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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떠나는 '신혼특구 단지'…"애 키우기엔 너무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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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초저출산의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주거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집값 상승에 불안한 마음으로 시장에 발을 디뎠다가 금리 상승에 궁지로 내몰린 영끌족. 민간 전세시장을 떠돌다가 빌라왕의 덫에 걸린 청년들. 애를 낳고 키울 만한 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출산을 꺼리는 미래와 현재의 부부들.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로 정권마다 젊은층과 다자녀 가구를 타깃으로 한 주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을 못따라가면서 헛돌고 있다. 역대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인지 의문을 던지며 시리즈를 시작한다.

[공공임대가 답이다②]
초저출산에 늘린 신혼부부·다자녀 임대주택 가보니
10평 정도 크기에 "애 키우며 계속 살긴 어려워"
"애가 유아되면 3분의1, 입학 전에 3분의1 이사"
다자녀 주택은 더 비좁아…아빠는 거실서 잠자리
신혼희망타운 육아환경 뛰어나…여기도 크기가 불만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행복주택 전경. 정영철 기자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행복주택 전경. 정영철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공공임대, 민간임대보다 출산율도 높다…이유는?
②신혼부부 떠나는 '신혼특구 단지'…"애 키우기엔 너무 좁아"
(계속)


"정부에서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해주니까 좋죠. 10평 정도인데 보증금 7700만원만 내고 따로 월세는 안내도 되고요." 
 
지난 1일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 행복주택 단지 안에서 만난 송모 할아버지(77)는 지금 살고 있는 행복주택에 대해 만족하다고 했다. 송 할아버지 부부는 지난 2018년 말에 이곳으로 이사와 5년 가까이를 살았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청년, 신혼부부 그리고 고령자 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박근혜 정부때 시작됐다. 신도시 개발 같은 도심 외곽의 대규모 택지사업과 달리 역세권 등 도심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단지로 짓는다.
오류동 행복주택은 오류역 철도부지를 활용해 전철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인 역세권 단지다. 단지내 키즈카페를 포함한 공동육아센터가 있어 '신혼 특화 단지'로 이름 붙은 곳이다. 전체 890가구 가운데 40%(356가구)가 신혼부부 몫으로 배정됐다.
 
송 할아버지처럼 가족이 둘인 경우와 달리 자녀를 키우고 있는 신혼부부들은 사정이 많이 달랐다.
 
놀이터에서 두돌된 아이의 그네를 태워주던 강모씨(46)는 "이사갈 계획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실평수가 13~14평인데 집이 작아서 세 식구가 살기 어렵다"고 했다. 강씨는 "101동에 사는 지인도 이사간다고 한다"고 전했다. 101동은 강씨 집보다 작은 10평(전용 36㎡) 남짓이다.
 
강씨는 "주거비가 저렴하고 새집이고 또 전철도 가깝다. 키즈카페도 있고 장난감 대여도 해줘 신혼부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평수를 빼고는 대체로 만족해했다. 그러나 너무 작은 집은 이런 장점들을 모두 상쇄하고, 결국 아이를 계속 키우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공동육아나눔터에서 일하고 있는 홍모씨(48)는 "영아를 키우는 부부는 그런대로 생활할 수 있는데 유아가 되면 3분의 1정도가 이사를 가고, 취학 전에 또 3분의 1이 이사를 간다"고 했다. 홍씨 역시 "공간이 좁아서 이사들을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다자녀가구 전용 공공임대주택 1호인 '1024 퍼스트홈'. 정영철 기자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다자녀가구 전용 공공임대주택 1호인 '1024 퍼스트홈'. 정영철 기자
다자녀가구 전용 공공임대주택은 사정이 더 열악했다. 지난 2일 찾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1024 퍼스트홈'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방문했던 다자녀가구 전용 공공임대주택 1호다.
 
하지만 다자녀가구 전용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내부는 비좁았다. LH에서 원룸 빌딩을 사들여 투룸으로 확장하는 리모델링을 했지만, "잘해야 두명이 적합한 정도"(인근 중개업소 사장)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씨(64)는 중고등 학생인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거실에서 자고 아들과 딸이 방을 하나씩 쓰고 있다. 거실에 있는 식탁은 두 사람이 앉을 만한 크기였다.
 
그는 "예전에 살던 집에 비해서는 좋다"고 했지만, 냉장고를 주방에 두지 못하고 세탁실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룸을 터서 확장하다보니 내벽이 어정쩡한 자리에 위치해 작은 냉장고밖에 들어가지 않아서다. 김씨는 "옵션(무료)으로 설치된 냉장고가 있었는데 작은데다가 얼마 안돼 고장이 나서 교체했다"고 했다. 고장난 냉장고는 LH에서 "버리면 안된다"고 해 베란다에 두면서 공간을 잡아먹었다.
 
퍼스트홈은 한부모이면서 다자녀인 가구가 대상인데 대부분 자녀가 2명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101호(방 3칸)에는 자녀 4명을 포함해 5명이 산다.
 
다자녀 가구를 위한 특화된 시설은 전혀 없어, 출산과 육아를 지원한다기보다는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에 가깝다. "아동 성장에 필요한 적정 주거면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하겠다는 애초 취지와도 상당히 동떨어져 보였다.
 
또 퍼스트홈 주변에는 각종 상점들이 즐비했는데 유흥주점 같은 곳도 적지 않았다.
 
돌봄센터와 새싹커뮤니티 등이 모여있는 경기 평택 고덕지구내 신혼희망타운 1호. 정영철 기자돌봄센터와 새싹커뮤니티 등이 모여있는 경기 평택 고덕지구내 신혼희망타운 1호. 정영철 기자 
같은 날 가본 경기도 평택 고덕지구에 있는 신혼희망타운 1호(르플로랑)는 세 곳 중 가장 여건이 좋았다. 신혼희망타운은 문재인 정부때 신혼부부만을 위해 건설한 아파트다. 단지 안에는 새싹커뮤니티, 국공립 어린이집, 실내 놀이터, 돌봄센터 등 육아 관련 시설들이 집중돼 있어 '신혼부부 맞춤 단지'라고 할 만했다.
 
그럼에도 이곳 엄마들도 집의 규모 때문에 적잖은 고민을 한다. 24평형에 살고 있는 김모씨(37)는 "애 키우기는 참 좋은데 아쉬운 점은 평수"라면서 "지금 3명이 살기에는 적당하지만 애가 한명 더 있으면 큰 평수로 이사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덕지구 내에서 전철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지만, 서울과의 거리 탓(서울역까지 1시간 40분)인지 임대주택 295가구 가운데 약 13%인 38가구가 비어 있다.
 
전체 물량 891가구 가운데 분양물량이 596가구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혼부부들에게 '내집 마련의 기회'를 주려는 목적이지만, 한번 분양하고 나면 더 이상 '신혼부부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 공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남근 공공임대두배로연대 대표(참여연대 정책위원)는 "신혼희망타운으로 계속 남아 있으려면 전체 물량을 공공임대로 유지해야 한다"면서 "분양받은 신혼부부가 집을 팔게 되면 더 이상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이 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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