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 문혜경이 10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단식 8강전 도중 왼 발목 부상을 당해 쓰러지자 한재원 코치가 상태를 살피고 있다. 오키나와=노컷뉴스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한국 여자 소프트테니스(정구) 간판 문혜경(26·NH농협은행)이 아찔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문혜경은 10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 망코 시민경기장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단식 8강전 도중 왼 발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일본의 신성 나미오카 나나미(일본체육대학)의 날카로운 스트로크를 받아 넘기려다 접질린 것.
코트에 주저앉은 문혜경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NH농협은행 스포츠단 장한섭 단장, 유영동 감독, 배경복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국제 이사 등 관계자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NH농협은행 한재원 코치와 동료 선수들, 대회 관계자들이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는데 문혜경은 눈물을 흘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당초 이날은 오전부터 내린 비로 코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인조 잔디에 깔린 모래에 완전히 물기가 가시지 않았다. 달려가면서 미끄러지듯 스트로크하다 자칫 부상을 입을 수 있었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문혜경이 백핸드 스트로크를 하고 왼발로 멈추려고 했지만 미끄러지지 않고 덜컥 모래에 걸렸다.
경기장에 구급차가 대기하지 않았던 점도 아쉬웠다. 문혜경은 20분 정도 찬 코트 바닥에 앉아서 앰뷸런스를 기다렸고, 구급 요원들의 부축 속에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관계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NH농협은행 문혜경이 10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단식 8강전 도중 왼 발목 부상을 당해 쓰러지자 동료 선수들이 보살피고 있다. 오키나와=노컷뉴스
유영동 감독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이 대회는 선수들에게는 부담이 됐을 수 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출전을 결정했는데 혜경이가 부상을 당한 게 내 잘못인 것 같다"고 자책했다. 당초 이 대회는 2020년 열릴 예정이었고, 주최 측이 한국 여자 실업 명문 NH농협은행의 출전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코로나19로 올해 열리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오는 26일 국가대표 선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일정이 됐다. 게다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맞춰 하드 코트에서 훈련해왔던 선수들이 인조 잔디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난제도 있었다. 때문에 한국 남자 실업팀은 이 대회 출전을 포기해 대전대 선수들이 출전했다. 그러나 NH농협은행은 주최 측에 출전을 약속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됐던 것.
일본 관계자도 문혜경의 부상에 놀라면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NH농협은행의 출전을 부탁했던 국제소프트테니스연맹 토시히로 고가 국제협력위원장은 현장에서 눈물까지 쏟았다.
NH농협은행 문혜경이 10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단식 8강전 도중 왼 발목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오키나와=노컷뉴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심각한 부상까지는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가운데 11일 오전 상태가 호전됐다. 한 코치는 "살짝 붓기는 있지만 귀국해서 치료를 받으면 국대 선발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문혜경은 한국 여자 소프트테니스 에이스로 꼽힌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단체전과 혼합 복식 은메달을 따낸 문혜경은 2019년 타이저우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혼합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대표팀 주축으로서 기대를 모은다.
2019년 타이저우세계선수권대회에서 문혜경이 박규철과 혼합 복식 우승을 차지한 뒤 세리머니하는 모습.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유 감독은 "복숭아 뼈 쪽이 살짝 부은 정도로 다행"이라면서 "사실 혜경이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대회에 문혜경이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여자 단식에서는 입상이 무산됐지만 큰 부상이 아닌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상황.
NH농협은행은 문혜경을 제외하고 11일부터 열리는 복식에 출전한다. 역시 입상도 중요하지만 부상 없이 대회를 마무리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