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즉 청구권 협정 체결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여부, 일본은 소멸됐다 판단하고 있고 우리 대법원은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가 여태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요.
협정 체결 당시 개인의 청구권은 여전히 살아 있는 걸로 양국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이 과거 외교부 비밀문서를 통해 오늘 공개됐습니다. 우리 정부가 제3자 배상안을 먼저 제시하면서 일본 측 입장을 사실상 지지한 상황에서 정반대되는 내용이 나온 건데요.
외교부 담당하는 김형준 기자와 비밀문서 내용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일단 오늘 외교부 비밀문서가 공개됐다는데 언제적 문서가 어떻게 비밀인데 공개된 건가요?
[기자]
외교라는 게 아무래도 나라들 간의 서로 민감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작성 당시에는 비밀로 분류되었던 문서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현지 대사관에서 서울 외교부에 보고한 전문, 다른 나라들과 외교부가 주고받은 이야기의 내용 등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그런데 모든 문서가 영원히 비밀로 취급되는 건 아니어서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경우 한 30년이 지나면 대부분은 비밀에서 해제해 '그 때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국민들이 알 수 있게 공개를 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몇십년이 지나면 공개하는 건 비슷하고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지금 생산된 외교문서들도 2053년에는 공개되는 거죠.
이번에도 36만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문서가 공개됐는데, 대체로 1992년 당시 치열한 외교 현장에서 뭔 일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사료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원문은 서초동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고, 4월 말에 온라인 시스템이 완성되면 원문 정보를 청구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오늘 공개된 문서 중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있었다고요?
[기자]
네, 이야기는 1991년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도쿄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이라는 포럼이 열려 한일 학자들이 참석했는데요.
이 포럼에 민충식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라는 분이 참석합니다. 이 분이 정무수석을 언제 했느냐가 중요해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체결할 당시에 했던 분입니다.
[앵커]
협정 당사자인 셈이네요?
외교부 제공[기자]
그런 셈이죠. 오늘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민 전 수석은 이 포럼에서 "1965년 소위 '청구권' 협정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간 및 국민간 인식의 차가 크다"면서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간에 해결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1965년) 교섭 대표간에도 협정은 정부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면서 "당시 시이나 외상도 동일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했는데요. 시이나 외상이라는 건 협정 체결 당시 일본 외무상이었던 시이나 에쓰사부로를 말합니다. 그 분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민충식 전 수석 본인은 알고 있다고 말한 거죠.
[앵커]
협정에 참여했던 실무자로서 그 때 당시 우리가 이렇게 동의가 됐었다, 암묵적으로, 그 이야기를 나중에 1991년 한포럼에서 한 거네요. 이 얘기는 일본이 지난 2018년부터 우리에게 주장했던 논리와는 180도 다른 거잖아요.
[기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죠. 왜냐면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게 2018년 우리 대법원 확정판결의 내용이거든요.
외교부 제공실제로 같은 포럼에서 일본인 타나카 히로시 교수, 이 분은 일본의 역사적 책임과 반성을 계속해서 주장했던 양심 있는 학자인데 이렇게 발언을 합니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 지역 국가와의 보상 문제가 정부간에 해결되었으므로 모두 종결되었다는 입장이나, 시베리아 억류 일본인에 대한 유족들의 대소련 정부 보상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하는 등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56년 일소 공동선언시 배상, 보상이 포기되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간의 배상, 보상이 포기된 것이지 개인의 권리는 해당 선언에 의해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
이라는 얘기인데, 쉽게 말해서 일본 정부가 과거 일본인들이 소련에 의해서 입은 피해를 논할 때는 개인청구권 문제는 해결이 안 됐다고 주장한다는 거죠. 지금 우리에게 들이대는 논리와 비교해 보면 속된 말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습니다.
[앵커]
이 이야기가 1965년 협정 체결 때 오고갔던 것을 26년이 또 지나서 당시 정부 당국자의 입에서 나온 셈인데… 우리 정부에서 과연 이 내용을 몰랐을 수가 있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지금 일본 측의 논리를 편드는 발언들을 하고 있잖아요. 이걸 알았다면 왜 이런 입장을 펴고 있을까요?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왼쪽), 김성주 할머니가 지난달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기자]
일본은 이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2018년 말부터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우리 해군 함정을 두고 위협비행을 하는 등 각종 도발을 해 왔었는데, 우리 정부 내에서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최근에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진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언이 계속 나온다는 건 어떤 의도인가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죠. 지난달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실제 발언입니다.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과 또 정부의 65년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가 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것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이 협정에 대해서 해석해 온 일관된 태도와 이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서…"
또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해 9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오히려 일본 측 논리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일까지 있었는데요.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던 한반도 전문가,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대법원 판결 내용을 보면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다뤘다'고 했기에 일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우리가 그런 일본 측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이면 가해자인 일본이 갑, 피해자인 한국이 을이 되는 주객전도가 벌어지게 된다"고 비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