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외국계 증권사 SG증권 창구를 통해 대량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추락하기 시작한 종목들의 급락세가 사흘째 이어졌다. 이 기간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종목들의 낙폭은 70%에 가까워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레버리지 투자를 악용한 주가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삼천리(-29.92%)‧대성홀딩스(-29.94%)‧서울가스(-29.85%)‧선광(-29.93%) 등 4개 종목 주가는 26일에도 사흘 연속 하한가로 마감했다. 이 짧은 기간에 주가 낙폭은 65.5%를 넘어섰다.
전날까지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던 세방‧다우데이타 주가도 이날 각각 25.72%, 19.34%씩 큰 폭으로 빠졌다. 다올투자증권(-4.89%)과 하림지주(-5.04%) 주가 낙폭도 작지 않았다. 지난 24일 SG증권 창구의 대량 매물 출회 여파로 급락세를 탄 이 8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단 사흘 만에 약 7조 3천907억 원 증발했다.
이렇다보니 개인 투자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온라인 종목 토론방에는 "며칠 만에 투자금 수천만 원이 날아갔다", "낙폭이 가상화폐보다 심하다", "이게 한국 증시의 현실이냐" 등 분통을 터뜨리는 주주들의 글이 잇따랐다.
시장에선 SG증권과 계약을 맺은 차액결제거래(CFD) 계좌와 관련된 매도 물량이 대거 쏟아지면서 이번 무더기 급락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CFD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채 진입 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만 결제하는 장외파생계약으로, 전문투자자 요건에 맞는 투자자만 거래가 허용된다. 최소 증거금률 40%로 2.5배의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 투자할 수 있다. 실제 이들 종목은 대부분 과도한 차입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은 특정 세력이 이 같은 레버리지 투자 방식을 악용해 주가조작을 했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해당 종목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무더기 급락 종목들의 주가는 작년 하반기 급등하거나 그 이전부터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특정 세력이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은 뒤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했다가 한꺼번에 처분한 것 아니냐는 게 제기된 의혹의 골자다. JTBC 보도에 따르면 가수 임창정씨도 해당 세력에게 수십억 원을 투자했지만 1억 8천여만 원만 남았다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단 시장 혼란이 이어지는 만큼 주가 급락 배경에 대한 조사가 신속하게 마무리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조가조작 관련 행위가 있었다면 그 주체를 신속하게 색출해서 강력하게 처벌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작전세력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출국금지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CFD 거래 시 투자 주체가 드러나지 않고, 증권사 명의로 거래된다는 점에서 불공정 거래에 악용될 소지도 있는 만큼, 개선책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FD는 투자 주체도 드러나지 않고, 계약 증권사가 (대신) 거래를 하는 구조여서 주식 소유권도 투자 주체에게 이전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 당국으로서도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 공시 제도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맞물려 레버리지 투자가 몰리면서 실제 가치 대비 부풀려진 종목의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시장에 번지고 있다. 전날 기준 '빚투'(빚내서 투자) 지표로 여겨지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0조 2408억 원에 달한다. 20조 원 돌파는 작년 6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같은 날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신용잔고율이 10% 이상인 종목 수는 각각 6개, 13개로 모두 19개다. 작년말 9개였던 것이 2배 이상 늘었다. 신용잔고율은 증권사에서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비중을 뜻한다. 신용거래 시 주가가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반대매매가 일어나면서 주가 낙폭이 큰 만큼, 빚투 비중이 높은 종목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신용융자공여, 잔고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주가 하방 위험이 발생할 경우 급매 현상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