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총파업에 따른 시멘트 출하 중단으로 타설 작업이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화물연대) 총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멘트·레미콘 업계를 넘어 정유, 철강 업계 등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번지고 있다.
총파업 닷새만에 정부와 화물연대가 마주 앉았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 발동이 결정될지 주목된다.
레미콘 공장 멈추고 대체 공정 중인 골조 공사 현장도 한계치 임박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육상 운송 의존도가
큰 시멘트와 레미콘은 지난주부터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고, 이번주부터 사실상 재고가 바닥났다. 레미콘 타설(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붓는 작업)이 어려워진 주요 건설현장은 대체공정으로 작업을 전환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이번 주를 넘기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오전 10시 기준 화물연대 조합원 7600명(전체의 35%)이 17개 지역 177곳에서 집단운송거부(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시멘트는 항만과 철도를 통해 운송된 물량을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로 레미콘 공장과 건설 현장에 운송한다. BCT는 전국에 약 3천대가량이 있는데 이중 1천여대가 화물연대 소속으로 BCT 중 3분의2는 비노조원들이지만 노조원의 보복을 우려해 파업 기간동안 운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이런 영향으로
레미콘은 이르면 29일부터 전국적으로 생산이 중단될 전망이다. 한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저장시설이 있는 오봉역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역 운영이 중단되면서 수도권의 레미콘 공장은 안 그래도 시멘트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화물연대 파업까지 겹치면서 시멘트 재고가 거의 바닥난 상황"이라며 "오늘부터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레미콘업계는 전국적으로 출하가 중단되면 하루 평균 피해액이 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멘트 업계는 당분간은 공장 가동이 가능하지만 파업이 더 길어질 경우 생산 중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9~12월은 시멘트 출하량이 평소보다 많은 성수기로 매일 재고가 소진됐기 때문에 지난 6월 파업때와 비교하면 재고를 쌓아둘 공간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운송중단이 이번주를 넘기면 생산량을 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성수기 하루 출하량은 약 20만t인데 이날 출하량은 2만2000t(추산)으로 차질 물량은 17만8000t, 금액으로는 약 178억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누적기준 매출손실은 642억원으로 추산된다.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전국에 몇 개 현장을 빼고는 대부분의 현장이 레미콘 타설 작업을 중단했다"며 "대체 공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골조 작업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전국 대부분의 건설 현장들의 공정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역시 사흘째 타설공정이 중단됐다.
철강공장 출하 중단…이번주 지나면 주유소에 기름 바닥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하며 카캐리어(자동차 운반차량) 가동률도 떨어지고 있다. 사진은 화물연대 파업 전날인 23일의 광주 서구 기아 오토랜드 광주2공장 완성차주차장(왼쪽)과 화물연대 파업 영향으로 완성차 주차장에 차량이 쌓여가는 24일의 모습. 연합뉴스철강과 정유, 자동차 업계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지난 24일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나선 이후 제품 출하가 거의 '올스톱' 된 상태다. 현대제철의 경우 당진공장을 비롯해 현대제철 전체 공장에서 하루 5만톤가량의 제품 출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포스코도 철강 제품 반출이 이뤄지지 않아 야적장 부지와 공장 내 제품 보관창고를 활용하면서 버티는 실정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7일 철강 출하량은 주말 일평균 출하량(4만5000만t)의 절반(47.8%)인 2만2000만t에 불과했다. '탱크로리'라고 불리는 유조차 운전기사 대부분이 화물연대 조합원인 탓에 주유 업계에서는 석유 제품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 4대 정유사인 SK, GS, S오일, 현대오일뱅크 운송차량의 70~80%가 화물연대 조합원이다.
정유 업계에서는 당장은 수급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주유소에 기름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는 등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민원을 받고 있지만, 다행히 아직 심각한 내용은 없다"며 "화물연대 파업 이전에 기름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대부분 주유소가 통상 2주분의 분량을 확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오늘로 파업 닷새 째인데 이번 주만 지나가더라도 대부분 주유소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완성차 업계는 부품 공급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신차 탁송이 차질을 빚으며 고객 인도에 애를 먹고 있다. 탁송에 이용하는 '카캐리어' 운전기사가 대부분 화물연대 파업에 동참해 직원들이 출고센터까지 직접 차를 몰고 나서는 이른바 '로드 탁송'을 진행하고 있다. 기아 광주 공장에서는 수백 명의 탁송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품 조달에는 큰 지장이 없어 완성차 제조에는 아직까지 타격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어업계도 이번 주 후반부터는 재고 부족 현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지난 24~26일 입출고율이 평소 대비 30~40%로 떨어졌고, 이날은 전주보다는 소폭 올랐으나 여전히 40~50%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24일부터 완성차업계 등에 공급하는 긴급 출하물량을 제외하면 출하가 막힌 상태여서 전국 물류창고에 비축한 재고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 위기경보 최고단계로 상향…산업계, 업무개시명령 발동여부 주목
산업계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화물연대는 총파업 닷새 만에 처음으로 마주 앉았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영구화와 품목 확대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안전운임제는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다만 양측은 29일 다시 만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9일 업무개시명령 발동 여부를 심의할 수 있는 국무회의를 열 예정이어서 업무개시 명령 발동이 현실화될지 산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업무개시명령(운송개시명령)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거부해 화물 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는 경우,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국토부 장관이 내릴 수 있다. 절차상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토부 장관이 발동하게 된다.
수석비서관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노사 법치주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하며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발동 여부를 심의할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노총은 "화물연대 총파업, 운송거부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로 대통령과 정부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화물연대 투쟁이 불법이 아니어서 강제력을 동원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대화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국토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비롯해 대화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 없이, 화물연대와의 대화에 진심을 가지고 참여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산업계에서는 피해가 커질 경우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와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등 건설·자재업계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화물연대는 국가물류와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을 볼모로 국가경제를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명분없는 집단운송거부를 즉각 중단하고 운송에 즉시 복귀하라"고 촉구하며 정부에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로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신속히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국가물류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