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대전 동구 한국철도공사에서 열린 2023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대상기관 워크숍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부터 본격적인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블랙리스트(공직사 사퇴 강요·압박) 사건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017년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로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문재인 정부때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 등이 산하기관장 등이 사퇴 강요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당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한 뒤 좌천성 인사가 난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 6부장은 2019년 8월 '공직관'이 흔들리고 있다'며 직을 던졌다. 그는 "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 검토와 토의, 이견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계속 충돌할 때는 검찰총장의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고 했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주 부장은 2020년 5월 윤 대통령에 의해 법률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블랙리스트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블랙리스트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현 정권에서 집중 타킷이 된 사람 중 한명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다.
법과 원칙을 내세운 이번 정부에서도 감사원이 사실상 사퇴 압박을 목적으로 표적감사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나마 윤석열 총장이 이를 적극 수사했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이렇다할 견제 장치가 없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전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이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을 '표적감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고발했다.
공수처는 4일 고발인 조사를 할 계획이라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전 위원장은 이미 사퇴한 3명의 부위원장 등을 대신해 고발도 했기 때문에 고발인이자 고소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근무태만 감사 4개월만에 나온 5%…진실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윤창원 기자
처음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는 근태 문제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7월 유병호 사무총장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
권익위(감사)는 내부 제보사항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라며 감사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4개월 정도가 지난 후 보수언론인
종합편성채널에서 감사원발(發)로 의미 심장한 기사가 나왔다. "감사원은 지난 반년 간의 감사를 통해 전 위원장의 근무지가 확인되지 않은 날이 근무일의 95%에 달하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TV조선 2023년 1월 18일)전 위원장의 출근이 5%만 확인됐고 나머지는 소명이 안됐다는 내용이다.
전현희 SNS 캡처하지만 전 위원장은 지난 달 24일 SNS에 글을 올리고 "인사혁신처에서 매일 체크한 장관출근부 및 권익위자료에 의하면
권익위원장 출근은 평균적으로 세종33.3% 서울55.3% 나머지는 전국지방 민원 현장출근으로 근무지는 100% 모두 확인가능하다"고 반박했다.
CBS노컷뉴스가 이에 대해 확인해본 결과, 2020년 7월~2021년 11월 권익위원장 세종근무 현황에는 TV조선에 보도한 5%라는 숫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 위원장 측은 "주말에 나온 위원장 동정 보도자료 등을 감안하면 의무 근무일수보다 훨씬 많은 날 일을 했다"고 밝혔다.
감사원도 TV조선 기사에 대해 사실상 부인하며 선을 그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 확인 된 것처럼 쓰지 말라고 한번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면서 "
전 위원장 말고 이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어서 (공개적으로) 설명을 따로 하지 않은 것 뿐이지 (기사 내용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감사원이 사실 여부를 공개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사이 전 위원장은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걸었다.
대검에 수사의뢰…경찰로 내려간후 '함흥차사'
연합뉴스감사원이 전 위원장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이보다 약 3개월 앞선 같은 해 7월 복무 관련 사항 등'에 대한 예비감사를 이틀간 진행한 후 3주간 본감사를 끝내고, 여기에 더해 감사를 2주 더 연장한 끝에 나온 조치였다.
처음 감사는 근무태만에서 시작됐지만 수사의뢰의 핵심은 '이해충돌 유권해석'인 것으로 파악됐다.
감사원은 전 권익위원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 수사와 관련한 추 전 장관의 이해충돌 유권해석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역시 내부제보에 따른 것이다.
추 전 장관 아들에 대한 수사가 검찰총장 지휘권을 가진 추 전 장관의 위치와 상충하지만 이를 문제 없다고 본 권익위의 판단을 문제 삼은 것이다.
권익위는 추 전 장관이 검찰총장(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휘권을 행사하거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대검 공문을 근거로 이해충돌이 아니라고 봤다. 이미 추 전 장관이 해당 직무에 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 위원장 관련 사건은 대전검찰청에 배당된 후 권익위를 관할하는 세종경찰청으로 이첩됐다.
수사한 지 5달째지만 전 위원장에 대해 입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세종경찰청 관계자는 "권익위 내부 등 관련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이번달 까지는 수사를 해야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한달 전 취재했던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장관도 감사원의 논리대로라면 이해충돌이 아니냐는 역공을 맞았다. 한 장관이 인터넷 탐사매체 '더탐사' 강진구 대표 등을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검찰에서 수사중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권익위에 요청한 한 장관 관련 이해충돌 유권해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검에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어서다.
내부제보자는 누구? 野, 유병호 행시동기 지목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제공야당은 내부 제보자로 임윤주 기조실장을 지목했다. 임 실장은 유병호 사무총장의 행정고시 동기인데다가 기조실장이 되기 직전에 유권해석을 담당하는 부패방지국장을 맡았다.
특히 감사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 자료에는
제보자가 권익위 내부 '최고위층'으로 적혀 있다. 권익위에서 위원장과 물러난 3명의 부위원장을 빼면 최고위층은 기조실장이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제보에 의하면 감사원 사무총장이 권익위 제보 당사자가 기조실장이라고 출입기자와 직원에게 얘기하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며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권익위원장과 부위원장의 관련 제보자료를 전달한 적이 있다는 제보도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CBS노컷뉴스에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되는 제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은 내부 제보와 대통령실 자료 전달 의혹에 대해 모두 부인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내부 제보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인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지난 달 28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유권해석과 관련해 진술을 한 증인도 권익위 고위 관계자인데 그러면 감사원에 제보한 고위 관계자와 이 증언을 한 증언자가 만약에 동일인이라면 감사원이 일종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경, 표적감사로 유죄 확정…커지는 위법성 논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감사원 감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감사원은 내부 제보에 따른 감사라고는 하지만 이례적인 이번 감사는 '표적 감사'라는 꼬리표를 떼기 힘든 상황이다.
감사원이 전 위원장에게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감사를 벌였다면 직권남용에 해당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관여했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환경부의 표적감사로 인해 산하단체 상임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면 직원남용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윤석열 정부 들어 사퇴 과정에서 감사원 감사가 이뤄진 인물은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장, 김현준 전 LH사장 등이 있다. 권형택 전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은 국토교통부의 정밀 감사 도중에 그만뒀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지난해 6월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이번 정부에서 이뤄진 찍어내기식 감사가 또다른 블랙리스트 수사의 예고편이 될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