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최근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시된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에서 일부 학생이 여교사의 신체 부위를 비하하며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원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교원평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서술형 평가에는 욕설이나 성희롱 등 금칙어가 포함된 경우 답변 전체가 교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필터링을 하고 있지만, 이 학생은 부적절한 단어 사이에 숫자를 끼워 넣는 수법으로 필터링을 피했다.
올해 교원평가는 지난 9월부터 지난달까지 이뤄졌고, 지난 2일 서술형 답변을 열람한 성희롱 피해교사 A씨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A씨는 "누가 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마주치는 학생, 특히 남학생들 중에 그 누구라도 이걸 했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수업을 할 수가 없어서 출근했을 때도 다른 동료 선생님들이 대신 수업에 들어가 주었다"고 말했다.
A씨는 처음에는 학교측에 '학생이 자수해 스스로 잘못을 반성할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트위터를 통해 공론화를 했는데, 현재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현재 건강이 악화해 특별휴가 및 병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최소 2명의 학생이 6명의 교사에게 노골적인 성희롱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교사 5명은 세종남부경찰서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아직 가해 학생을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원평가제도 도입 13년째…도입 취지와 다르게 변질
교육부 제공교원평가제도는 지난 2010년부터 초·중·고교에서 매년 실시돼 왔다. 크게 동료교원 평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로 구성돼 있는데, 동료교원 평가는 온정주의로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폐지됐다.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익명으로 교사의 수업이나 생활지도에 대해 1점에서 5점을 주는 객관식 평가와 교사에게 바라는 점 등을 작성하는 서술형 평가로 이뤄지는데, 학생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생~고등학교 3학년생이 평가에 참여한다.
그런데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원평가는 강제성이 없고 자율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지난해 학생 참여율은 52.3%, 학부모 참여율은 36.3%에 그칠 정도로 저조하다.
더욱이 교육부는 평가 결과 낮은 점수를 받은 교사는 '능력향상 연수'를, 높은 점수를 받은 교사는 '학습연구년 특별연수'를 받도록 지원을 하고 있지만, 올해 '능력향상 연수'를 받은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 제공전교조 '피해사례 긴급 설문조사'…31%가 '성희롱·욕설·인격모독 등' 직접 경험
전교조는 이달 6~7일 회원들을 대상으로 '피해사례 조사'를 벌였는데, 응답자 6507명(남 12%·여 88%) 중 31%가 '성희롱 등으로 직접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동료 교사의 피해 사례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39%에 달했다.
그런데 피해를 입어도 98.7%는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이들은 '익명 조사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인권위 제소나 경찰 신고, 교육청에 알렸으나 의미가 없다' 등의 이유를 댔다.
전교조는 특히 설문과정에서 56명으로부터 성희롱과 인격 모독성 발언 등이 포함된 서술식 답변을 캡처한 파일을 제보받았는데, '묵과할 수 없는 범죄 수준의 답변'도 상당했다고 밝혔다.
전교조 정소영 대변인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말들이 교원 평가를 통해서 교사 개인에게 전달이 되고, 그 교사는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학생들을 계속 마주해야 돼, 응답에 여러 가지 좋은 내용이 있더라도 단 하나의 성희롱이나 인격 모독의 글 때문에 많은 학생들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되고, 또 불안을 가진 채 마주해야 된다는 현실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서술형 평가' 아예 열어 보지 않는 교사들도 많아
연합뉴스서울교사노조 정혜영 대변인은 "많은 교사들이 서술형 평가 문항을 통해 인격 모독, 성희롱을 당해 왔다"며 "서술형 펑가 문항 자체를 읽지 않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경력이 있는 분들은 거의 확인조차 안 하고, 경력이 얼마 안 된 선생님들이 호기심에 열어 보았다가 성희롱적인 발언, 인격 모독, 욕설 같은 것을 접하고는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교원단체들, 교원평가 제도 폐지 촉구
전교조와 교총, 교사노조 등 교원 단체들은 교원평가를 당장 폐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원평가는 '교원전문성 향상'이라는 취지로 시행됐지만 교원전문성은 높이지 못하고 교사 성희롱과 인격모독의 도구로 전락해, 교사들에게 자괴감만 주고 있는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사노조는 "교원평가는 교원의 능력 개발이라는 도입 당시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고, 교사의 사기를 저하하는 역작용이 더 큰 불합리한 제도임이 확인됐다"며 "폐지하거나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폐지나 재설계에 시간이 걸린다면, 교권 침해와 성희롱의 장으로 변질된 서술형 평가 문항부터라도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교사노조의 신지아 대변인은 "서술형 설문조사 때,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때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 문구라도 삽입해서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학생의 교원평가 폐지' 수용 어려워…필터링 개선
연합뉴스교원평가는 교사들의 자기성찰을 유도하고 평가결과를 토대로 다양한 맞춤형 연수지원을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없고, 오히려 성희롱이나 인격 모독의 도구로 전락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원평가는 교원의 자기성찰 유도 등 교원의 전문성 신장 등에 기여한 측면이 있는 만큼 서술형 평가 등 학생의 교원평가를 폐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 서술형 문항 필터링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고 개선해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현재 방식으로는 필터링이 어렵다고 하는데, AI(인공지능) 기법으로 하는 방안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AI 기법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담당 팀에 (제도 개선을 위한) 재검토를 맡겼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해 4월에도 서술형 답변에 필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재발방지책이 어느 정도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