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죽어라 일…버틸 힘 없어" 벼랑 끝 전세사기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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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17일 숨진 채 발견
이웃 "평소 힘내자고 말했는데…안타까워"
"대출 상환 3개월 남았는데…집도 경매 넘어가"
숨진 피해자 집에 붙은 수도요금 미납 통지서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2시 12분께 이곳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으나,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그의 아파트 내부에서는 유서가 발견됐다. 그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다. 앞서 인천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 2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2시 12분께 이곳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으나,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그의 아파트 내부에서는 유서가 발견됐다. 그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다. 앞서 인천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 2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얼마 전까지 같이 잘 이겨내보자고 하셨는데.."

17일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A(40)씨가 초점없는 눈으로 말했다. A씨는 인천 전세사기 사태의 피해자이자, 이날 새벽 자택에서 숨진 또다른 피해자 B(31·여)씨의 이웃이다.

이들을 비롯해 이곳에 거주하는 전체 60세대는 이른바 '건축왕' 조직으로부터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 B씨의 경우 9천만원 상당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B씨는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이웃들을 독려해왔다고 한다. A씨는 "최근까지도 B씨는 주민들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독려하고 힘을 내자고 했다"며 "그래서 사고 소식이 더욱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A씨는 "B씨와 평소 왕래는 없었지만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귀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빚을 갚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다"라고 떠올렸다.


9개월 된 아기도 있는데…집은 경매 넘어가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뒤 17일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의 자택 앞에 국화 꽃이 놓여 있다. 정성욱 기자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뒤 17일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의 자택 앞에 국화 꽃이 놓여 있다. 정성욱 기자
하지만 A씨도 벼랑 끝에 선 상황이다. 건축왕 일당에게 사기를 당해 전세금 8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계약 전세금은 7500만원이었지만, 2년 뒤 임대인은 1천만원 인상을 요구했다. 없는 사정에서 어렵사리 모은 돈과 함께 은행에서 6500만원을 전세대출 받아서 집을 구했다.

하지만 전세사기로 수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고, 어느새 대출금 반환일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머물고 있는 집은 이미 경매에 넘어가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지만 마땅한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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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A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안정적인 급여도 없다. 급한 대로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이제 9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벅차다. 부모님에게는 사정도 알리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으니 새 집을 찾아야 하는데 돈은 없고, 수천만원의 대출금은 또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만 해도 너무 힘이 든다"라고 말했다.


숨진 피해자 현관문엔 '수도 요금 미납 시 단수합니다'

17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세사기 피해 여성의 자택 현관문에 '수도요금 미납 안내서가 붙어 있다. 정성욱 기자17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세사기 피해 여성의 자택 현관문에 '수도요금 미납 안내서가 붙어 있다. 정성욱 기자
최근 인천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잇따라 숨졌다.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 건축왕 일당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피해자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는 세 번째 사망자다.

이날 B씨 자택 현관문에 붙어 있는 노란색 딱지는 그의 처지를 말해줬다. 상수도사업소에서 고지한 수도요금 미납안내서엔 '수도 요금이 체납입니다. 120번 확인 후 납부하세요. 미납 시 단수합니다'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미납서 주변으로는 주민들이 함께 붙인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등 전세사기를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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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는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원을 주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 2년 뒤에는 임대인 요구에 따라 보증금을 올려 9천만원에 재계약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 전체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하면서 아파트 전체 세대가 경매에 넘어갔다.

이후 생활고를 겪던 B씨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서에는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그의 자택 앞에는 흰색 국화가 놓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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