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며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환송 인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핼러윈참사 이후 정부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이 들끓고 있지만 대통령실이 이들에 대한 '보호주의' 드라이브를 걸면서 여당의 속앓이가 이어지고 있다. 정권 초기 대통령실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현실적인 판단과 함께 실제 대통령실 측이 최근 당 지도부의 운영에 불편한 기색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사퇴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실은 아직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참사 직후부터 이 장관의 거취에 부정적인 당내 기류가 조성되며 사퇴 요구가 빗발쳤지만, 최근에는 공식적인 사퇴 요구가 자취를 감춘 이유다. 어차피 이 장관이 자리를 내놓고 정무적 책임을 지는 게 정해진 수순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연착륙'을 기대하는 대통령실의 의중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당내에선 이 장관의 거취 문제를 입밖으로 꺼내기가 조심스럽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11일 국민의힘 소속의 한 다선 의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장관이 물러나는 건 시간 문제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이 장관의 거취에 대해 최대한 언급을 아끼는 것부터가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냐"며 "추후 이 장관을 다시 중용할 수 있다는 의지로 읽히는데,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계속해서 '신뢰'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만큼 당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상회의 순방에 나서며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린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는 이유다.
최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웃기고 있네'란 메모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운영위원장으로서 퇴장을 결정한 주호영 원내대표를 겨냥한 공개적인 성토가 이뤄지는 것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회의장을 나가며 장제원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은 지난 10일 "참모들을 퇴장시키기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냐며 의원들 사이에 '부글부글'했다.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원내지도부를 한 번 더 준 건 자존심을 지키면서 성과를 내잔 거였는데, 지금 드러난 걸 보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고, 이용 의원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비슷한 취지의 비판을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의중에 지나치게 촉각을 세우는 당내 현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에 대한 '충성 경쟁' 말고 이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냐. 주 원내대표의 결정이 과했다는 지적이 당내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장 의원이나 이 의원이 굳이 공개적으로 사안을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권 초기 대통령실을 향해 한 쓴소리가 낙인이 돼 돌아올 위험을 생각하면 '침묵이 금'이란 계산이 설 수밖에 없지만, '지나친 몸 사리기'는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관계자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당협위원장까지 새로 공모하는 등 그립이 세지는 게 보이니 다들 단단히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라며 "당내에서 정치를 무서워하고 대통령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그 끝은 얼마나 비극적이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