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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만 믿었다가…" 어느 '아토피 치료제' 개발자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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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권자 최성현 박사 인터뷰

딸도 아토피 환자, 환자들 고통 공감
허파 지방 성분으로 새 치료제 개발
대기업인 KT&G 믿고 라이선스 계약
하지만 시판허가 과정 불법행위 적발
18년째 출시 지연, 벼랑 끝 몰린 삶
음해성 소문에 과학자 명성마저 상실
法, 관련 재판서 자회사 위법성 판단
판결문 내 "비윤리적 기업" 표현 등장
"능력 갖춘 기업 찾아 꼭 출시할 것"

최성현 박사가 지난달 24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아토피 치료제 성분인 유토마 외용액 관련 논란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박창주 기자최성현 박사가 지난달 24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아토피 치료제 성분인 유토마 외용액 관련 논란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박창주 기자
"연구가 무르익었을 때 딸이 태어났어요. 저를 닮아 아토피 증상이 심했죠. 먼저 발라보면 됐으니, 실험조건이 좋았던 겁니다. 발 빠르게 신기술을 개발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최성현(58) 생화학 박사가 지방 성분의 아토피 치료 물질을 최초 개발했던 당시를 돌이키며 한 말이다. 연구 5년여 만(2005년)에 '특허'를 출원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사람의 폐(허파) 표면에서 일어나는 면역 원리를 연구해오다, 허파에 있는 특정 지방 성분이 아토피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만든 물질이 '유토마 외용액'이다. 돼지 허파에서 지방분자를 추출한 뒤 별도 정제 작업을 거쳐 얻어낸 물질로, 최 박사가 개발한 아토피 치료제의 주원료다.
 
"아토피를 면역력 부족 문제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런데 유토마는 피부 혈관 기능의 이상을 근본적 원인으로 보고, 이를 완화하는 방식인 거죠. 접근법 자체가 다른 겁니다."
 
유토마 외용액 주성분의 50% 농도로 제조한 화장품을 실제 아토피 환자에게 바르고 복용 항생제를 병행 처방한 결과. 최 박사 소장 자료유토마 외용액 주성분의 50% 농도로 제조한 화장품을 실제 아토피 환자에게 바르고 복용 항생제를 병행 처방한 결과. 최 박사 소장 자료
실제 최 박사가 이 성분으로 화장품 시제품을 만들어 자신의 가족과 아토피 환자들에게 사용해본 결과, 일부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토피의 고통을 몸소 느껴온 그에게 치료제는 딸을 위한 선물이자, 수많은 환자들을 위한 사명이었다.
 
과제는 치료제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하느냐였다. 최 박사가 기술개발 이듬해 연구소(바이오피드)를 차린 뒤, 자본력 갖춘 대기업인 KT&G에게 독점적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이유다.
 
"KT&G가 아토피를 앓는 직원들을 데려와 성능을 실험할 정도였어요. 그 열정을 믿었죠."
 
이후 KT&G가 2010년 자회사인 영진약품과 의약품 제조판매를 위한 양해각서를 맺은 데 이어, 2012년 식약처 시판허가까지 취득하며 신약 출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뢰는 한순간에 깨졌다. KT&G의 자회사가 허가 취득 과정에서 범한 불법행위 등이 드러나면서다. 이로 인해 새로운 아토피 치료기법은 18년째 빛을 보지 못한 상황.
 
최 박사는 지난달 24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조리한 행위는 재판에서 일부분 밝혀졌다"며 "이 때문에 주원료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속한 신약 출시 희망 '물거품'…늪에 빠진 삶

 
유토마 외용액 용기. 알앤에스바이오 제공유토마 외용액 용기. 알앤에스바이오 제공
시판허가 취득 후 1년쯤 지났을 무렵, 최 박사는 주성분 제조 방법이 애초 자신이 전수했던 기술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 박사는 "지방 추출과 정제 과정에 엉뚱한 물질을 첨가하는 식이었다"며 "바로잡기 위해 원료 제조를 맡은 KT&G생명과학과 영진약품 등에 그림 설명서까지 보완해 수정사항을 전달했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그럼에도 KT&G가 돌연 자회사를 통해 판권을 의약·화장품 도소매 업체인 알앤에스바이오에 넘기는 계약을 맺는 것을 보고, 최 박사는 "기술력이 갖춰지지 않아 '그러면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다.
 
알앤에스바이오 입장에서는 기존 영진약품 공시에서 '국내 아토피 치료제 시장 연간 5천억 원 규모, 연매출 100억 원 이상 목표'라는 내용 등을 접하면서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은 물론, 식약처 허가까지 받은 점을 고려해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최 박사의 우려대로 KT&G 측이 되판 기술은 제대로 된 제조공정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실태는 2016년 영진약품의 '품목변경허가신청(주성분 제조원 변경)'에 대한 식약처 실사 중, 특허기술의 핵심인 제조방법까지 변경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또한 2018년에는 허위 시험자료를 낸 사실이 추가 확인됨으로써, 품목변경허가 취소와 의약품 회수 처분에 더해 충분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품목허가마저 취소됐다.
 
