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외국인의 불법행위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을 예로 들었는데요. 일본 영토에서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가 김대중 당시 야당 대표를 납치한 사건이죠. 그렇다면 사건이 벌어진 일본 호텔 측에서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국가 면제원칙'의 예외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야마모토 변호사의 답변이었습니다. 불법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비인권적인 짓을 저지른 거니까요.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 증인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 증인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미군기지 소음과 관련한 재판에서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사례를 열거했습니다. 즉, 일본 대법원은 일본이 타국에 의해 손해를 볼 때엔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일본이 타국에 손해를 끼쳤을 때엔 이를 적용하는 '이중성'을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1800년대 초 '국가면제 원칙'이 국제법 체계에 처음 등장한 이래 주권과 인권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논란은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의 경우로 치환해 보더라도 결국 조선이 주권을 뺏겨 개인의 인권마저 유린당한 꼴이니, 쉽사리 '인권이 주권에 우선한다'며 '국가면제 원칙'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야마모토 변호사의 답을 살펴보시죠.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中
원고 측 대리인: 일본에서도 국제인권법적 관점에서 '국가면제 원칙'이 논의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떤 논의가 진행되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야마모토 변호사: 일본에서의 논의도 그렇고 세계적인 논의도 그렇고, 인권을 위해서 국가면제를 제한하자는, 그러니까 인권과 주권면제의 충돌에 대한 논의에는 대략 두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면제원칙에서 예외로 하자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이미 대다수의 국가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어서 이미 관습국제법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됩니다.

국가면제, 주권면제는 나름대로의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대한 인권침해, 국제법상의 강행규범(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 위반이 있다면 국가면제에서 예외로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은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 수단이 국내 법원인 경우, 그 재판을 받을 그 피해자의 권리가 국가면제 원칙에 우선한다는 논리입니다.

'국가면제 원칙'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실제로 비슷한 사건을 놓고 우리 사법부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을 정도로 애매모호한 논리입니다. 어떤 해석이 더 와닿는지 직접 살펴보시죠.

2021. 1. 8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이옥선 할머니 등 손해배상청구소송 中
재판부: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게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일본제국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는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일본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 (중략)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지, 국제 강행규범이라는 절대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2021. 4. 21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 이용수 할머니 등 손해배상청구소송 中
재판부: 대한민국은 외국을 상대로 한 민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해 법률을 제정한 적이 없고,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상호간의 민사재판권 인정 여부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적도 없다… (중략) 설령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구제의 필요성 등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 국제관습법에서 인정되지 않은 새로운 예외의 창설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본에서 소송하자고요? 마지막 구제수단이 된 한국 법원

경기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마련된 위안부 피해자 추모 공간. 연합뉴스경기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마련된 위안부 피해자 추모 공간. 연합뉴스
아무리 한 국가의 주권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해당 국적의 외국인에게 '까방권'을 줘서는 안된다는 야마모토 변호사의 의견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공무를 수행 중이면 '까방권'을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외국 영토에 있는 우리 대사관은 우리 영토로 간주하듯이요. 무엇이 국가 면제주의에서 예외로 적용해야 할 불법사항인지 어떻게 판단할까요? 아울러 그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른 국가에서 소송을 이어나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생깁니다.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中
재판부: 이 사건 주심판사입니다. 기존의 절대적 주권면제론에서 제한적 면제로 넘어오는 과정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외국 국가의 행위에 대해 주권적 행위와 비주권적 행위로 나눠서 제한적으로 면제 여부를 해석한다는 것이 제한적 면제론인 것 같습니다. 주권적 행위와 비주권적 행위의 측면에서 위안부 사안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야마모토 변호사: 실제로는 주권 행위와 업무관리(비주권적) 행위를 분리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외교관이 외국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때 '운전하는 행위'가 어떤 행위에 해당하는지 구별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가령 그 나라의 외교부 장관을 면담하기 위해 운전하고 가던 중 사고가 났다면 주권행위일까요? 혹은 식료품을 구매하기 위해 운전하는 중이었다면 업무관리 행위일까요? 어쨌든 사고 피해자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는 행위로 인해서 소송을 제기할 수도, 할 수 없을 수도 있는 기묘한 상황에 처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행위라면, 주권행위인지 혹은 업무관리(비주권) 행위이건 불문하고 국가면제를 부정하자는 것이 주권면제론에 있어 예외 적용을 할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왜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소송을 더 진행하지 않을까요? 승소한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야마모토 변호사가 이끌었던 '관부 재판'처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선례도 있긴 있거든요.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국가의 청구권은 없어졌다고 보지만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할 수 없는 까닭은 뭘까요?

2023.05.11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中
원고 측 대리인: 만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새로운 법리를 적용해 지금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가능성은 어떤가요.

야마모토 변호사: 결론부터 말하면 승소 가능성은 없습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인들도 점점 손해배상 소송을 냈어요. 중국인 원고들이 펼치는 주장도 일본국의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쟁점은 주로 세 가지였는데 △시효 제척기간 △대일본제국 헌법 아래에서 이뤄진 국가의 불법행위는 일본국이 책임 행위를 지지 않는다는 국가무답책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청구권이 포기되었느냐입니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피해자 개인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인 피해자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한 권리가 남아있다 하더라도 재판으로 청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권리가 있어도 소송으로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원고 입장에서는 어떠한 법률 구성을 하더라도, 어떻게 입증하더라도 승소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 피해자가 현재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다면 승소 가능성 100% 없다는 말씀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개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문구는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중국인 원고 측에서는 시효 제척기간 문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실효되지 않을 수 있고, 국가무답책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 헌법 아래에서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고 합니다. 조약은 외교적 보호권에 국한되는 것이고요.

이같은 주장을 펴면서 중국인 원고들이 승소하는 사례가 2000년대 들어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2007년 "전후 배상은 양국(일본·중국, 일본·한국) 간 협상에 맡기고, 피해자 개인이 소송을 통해 다툴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냈다고 합니다.

즉, '구제받을 수 없지만 배상받을 권리는 있다'는 게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핵심입니다. 현재 일본정부가 전후 배상 문제에 대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도 하죠. 정부가 배상을 해 줄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자 최고재판소가 내세운 대전제인 만큼 더 이상 법적 다툼이 무용하다고 야마모토 변호사는 결론 낸 겁니다.


정치적으로 달라진 상황? "인권침해 당한 사람 돕는 게 당연"

연합뉴스연합뉴스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황성미·허익수 부장판사)는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과 아울러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낸 '강제동원 손해배상' 심리도 맡고 있습니다. 같은날 오전 변론에서 재판부는 일본 기업에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느냐. 그래서 일본 회사들도 대리인 선임해서 재판에 임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 등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가 내려진 2021년과 항소심 진행 중인 2023년, 한·일 관계에서 달라진 것은 딱 하나 문재인 정부의 퇴장과 윤석열 정부의 등장입니다. 윤 대통령은 "법적 완결성을 지닌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전후 배상 문제에 대해 제3자 변제안을 내놨죠.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과도 맞닿아 있는 제안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채권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는 민법 조항이 있는 만큼 논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북아 외교·안보를 놓고 주요 이해국인 미국이 한일 양국의 화해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재판부가 언급한 '달라진 상황'은 바로 이런 외교적 압력과도 무관치 않을 겁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증언 도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변호사로서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그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과정에 국적과 민족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법원은 피고와 원고의 주장 중 무엇이 더 법리에 맞는지 판단하는 위치이니, 인권변호사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국가면제 원칙'이라는 대전제가 정부의 외교 기조에 영향을 받는 것이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엔 국가면제 원칙에 예외를 적용했다가 지금은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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