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아들이 트라우마 때문에 새벽 1~2시만 되면 '살려달라'고 울면서 깨요. 그 모습을 지켜 보는 제 마음은 찢어질 것 같습니다…."19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모습은 눈 뜨기 보기 어려울 만큼 처참했다.
담뱃불로 지진 흔적, 온몸을 뒤덮은 퍼런 멍과 상처들은 그간 아이가 끔찍한 일을 겪었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9월 13일 지적장애가 있는 A(22)씨는 고등학교 동창 B(22)씨의 부름으로 강원 동해시 한 주택가로 향했다.
깊은 친분이 없던 동창의 연락에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B씨와 그의 곁에 있던 여자친구 C(22)씨, 군 복무 중이던 D(22)씨는 A씨에게서 다짜고짜 휴대전화를 뺏고는 차량에 태워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A씨를 강릉까지 데려간 이들은 A씨 휴대전화로 차량 대여비 60여만원을 결제했다.
그저 하루 정도 버티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B씨 일행에 또 다른 동갑내기 E(22)씨가 합류하면서 지옥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가해자들이 A씨를 표적으로 삼은 데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A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소액결제 방법 등으로 돈을 빼앗자"는 B씨의 제안에 공범들은 한술 더 떠 "차를 빌려서 태우고 다니자"며 맞장구를 치고, 나아가 "A 명의로 대출받아서 나눠 가지자"고 거들었다.
가해자들은 9월 13일부터 10월 1일까지 19일간 강원 동해안과 경기지역 모텔 등을 전전하며 A씨를 가둬놓고 감시하고, 잔뜩 겁을 먹은 A씨에게 자신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해를 가할 것처럼 위협하며 온갖 금품을 갈취했다.
렌터카 비용을 뜯고, 새 휴대전화 두 대를 개통시킨 뒤 가로채거나 A씨 휴대전화를 이용해 멋대로 소액결제를 했다.
그렇게 가져간 돈만 약 640만원에 달했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들은 A씨 명의로 작업 대출을 시도하거나 'A는 B에게 420만원을 10월 2일까지 갚는다', 'A는 B에게 300만원을 10월 2일까지 갚는다'는 내용의 가짜 차용증 작성을 강요했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자 이들은 A씨 행세를 하며 A씨 어머니에게 "교통사고가 났다"고 거짓말하고 차량 수리비와 합의금 등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또 일부러 승용차를 들이받고는 조수석에 타고 있던 A씨가 사고를 냈다고 꾸며 보험금을 타내려는 시도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뜯어낸 돈만 약 1천만원에 달했다.
온갖 수법으로 돈을 뜯는 것도 모자라 B씨 등은 A씨가 기절할 정도로 무차별 폭행하고, 물고문하거나 담뱃불로 지지는 등 비인격적인 가혹행위까지 저질렀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뇌진탕 증세까지 보인 A씨는 약 6주간의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의 악행에 A씨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멍들었다.
A씨 아버지가 가출 신고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해자들은 A씨를 마지못해 풀어주면서도 그 마지막 순간까지 A씨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후 귀가한 A씨가 이들을 고소했고, 군 당국에서 신병을 처리해야 하는 D씨를 제외한 B씨는 구속상태로, C씨와 E씨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게는 중감금치상, 특수상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공갈과 공동강요, 공갈,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컴퓨터 등 사용 사기, 사기, 강요 등 9개 혐의가 적용됐다.
1심은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2부(이동희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B씨에게 징역 4년 6개월, C씨와 E씨에게 각각 징역 3년 6개월과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을 저지르면서 각자 일상생활을 하고, 피해자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고, 비인격적인 가혹행위를 자행한 사실에 "도저히 일반인의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아무런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의 죄질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피고인들의 폭력성과 잔혹성은 통상적인 사건들과 비교해도 심각하다"며 실형을 내렸다.
1심에서 피고인들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범행 수법 등에 비추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가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현재까지 고통받는 점 등을 고려해 더 중한 형의 선고를 구하고자 한다"며 항소했다.
피고인들도 1심 판결에 불복하면서 이 사건은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A씨는 골절상 등 상해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공포와 정신적 충격으로 현재까지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아버지는 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들이 지적장애가 있어도 사람을 참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더라"며 "새벽에는 '살려달라', '신고 안 할 테니까 집에 보내달라'는 등의 혼잣말을 하며 잠에서 깨곤 하는 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눈물만 난다"고 털어놨다.
이어 "조금이라도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가해자를 엄벌해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