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검경 간 수사준칙 개정과 관련해 사실상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이 불송치하기로 결정한 사건에 대해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도록 요구할 권한 등을 대폭 확대하고, 현행법으로 제한됐던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놨다.
이에 경찰은 "법률상 근거가 없다", "논의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검토의견을 통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무부가 작성한 수사준칙 개정 초안이 강행될 경우, 경찰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법무부 '재수사 후 송치 요구' 조항 강화…경찰 "삭제 바람직"
법무부의 검경 수사준칙 현행안과 개정 초안, 경찰청 수정안 비교.
23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수사준칙 입법예고안 초안'(수사준칙 개정 초안)을 보면 법무부는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을 확대했다.
현행법상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 결정할 경우 검사는 한 차례에 한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이처럼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한 이후 경찰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명백한 법리 해석의 오류나 위법 등이 없으면 경찰에 다시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번 수사준칙 개정 초안에 '재수사 요청에 대한 수사가 전부 또는 일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도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검사의 재수사 요청 사항들을 경찰이 온전히 따르지 않을 경우, 검사가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으로 종결한 사건을 검사가 언제든 다시 수사할 근거를 만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경찰은 검토 의견에서 "재수사 후 송치 요구는 법률상 근거가 없어 원칙적으로 삭제가 바람직하며,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경우에도 그 요건을 엄격히 규정해야 하므로 재수사 요청의 '일부' 불이행을 요건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전지법 판례를 근거로 "법원(항소심)도 재수사 요청 사안에 대해 무조건 검사의 요구대로 해야 되는 것은 아니며, 재조사 여부 및 재조사 시 어떠한 방식으로 할지는 전적으로 경찰의 재량 판단에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아울러 검사가 재수사 요청 후 송치 요구를 통해 한번 가져간 사건은 다시 경찰에 보완수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경찰은 "재수사 후 송치 요구한 사건은 검사가 '원칙적으로' 직접 보완수사하라는 취지이나 이와 같이 검사에게 재량을 주는 방식은 현재도 검사들이 대다수 사건을 경찰에 돌려보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재수사 후 송치 사건을 다시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할 수 없도록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은 이의신청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약 30%가 경찰에 다시 보완수사 형식으로 돌아온다는 통계도 적시했다.
檢 '직접 보완수사' 원칙으로…경찰 "예외적으로 해야"
법무부의 검경 수사준칙 현행안과 개정 초안, 경찰청 수정안 비교.법무부는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 권한도 크게 확대했다.
현행법상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특별히 적접 보완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나머지 사건은 모두 경찰에 요구해야 한다. 검사의 직접 수사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법무부의 수사준칙 개정 초안에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검사의 보완수사가 원칙이고 보완수사 요구는 예외적인 경우로 설정해 놓은 것으로, 문언상으로는 현행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경찰은 검토 의견으로 "송치 이후 '보완수사 요구'는 필요 최소 한도 안에서 예외적으로(직접 보완수사가 현저히 불합리·불가능 등) 하도록 초안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검사의 재량 행사인 보완수사 요구의 합리적 행사 기준을 재량 준칙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檢 '선거범죄' 수사하면 알려줘야…경찰 "논의 안 된 사안"
법무부의 검경 수사준칙 현행안과 개정 초안, 경찰청 수정안 비교.검경은 '중요사건 협력절차'와 관련해서도 대립각을 세웠다. 중요사건 협력절차는 검경 등 수사 기관이 특정 사건을 수사할 때 관련 사실을 서로 알리는 것으로, 통상 경찰이 검찰에 수사 개시 등에 대한 사실을 알리는 것을 뜻한다.
법무부는 이번 수사준칙 개정을 통해 경찰이 검찰에 수사 사실을 알려야 할 범위를 확대했다.
현행법에는 공소시효 임박 사건이나 내란, 대형참사, 선거 등 중요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에 수사 사실을 알리도록 돼 있는데, 법무부는 대공(對共)과 노동, 집단행동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역시 검사에 알리도록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의 조직·구성·가입·활동 등과 관련한 사건', 즉 조폭 범죄 등과 같은 사건도 검사에 알리도록 했다.
여기에 경찰은 검토 의견에서 "'대공', '선거', '집단 행동'은 개념이 불분명하므로 좀 더 명확하게 변경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은 주로 특별사법경찰이 1차적 수사를 맡는 분야로 수사준칙의 대상인 일반 사법경찰관의 수사와 직접적 관련성이 부족해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또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중 공직선거법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 3개월 전까지 수사 사실을 전달하도록 했다. 공소시효가 짧은 선거 범죄의 경우, 검사가 사건을 꼼꼼하게 챙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은 검토 의견을 통해 "제4차 전문가·정책위원회의에서 중요사건에 대한 통보 의무 규정 신설에 대해 수사지휘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수용 불가한 것으로 이미 조정한 바 있다"며 "선거범죄 특칙은 기존 전문가·정책위원회의에서 일체 논의되지 않은 사안으로, 회의 종료 후 미논의 사항을 개정안에 추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6월부터 경찰과 검찰, 해양경찰청 및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책임수사시스템정비협의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수사준칙 개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말 이런 내용의 개정 초안을 각 관계 기관에 보내 검토의견을 요청했다. 향후 행안부 등과 협의를 마무리한 뒤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