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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없어 못짓나…5성 호텔과 함께 들어선 '공공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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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초저출산의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주거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집값 상승에 불안한 마음으로 시장에 발을 디뎠다가 금리 상승에 궁지로 내몰린 영끌족. 민간 전세시장을 떠돌다가 빌라왕의 덫에 걸린 청년들. 애를 낳고 키울 만한 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출산을 꺼리는 미래와 현재의 부부들.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로 정권마다 젊은층과 다자녀 가구를 타깃으로 한 주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을 못따라가면서 헛돌고 있다. 역대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인지 의문을 던지며 시리즈를 시작한다.

[공공임대가 답이다⑤]
공공임대 확보는 땅의 문제가 아닌 정책적 의지의 문제
프랑스, 인허가 지렛대로 도심에 확충…주거안정 확보
공공임대 매각한 독일, 임대료 가격표에도 월세 급등
오류동 주민센터에 들어선 공공임대…:공공부지 적극 활용해야"

복합건물 라사마리텐의 백화점 전경과 사회주택 내부. 파리 해비타트 홈페이지 캡처복합건물 라사마리텐의 백화점 전경과 사회주택 내부. 파리 해비타트 홈페이지 캡처
▶ 글 싣는 순서
①공공임대, 민간임대보다 출산율도 높다…이유는?
②신혼부부 떠나는 '신혼특구 단지'…"애 키우기엔 너무 좁아"
③공공임대 경쟁률 315대1…그 오피스텔서 '전세 사기'
④'공공임대 비율' OECD 상위권? 출산율은 왜 바닥일까
⑤땅 없어 못짓나…5성 호텔과 함께 들어선 '공공임대'
(끝)

공공임대 주택을 늘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거론되는 게 '땅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 사례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땅이 아니라 정책적 아이디어와 정부의 의지가 문제라고 말한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훨씬 높은 14%의 공공임대(사회주택*) 비율을 보이면서도 그 목표치를 30%로 늘려잡고 적극적인 사회주택 확대정책을 펴고 있다.
 
반대로 강력한 임대료 통제 정책으로 '임차인의 천국'으로 불렸던 독일은 사회주택을 제때 확충하지 않아 임대료가 치솟아 시회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佛, 공공임대 목표 30%…백화점 지을때 공공임대도 함께


지난 2020년 프랑스 파리 중심 센강변에 지어진 라사마리텐은 유리천장 아래에 백화점을 중심으로 5성급 고급호텔과, 사무실 등이 들어선 전형적인 복합건물이다. 19세기에 문을 열었던 백화점과 주변을 재개발했다. 센강 뿐아니라 퐁네프 다리가 한눈에 보이는 옥상 전망으로 유명한 곳이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놀랍게도 96호의 사회주택이 포함됐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도 들어섰다.
 
이곳 사회주택을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인 파리 해비타트에 따르면, 같은 해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돼 세명의 자녀를 둔 다자녀 가구, 이혼한 교사와 두딸 그리고 파트너로 구성된 가족, 두 자녀를 둔 간호조무사 부부 등이 정착했다.
 
이런 최고급 시설에 사회주택이 들어설 수 있는 것은 파리시에서 사회주택 건설을 인허가의 조건으로 붙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지난 2013년 주택법을 개정해 공공임대 비율을 오는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30% 달성을 공식화했다. 파리에선 인구 1500명이 넘는 자치구와 파리 이외 지역은 인구 3500명을 넘는 자치구가 대상이다.
 
프랑스가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사회주택을 더 많이 짓는 것은 수요에 따른 공급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대도시일수록 집값이 비싸 주택 자가율이 떨어져 임차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파리의 사회주택 비율은 2020년 말 기준 23.6%에 달한다. 서울보다 2~3배 정도 높다.
 
프랑스의 사회주택은 꾸준히 진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60년대 급격히 느는 도시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대도시 외곽에 택지를 개발해 고층의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했다. 이는 지금의 한국의 신도시 개발과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소득층과 이민자 계층이 주로 남게 돼 낙인효과와 슬럼화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다시 도심 속으로 들어왔다.
 
프랑스 사회주택은 국민 70%가 신청 자격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했고, 소득수준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화해 '소셜믹스'가 이뤄진다. 저소득층은 민간임대의 1/4~1/5수준에, 고소득층이라도 절반 이하에 살수 있다.
 

'임차인의 천국' 독일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독일은 지난 2021년 퇴임한 메르켈 전 총리가 2005년 기준 임대료 20유로짜리 집에서 16년 동안 살았을 정도로 '임차인의 천국'이었다. 임대료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워낙 싸다보니 굳이 집을 살 이유도 없다는 인식도 강했다.

