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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우리은행 700억 횡령 재판…검찰은 왜 법원을 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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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회삿돈 700억 원을 횡령한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7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직원이 빼돌렸고, 심지어 은행은 10년 가까이 이를 몰랐다는 일이 마치 영화 속 얘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사건이었죠. 주범과 그의 동생에게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3년, 징역 10년이 선고됐고 647억 원 추징이라는 중형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번 주 열린 2심 재판에서 "1심 재판은 잘못됐다"라며 1심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대체 검찰은 왜 화가 났을까요?

오늘 '법정B컷'은 우리은행 700억 횡령 재판에서 벌어진 법원과 검찰의 갈등, 그 장면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심 재판은 틀렸다. 파기하라"… 법원 직격한 검찰 

연합뉴스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조용래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우리은행 직원 전모(44)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합니다. 범행을 도운 동생 전모(42)씨도 징역 10년을 선고받습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에 피고인은 즉각 항소합니다. 그런데 더 격앙된 모습으로 항소장을 제출한 쪽은 검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달 21일 열린 항소심(2심) 재판의 첫 공판 기일에서 검찰은 1심 재판부를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법령 위반을 시작으로 양형 부당까지 사실상 거론할 수 있는 항소 이유 대부분을 모두 언급했습니다.

2023.2.21 우리은행 횡령 사건 항소심 1차 공판기일 中
재판부 "1심 판결(원심)에 대해서 피고인 및 검찰 모두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검찰 측에서 항소 이유를 구두로 변론하실래요?"

검찰 
"네. 검사는 원심 판결 전부에 대해서 법령 위반, 법리 오해, 사실 오인, 양형 부당으로 항소했습니다. 원심 참가인에 대한 추징 선고 부분에서도 법령 위반, 법리 오해 등으로 항소했습니다" 

보통의 재판에선 항소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지만 이날 우리은행 횡령 항소심 첫 공판에서 검사는 항소 이유 설명에만 10분 가까이 썼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2심 재판부에 1심 재판을 취소해 달라고, 즉 파기환송까지 요구합니다.

검찰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요? 사건의 발단은 1심 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은행 횡령 사건은 주범과 공범인 전 씨 형제가 범행을 인정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분위기였죠. 재판부는 재판 내내 피고인들의 구속 기한을 언급하며 재판 절차가 빨리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7일 열린 4차 공판 기일에서 검찰은 돌연 추가 기소할 것이 생겼다고 밝힙니다. 이날은 선고를 앞두고 재판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변론 종결 기일이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수사를 하다 보니 전 씨 형제가 훔쳐 제3자들에게 빼돌린 회삿돈 약 91억 원을 추가로 발견했다며 재판 연장을 주장합니다. 우리가 추가 범행을 또 찾았으니 공소장을 변경해야 하고, 재판도 더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었습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재판부는 변론 종결 기일을 이미 진행한 상황이니 절차에 따라 구형을 먼저 하고, 이후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면 검토하겠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거부합니다. 그렇게 아주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 없이 변론이 종결됩니다. 이어 재판부는 9월 30일에 선고하겠다고 선고 기일을 잡았습니다. 법원과 검찰, 양측의 기싸움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변론 절차가 종결되고 선고 기일까지 정해진 상황이었던 9월 22일,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합니다. 대법원 판례상 선고 기일이 잡힌 뒤 제출된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은 법원이 허가할 의무가 없습니다.

역시나 9월 30일 열린 1심 재판 선고 기일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합니다. 신청서를 봤더니 추가로 발견된 범죄가 기존 범죄와 방법, 시기 등이 달라 포괄일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공소장 변경은 기존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신청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2022.9.30 우리은행 횡령 사건 1심 재판 선고기일 中
재판부 "변론 종결 직후에 검찰에서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과 변론 재개 신청이 있었습니다. 변론 종결 이후의 공소장 변경 허가하는 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또 (공소장 변경은) 동일성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할 것인데, 기존 공소사실과 추가 범행은 피고인의 지위, 범행 방법이 다릅니다. 태양(모습, 형태)이 현저히 다르거나, 공범 관계가 구체적으로 적시 안 됐거나, 범행 방식도 구체적으로 표현이 안 돼 포괄일죄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공소장 변경을 불허하기로 했다는 점 설명드립니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이 요건에 맞지 않음을 설명한 재판부는 선고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합니다. 양측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입니다.

