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아, 듣고 있니?'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프로배구 2022-2023 V-리그 시상식에서 남자부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한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의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끈 한선수(38·189cm)가 V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세터 최초로 남자부 정규 시즌 최우수 선수(MVP)에 올랐다.
한선수는 1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시상식에서 정규 리그 MVP에 선정됐다. 기자단 투표에서 총 31표 중 19표를 얻어 OK금융그룹 레오(6표), 팀 후배 정지석(4표), 현대캐피탈 허수봉, 팀 후배 임동혁(이상 1표) 등을 제쳤다.
특히 한선수는 남자부에서 세터로는 역대 처음으로 MVP의 영예를 안았다. 2005년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남자부 정규 리그 MVP는 공격수나 미들 블로커의 차지였다. 여자부에서는 이효희 한국도로공사 코치가 현역으로 뛰었던 2013-2014, 2014-2015시즌 연속 정규 리그 MVP에 오른 바 있다.
올 시즌 한선수는 세트 3위(세트당 9.86개)로 여전한 기량을 뽐내며 대한항공의 고공 행진을 이끌었다. 정규 리그는 물론 챔피언 결정전까지 통합 우승을 견인했다. 한선수는 남자부 역대 9번째로 정규 리그와 챔프전 MVP를 석권한 선수가 됐다.
2007년 입단한 한선수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V리그 정상급 세터로 군림하고 있다. 빠르고 정확한 토스로 링컨, 정지석, 곽승석 등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한선수는 특히 리시브가 흔들려도 안정적인 볼 배급을 자랑한다.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프로배구 2022-2023 V-리그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흥국생명 김연경과 대한항공 한선수가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상 뒤 한선수는 "우승해서 너무 기뻤는데 부가적으로 정규 리그 MVP까지 받게 됐다"면서 "동료 선수들의 대표로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기분은 또 좋다"면서 "우승을 했는데 좋은 기분이 배가 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고령 MVP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선수는 "최고령이라는 말이 참 쉽지 않네요"라고 운을 뗐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MVP다.
하지만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한선수는 "관리 비법이라기보다 좀 더 성숙한 것은 있다"면서 "대한항공만의 하나된 팀이 돌아가면서 (나도)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로 인해 다른 선수가 빛을 발할 수 있고. 단단한 팀이 됐다는 게 선수 모두가 오래도록 맞춰오고 호흡하고 그런 성과가 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자신보다는 팀을 위한 희생과 동료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선수는 "지석, 승석이가 있지만 팀이 잘 될 때는 모두 잘 돌아간다"면서 "그러나 안 될 때 끌고 가는 의지가 강했던 게 갖춰진 팀, 이겨낸 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은근한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 한선수는 "선수단에 퍼센티지를 매길 수 없지만 세터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한다"면서 "더 중요해지려면 리시브가 안 좋은 걸 똑같이 정확하게 토스를 해야 하는데 그게 세터의 위치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이어 "잘 된 리시브는 누구나 토스할 수 있지만 안 좋은 걸 해줘야 한다"면서 "그걸 좀 잘 했던 거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한항공 한선수(왼쪽)와 10년 후배 정지석. KOVO
어느덧 최고참급이 된 만큼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선수는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두려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라는 생각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라면서 "과정으로 인해 성공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두드렸으면 좋겠다"고 베테랑으로서 우러나오는 당부를 전했다.
애정이 어린 쓴소리도 했다. 한선수는 10년 후배인 정지석에게 "배구에 좀 더 신경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취재진이) 다 아실 거라 생각한다"면서 "지석이도 나이가 들어가고 더 성숙해지고 생각이 많아질 것이기에 더 배구에 집중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짚었다. 정지석은 2021년 9월 전 여자 친구에 대한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한국 최고의 세터라는 책임감도 크다. 한선수는 국가대표팀에 대해 "도움이 안 되면 팀에서 나오겠지만 필요하다면 제 몸이 다 할 때까지 언제든 뛸 의향이 있다"면서 "그만큼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남자부 최초의 역사를 썼지만 또 다른 새 역사를 꿈꾼다. 한선수는 세터 최초의 MVP에 대해 "처음이기 때문에 영광스럽다"면서 "최초를 쓰고 있긴 한데 마지막으로 팀에서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한선수는 "4년 연속 통합 우승은 처음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면서 "4연속 통합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데 해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남자부 삼성화재는 7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을 이루긴 했지만 정규 리그까지 통합 우승은 3시즌 연속이었다.
"항상 라이벌을 생각하진 않았고 만들지도 않았다. 나만의 배구, 토스만 생각했다"는 한선수. 굳이 꼽자면 자신을 라이벌로 여긴 한국 최고의 세터가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