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독립의 기반 '자립 생활 주택'…예산 문제에 "미래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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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이후 자립과 독립 배우는 '자립생활 주택'…부산 18곳 운영
정부와 지자체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으로 자립 생활 주택 지원
장애인 자립 기반으로 큰 역할하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
올해 부산시 관련 예산 전액 삭감하고 국책 사업에 투입해 '불안' 가중
부산시 "국비 확보하려고 계획을 변경한 것…기존 대상자들도 지원 받을 수 있을 것" 설명

장애인 자립 지원 정책이 시범 사업에 불과한 데다 매년 지원 규모나 범위도 오락가락해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혜민 기자장애인 자립 지원 정책이 시범 사업에 불과한 데다 매년 지원 규모나 범위도 오락가락해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혜민 기자
중증 장애인의 독립과 자활을 위한 '자립 생활주택' 사업이 예산 문제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부산시가 기존 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내용이 비슷한 국비 사업에 이를 투입하기로 했기 때문인데, 해당 시설에서 자립을 꿈꾸며 일상을 영위하는 장애인들은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뇌병변 1급 장애가 있는 A(45·여)씨는 이동과 식사 등 기본적인 활동에도 어려움을 겪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도움으로 생활해왔다. 하지만 자신을 돌보던 가족마저 건강이 나빠져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1995년 부산의 한 장애인 시설에 입소했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어쩔 수 없이 몸담아야했던 낯선 장애인시설에서의 생활은 '보호'라는 이름이지만, 마치 통제를 받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공동체생활의 규율이 있다보니 취미생활은 물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나 심지어 식사같은 기본적인 활동조차  자유를 제약당하는 기분이었다.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뤄지는 일이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여러 차례 부당하다고 항변했지만 돌아온 것은 '자기주장 강한 장애인'이라는 불편한 시선이었다고 A씨는 회상한다.
 
시설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A씨는 결국 지난해 부산 사상구에 있는 한 장애인 자립 생활 주택에 입주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자립 생활을 유지하며 사회 일원으로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A씨는 자립 1년 만에 그토록 하고 싶은 취미 활동까지 찾았다. 발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여 태블릿 PC로 시를 쓰는 일이다. 여전히 외출할 때마다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느끼지만 세상을 직접 관찰하고 시로 담아내는 기쁨이 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며 A씨는 웃음을 보였다.

부산 사상구의 한 자립생활주택에 거주하는 A씨가 자신의 방에서 시를 쓰고 있다. 김혜민 기자부산 사상구의 한 자립생활주택에 거주하는 A씨가 자신의 방에서 시를 쓰고 있다. 김혜민 기자
A씨는 "얼마 전 직접 여행 계획을 짜서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정동진에 갔었다. 멋진 바다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살면서 가장 멀리 가본 곳"이라며 "앞으로도 부지런히 세상을 눈에 담아 시집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중증 장애인 A씨가 자립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산시의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시범 사업'이 있다. 시는 해당 사업을 통해 부산지역 장애인 자립 생활을 지원한다. 부산에서는 모두 18곳의 자립 생활 주택에서 장애인 37명이 생활한다. 9명의 활동지원사 역시 부산시 등의 지원을 받아 이들의 자립을 돕는다.
 
자립 생활주택에서는 2~3명의 장애인이 모여 함께 생활한다. 장애인 집단거주시설과 달리 각자 방을 쓰고 개인 생활도 당연히 보장된다. 목욕과 청소, 기본적인 장보기와 휴대전화 사용법 등 일상생활부터 병원 방문 등 건강관리법까지 배운다. 일부 장애인은 일자리를 찾는 일에도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전혜주 사회복지사는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되는 건 너무나 부당한 일"이라며 "장애인이 인간답고 자기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탈시설과 자립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노경수 사상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오면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편견일 뿐"이라며 "장애인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수차례 넘어지고 실패하는 경험을 겪을 뿐, 이후에는 스스로 딛고 일어나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의 한 장애인 자립생활 주택에 거주하면서 새우 손질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 김혜민 기자부산의 한 장애인 자립생활 주택에 거주하면서 새우 손질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 김혜민 기자
이처럼 자립 생활주택은 수년 동안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지역의 버팀목이었지만 최근 들어 사업 지속성이 불투명해졌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자립을 위한 지원 규모와 대상이 매년 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에는 부산시가 정부의 유사 사업 유치를 이유로 기존 예산을 삭감하면서 더 큰 불안감이 생겼다.
 
시는 올해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시범 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비 4억 7천만 원 을 확보하자, 자립 사업 예산을 포함해 자체적인 장애인 지원 사업비 4억3천만 원은 삭감해 복지부 공모 사업 예산안에 편성했다.

이는 정부 예산 덕에 장애인 자립 지원 사업 규모는 더 확대되지만, 정작 기존 사업으로 지원을 받던 장애인들은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지난 17일 부산시청 시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는 장애인자립생활지원 예산 동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혜민 기자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지난 17일 부산시청 시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는 장애인자립생활지원 예산 동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혜민 기자
부산시 지원으로 자립 생활을 하던 B(45·여) 씨는 "(부산시의)시범 사업이 종료되고 (국비에 의한)본 사업이 시행되면 사업 방향이나 대상자를 어떻게 선정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사업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는 소식에 (기존 사업 수혜자들이 배제되고 사업 대상자를 원점에서 다시 선정하면서) 혹시나 다시 시설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부산시는 보건복지부 사업이 국비와 시비를 함께 편성하는 '매칭 사업'이기 때문에 기존 예산을 활용해 국비를 확보한 것뿐이라며 기존 대상자들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사업과 부산시 자체 사업의 성격이 거의 같은 데다 해당 사업이 국비와 시비를 함께 투입해야 하는 매칭 사업이라, 국비를 더 많이 확보하려고 내린 결정"이라며 "부산에서도 40여 명에 대한 지원 사업이 확정된 만큼 기존 자체 사업 대상자에 대해서도 지원이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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