기술을 개발한 최 박사와 최종 판권을 사들인 알앤에스바이오 모두 신약 출시에 따른 이익은커녕, 투자금 회수도 못한 채 큰 손해만 떠안게 된 셈이다.
 
최 박사는 "처음 특허 라이선스비 등으로 15억 원 정도를 (KT&G로부터) 받았고, 국가별 신약 허가 때마다 추가로 벤치마킹비를 받기로 했지만 끝내 없던 일이 돼버렸다"고 털어놨다.
 
이어 "신약 출시 기대감으로 개인 투자자들 모집해서 보증도 서줬는데, 상용화 실패로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며 "그제서야 생산 공정을 다시 알려달라고 요청을 해와서 당황스러울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최 박사의 연구실 모습. 최 박사 제공최 박사의 연구실 모습. 최 박사 제공
치료제 개발의 대가로 그는 '빚더미'를 안게 됐다고 했다. "몇 달치 월급이 밀려 회사(연구소) 직원들은 이미 떠났고, 회사는 경매 절차에 넘어갔다"며 "법원에서 딱지들이 날아오는 등 경제적으로 파산 수준에 놓이면서 지금까지 강원도 산골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체불 임금을 해결하기 위해 빌린 돈으로 소위 '돌려막기'를 하느라 빚은 계속 불어나 "차비가 없어 검찰 참고인 조사 가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 가족들도 피난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그는 "KT&G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려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닌가 싶다"며 "식약처가 허가를 무분별하게 내준 것도 심각한 문제 같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퍼진 '음해성 소문'도 그를 괴롭혔다. 최 박사는 "투자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약은 만들기 어려워서 힘들다', '효과가 없고 단가가 비싸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심지어 '최 박사는 성격이 괴팍한 미친 과학자'라는 얘기도 들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근거 없는 소문에 지금까지의 지식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됐다"며 "특허 권리 기간이 20년인데 벌써 18년을 허비하면서 기술의 권위와 명성이 박살났다"고 토로했다.
 

KT&G 자회사 불법행위 적발…판결문에는 "비윤리적 기업"

 
이처럼 신약 계획이 무산된 것에 대해 판권을 샀던 알앤에스바이오는 2019년 영진약품이 유토마 외용액 판매권에 대한 계약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수년간 재판 끝에 지난달 2일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는 영진약품이 알앤에스바이오에 94억여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사업 지출비·기대수익(44억 원)과 위약벌금(50억 원)을 합친 금액이다.
 
적법하지 않게 이뤄진 허가 등으로 인해 판권 매수 업체가 손해를 입은 점을 감안, 그에 따른 배상 책임을 물은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영진약품은 항소 방침을 공식화한 상태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주성분 제조공법의 변경이 불가피했다는 게 영진약품의 주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에는 영진약품이 여러 차례 식약처를 속이는 등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범죄 혐의 내용 등이 담겼다. 영진약품 소속 수석연구원이 수원시 영통구 광교에 있는 연구사무실에서 '변경된 제조법이 주성분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허위 자료를 작성·제출해 앞선 형사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내용도 포함됐다.
 
아토피 치료제 개발 배경과 상용화 과정에서의 각종 논란 및 피해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는 최 박사. 박창주 기자아토피 치료제 개발 배경과 상용화 과정에서의 각종 논란 및 피해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는 최 박사. 박창주 기자
이번 판결에 대해 최 박사는 "부당한 행위와 부실한 허가 절차에 대한 사실관계가 일부분 확인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결론을 얻기까지 과학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모에 대해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라고 되짚었다.
 
특히, 재판부는 영진약품을 가리켜 '비윤리적 기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극히 비윤리적인 기업인 점을 고려하면, 피고는 제조능력이 없었음에도 허술한 식약처를 기망하여 이 사건 품목허가를 받았을 개연성도 배척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식약처는 인력과 예산 한계 등으로 실증 대신 서류 심사 위주로 허가를 해왔는데, 피고가 이를 악용했다고도 지적했다. 식약처의 허술한 허가시스템에 대해서도 꼬집은 것이다.
 
최 박사는 "결과적으로는 위법성이 드러나 다행이지만, 수사와 재판에서 대부분 사안들이 다수결로 결정되는 듯한 모습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며 "기초적인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접근을 통해 재판이 이뤄졌다면 더욱 합리적이고 깊이 있는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은 다수결이 아닌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업그레이드 된 기술로 상용화 이룰 것"

 
비록 특허 유효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토종 아토피 치료제품을 세상에 내놓겠다는 의지만은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게 최 박사의 각오다.
 
최 박사는 "최초 출원한 특허권은 2~3년여 정도밖에 권리 기간이 남지 않았지만, 새로 개량한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며 "허파 지방이 아닌, 유사 물질로도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단 "그간 대기업을 섣불리 믿었다가 소송전을 치르고 고통을 겪지 않았느냐"며 "이번엔 생산력 갖춘 회사를 먼저 찾은 뒤 화장품 형태로 반드시 상용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존 유토마 성분 관련 기술에 대해서도 "법적 문제를 매듭짓게 되면, 제조공법을 더욱 가다듬어 그간 진행해온 상용화 절차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최 박사는 "유토마는 아토피 치료를 위한 원조격 물질"이라며 "딸처럼 아토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다. 그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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