베를린 임대료 가격표. 베틀린 의회 홈페이지 캡처베를린 임대료 가격표. 베틀린 의회 홈페이지 캡처 
비결은 임차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주택 정책에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임대료 자체를 사실상 지방정부에서 정한다는 것이다. 50년 전인 1974년 처음 선보인 임대료 가격표는 현재 인구 5만 이상 도시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들어 공개한다. 이를 통해 기준에서 10%를 넘겨 임대료를 책정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새집이나 리모델링 등 주택을 개조했을 경우 등에 한해 이런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임대 계약을 맺을때 기한을 정하지 않으면 통상 10년으로 본다.
 
독일도 어느 정도 물량이 받쳐주는 사회주택 덕분에 강력한 규제정책이 효과를 볼수 있었다.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황이 반전됐다.
 
사회주택은 지난 2006년에만 해도 209만호가 넘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방정부에서 재정문제를 이유로 대량 매각을 하면서 2020년 113만호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전체 주택 가운데 5% 정도에 불과하다.
 
싼값에 사회주택을 사들인 민간 임대 업체들은 이를 수리해 임대료를 올리면서, 가격 급등을 막아왔던 '방파제'에 큰 구멍이 생겼다.
 
150년간의 독일 주택정책을 정리한 '주택, 시장보다 국가'의 저자인 문수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베를린의 경우처럼 블록 전체를 그것도 최고액을 부르는 단기 사모펀드 투자가들에게 매각하는 경우도 흔했다"며 "그 결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임대료 시위. 연합뉴스독일 임대료 시위. 연합뉴스
이민자 등의 유입으로 베를린,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 대도시로 인구가 몰린 것도 임대료 상승의 압박하는 요인이 됐다.
 
이에 베를린은 긴급처방으로 주택임대료법을 바꿔 지난 2020년부터 향후 5년간 아예 임대료를 동결시키려 했지만 "이는 연방정부의 권한"이라는 위헌 판정이 나면서 여의치 않게 됐다.
 
임대료 가격표로 가격 통제가 어렵게 되면서 주거 비용이 급등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례가 속출했다. 급기야 민간 업체가 소유한 임대주택을 국유화해 사회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힘을 받기도 했다. 팔았던 사회주택을 다시 사들이는데 들어갈 비용 때문에 이 역시 무위에 그쳤다.
 

"용산공원·정비창에 공공임대 짓자"…발상 전환할때


행복주택이 들어서 있는 오류1동 주민센터. 정영철 기자 행복주택이 들어서 있는 오류1동 주민센터. 정영철 기자 
프랑스 같이 백화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실험적인 공공임대 건설이 없지는 않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때 사업을 추진한 서울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20년 노후한 주민센터를 다시 지은 이곳에는 180호의 행복주택이 있다. 구로구에서 땅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SH공사에서 건물을 지었다. 주로 청년과 노인들이 거주한다.
 
김남근 공공임대주택두배로연대 대표(참여연대 정책위원)은 도심지역의 공공부지를 적극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동사무소(주민센터), 소방서, 파출소 등 공공시설 위에 고층으로 공공임대 주택을 지을 수 있다"면서 "신당역 사거리에 전화국 부지가 민간으로 넘어가 민간 분양주택이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할 당시 공개한 용산공원 조감도.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할 당시 공개한 용산공원 조감도. 연합뉴스
용산공원 부지나 철도정비창 등에 공공임대 건설을 하자는 의견도 있다. 최민아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프랑스의 경우 공공임대주택도 방이 다섯개라든지 정원이 달린 단독 주택형이라든지 삶의 질이 보장되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있다"면서 "용산공원은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혼합돼서 살수 있는 적합한 입지"라고 밝혔다.
 
최근들어서는 유럽의 사회주택처럼 민간임대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공공성을 담보해 저렴주택(affordable housing)을 늘리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1월 공개한 '민간등록임대주택 관련 제도 변화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민간등록임대주택에도 정부의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공적임대주택의 틀 속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최초 임대료를 제한하고 소득 수준 등 입주자격도 제한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윤 부연구위원은 공공성을 띠는 민간등록 임대는 사회주택과 보통의 시장임대 주택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용어설명>
사회주택=한국으로 치면 공공임대에 해당하지만, 반드시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소유하는 형태는 아니다. 정부나 지역별 주택공사 뿐아니라 민간업체나 주택조합, 비영리단체 등에서 장기임대를 전제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건설한 주택도 포함된다. 공공성을 띤다는 점에서 사회주택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의 공공임대보다 소유 주체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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