2022.9.30 우리은행 횡령 사건 1심 재판 선고 기일 中
재판부 "검찰 신청 기각하고 판결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찰 "재판장님! 구형 안 했습니다. 구형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부 "변론 종결까지 다 했는데, 변론 재개를 허가해달라는 취지와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검찰 "형사소송법에는 검사의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고 돼 있지 않습니까?"

재판부 "그 기회는 이미 부여했습니다"

검찰 "의견 진술하겠습니다"

재판부 "선고합니다. 이유부터 낭독하겠습니다 (중략)"


검찰은 구형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지난 기일에서 이미 구형할 기회를 줬고 검찰이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합니다. 그렇게 검찰 구형 없이 이뤄진 1심 재판에서 전 씨 형제에게는 각각 징역 13년과 10년이 선고됩니다.

검찰은 '범죄이익 환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검찰은 즉각 항소합니다. 이어 항소심 재판에서 항소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며 1심 재판을 취소하라고 요구합니다.

2023.2.21 우리은행 횡령 사건 항소심 1차 공판기일 中
검찰
"원심은 선고 기일에 공판정에서 재판 참가를 신청한 8명에 대해서 검사 및 피고인에게 구두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했고, 구두 변론을 들어서 참가를 결정하는 등 실질적으로 변론을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공소장 변경에 대해선 검찰의 아무런 의견도 없이 공소장 변경을 불허하고, 최종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선고했습니다. 제3자에 대한 추징 선고를 대거 누락하고, 포괄일죄 범죄 일부에 대해서만 선고하는 등 중대한 위법이 있습니다. 추징 필요성에 대한 심리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추징을 선고한 것이고 추징금 산정 과정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입증 기회를 전혀 부여하지 않고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하는 등 재량권을 남용했습니다"


그리고 추가 수사로 밝혀낸 약 91억 원의 환수를 위해서라도 1심 재판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행 부패재산몰수법은 몰수에 관해선 마약거래방지법의 규정을 따르고 있는데, 몰수 대상 재산을 전달받은 제3자는 1심 재판 전까지만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범죄 수익을 환수하려면 1심 재판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한 겁니다.

2023.2.21 우리은행 횡령 사건 항소심 1차 공판기일 中
검찰 
"1심으로 환송이 상당하다는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이 사건에서 횡령 금액이 제3자에게 무상으로 귀속된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서 1심 재판 전까지 (제3자들에게) 재판 참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재판부에 기일 속행을 요구했지만, 재판부의 전격적인 종결로 환수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1심 재판부가 추징을 선고한 2명보다 더 많은 무상의 금액을 제3자들이 챙겨가서 형평성의 문제도 있습니다. 참가인 2명은 1심 재판에 실질적으로 참여했지만, 나머지 참가인은 1심 재판에서 참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귀책사유도 없이 참가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추징을 항소심에서 선고하면 '심급의 이익 박탈' 문제가 있습니다. 1심 절차를 다시 열어서 진행하는 것이 절차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합니다"


검찰은 전 씨 형제가 횡령한 돈을 받은 참가인들 중 대부분이 1심 재판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2심 재판을 그대로 진행할 경우 절차상 문제가 생긴다고도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에 참여해 다툴 권리를 받은 참가인들과 달리 이들은 1심 재판에서 싸워보지도 못한 만큼 심급의 이익 박탈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범죄수익 환수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항소심 재판부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2023.2.21 우리은행 횡령 사건 항소심 1차 공판기일 中
검찰
"본 사안은 피고인(전 씨 형제)에게 추징을 선고해도 더 추징할 돈이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는 판결이 될 것입니다"

"검찰이 최선을 다해 현재까지 확인한 제3자 범죄수익은 91억 원입니다. 이와 같은 범죄수익 환수의 실질적 기여를 외면하면 범죄이익 환수라는 국가적 의지에 대해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서 검찰은 전 씨 형제가 제3자는 물론 조세회피처로 빼돌린 돈까지 추적해 발견해냈습니다. 그리고 환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선 1심 재판 절차 등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법원이라고 범죄이익을 환수하고 싶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구속 기한 만료가 다가오고 있던 상황에서 재판부도 적지 않은 압박을 느꼈을 겁니다. 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형사재판은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와 가급적 빠른 선고를 미덕으로 삼습니다.

이에 재판부가 빠른 재판 절차 진행을 예고한 상황에서 변론 종결 기일에 검찰이 요구한 공소장 변경과 재판 재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게다가 공소장 변경 요건에 맞는지를 두고도 법원과 검찰의 입장이 다른 상황이기도 합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에 시선이 쏠립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 달 16일 다시 재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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