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한 법정에 두 재판부…'공동심리'가 내놓을 대우조선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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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법정. 고상현 기자법정. 고상현 기자
법정 드라마를 보면 어떤 경우엔 판사가 한 명, 또 다른 경우엔 판사가 세 명인 경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대법원은 예외입니다) 사건의 중요도나 복잡성 등을 고려해 단독 재판부가 심리할 수도, 합의부가 심리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그런데 1일 오후 2시 서울고법 6명의 판사가 466호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민사14부와 18부 판사들이 한 법정에 모여 비슷한 사건 4건을 심리하는 일명 '공동심리'를 진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공동심리가 진행되는 것은 우리 사법 사상 최초라고 합니다.

두 재판부가 심리하는 사건은 꽤나 복잡합니다. 국민연금공단과 디비투자증권 등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투자했다가 분식회계로 손해를 봤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입니다. 피고는 대우조선해양과 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원고는 국민연금과 증권사들입니다. 서울고법 제14민사부는 국민연금공단이 대우조선 등에 낸 소송을, 제18민사부는 디비금융투자 주식회사가 대우조선과 안진회계법인에 낸 소송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예외적으로 한 법정에 이들 판사들과 피고, 원고가 모였던 지난 1일 심리를 전합니다.

대우조선 부실감사 사건, 사법 사상 최초로 여섯 판사가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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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에 앞서 재판부는 이날 공동심리의 의미를 먼저 설명했습니다. 셋이 앉는 법대에 여섯 판사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이날따라 유독 법대가 더 높아보이기도 했습니다.

2022. 11. 1 서울고법 제14·18민사부 공동심리 中
재판부: 공동심리는 재판 심리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제57조에 근거한 것으로서 공동심리에 참여하는 각 재판부가 서로 상대방 재판부가 진행하는 공개 심리를 실시간으로 참관하는 것입니다. 공동심리 재판부는 서로 절차상 필요한 협조를 해야 하지만 이런 협조를 넘어서 각 재판부에 당해 사건의 개별적이고 독립적 권한을 박탈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재판부 합의를 비공개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제65조에 의해 비공개되는 각 재판부 합의는 각 재판부가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공동심리 목적은 동일·유사한 다수 사건이 다수 재판부에 분산된 경우 각 재판부의 독립성을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쟁점과 법리에 관해 재판부가 공유함으로써 보다 충실한 심리 통해 재판에 대한 신뢰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각 재판부가 맡은 사건에 대해 서로 간섭하지 않되 유사 사건을 같이 들여다보면서 일종의 집단지성을 발휘해보자는 겁니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가 동일하기도 하고요. 한 재판부가 비슷한 사건, 예컨대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조직폭력단 단원들의 사건을 동시에 심리하는 '병합심리'와는 개념이나 취지가 좀 다르죠.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민연금은 그해 4월부터 이듬해인 2015년 3월까지 대우조선 회사채 3600억원어치를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사들였습니다. 이중 20억원어치를 15억원에 팔았고, 남은 회사채 중 절반인 1790억원은 출자전환을 통해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팔았습니다. 그런데 회수 금액은 단 991억원. 대우조선이 2012~2014년 실적 등을 부풀린 게 드러나면서 큰 손실을 보게 된 겁니다. 이 소송의 관건은 피고가 본 손해금액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입니다. 보통은 취득가에서 처분가를 제하는 '차액산정방식'이 채택된다고 합니다. 계속 주식을 갖고 있다면 취득가액에서 정상주가를 뺀 차액으로 추정하는 '추정규정'이 적용되기도 합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소송은 지난 1월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과 안진회계법인에 736억원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대우조선은 국민연금에 515억원을 지급하고 이 가운데 약 221억원은 외부감사를 맡은 딜로이트안진이 부담하라"고 했습니다.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준 거죠.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우정사업본부 등 분식회계로 부풀려진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샀다가 손해를 본 다른 기관들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었고 승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동심리를 맡은 항소심 재판부들이 각각 1심 판결을 확정하면 대우조선해양과 딜로이트안진이 떠안을 배상금의 규모는 1000억원대가 됩니다.

이자까지 쳐서 다 갚았다 vs 비싸게 주고 샀으니 손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자, 그럼 대우조선해양은 이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배상금을 내줘야 하는 걸까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배상금 때문인지 이날 변론에 나선 양측 대리인은 여느 때보다 더욱 절박해보였고, 원고 측 대리인의 변론은 한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도 다양한 가정적 상황을 예로 들며 법리를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눈치였습니다.  

2022. 11. 1 서울고법 제14·18민사부 공동심리 中
원고 측 대리인: 회사채를 얼마에 취득하든 회사채 원금과 이자는 모두 동일합니다. 이때 회사채를 얼마에 변제받는지도 동일합니다. 어느 시점에 변제받든, 얼마에 취득했든 그 회사 변제 능력에 달린 것이고 (회수 금액도) 그에 따라 달라진 것이지, 허위공시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중략) 취득 가격에 따라 발생한 손익 구조 차이는 이후 얼마에 변제됐든 계속 유지됩니다.

피고(대우조선) 측 대리인: (이번 회사채 손해배상 소송은) 변제까지 이뤄진 확정적 손해이니, 주주 소송이나 부동산 소송과 달리 변제까지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사채권 취득가액은 당초 변제가액과 변제능력 등등을 계산한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가 300만원에 불과한 가짜 명품과 1000만원짜리 명품이 있다고 칩시다. 가짜 명품을 1000만원에 처분하면, (속아서 산 사람의) 손해는 누가 보더라도 700만원입니다. 그런데 사채권은 처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짜 명품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이건 1000만원짜리니까 갖고 있어, 그리고 나한테 1000만원을 빌려주면 일년 후에 20% 이자를 붙여서 1200만원을 줄게'라고 약정한 겁니다. 회사채로 돌아가서 설명하면, 이 회사 신용가치를 판 것이 아니라 신용 가치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일년 후에 1200만원을 실제로 갚은 거죠. 즉, 원고는 (1200만원을 갚았는데도) 700만원을 또 배상하라는 겁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및 자기자본을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실제로는 손실이 발생했음에도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재무제표를 꾸몄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취득금액과 회수금액의 차이만큼만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원고 측은 손해액 추정규정에 따라 분식회계로 인한 원고의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즉, 시기에 따라 회사채 가격이 다른 만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손해액을 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다투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속된 말로 설명해보겠습니다. 바가지를 쓰면서 입은 손해 자체도 갚아야 한다는 논리와 바가지를 씌웠지만 이자를 붙여서 갚았으니 실제로 바가지를 씌운 것은 아니라는 논리가 맞붙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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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넘게 이어진 양측 변론이 끝나고 두 재판부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지에 집중하는 것이 사뭇 비슷했습니다.

2022. 11. 1 서울고법 제14·18민사부 공동심리 中
제14부 재판부: 변론 잘 들었습니다. 각 재판부에서 필요한 석명을 할게요.

제18부 재판부: 사채권자 보유 사채권면 50%라고 돼있고 사채권 50%는 출자전환, 50%는 변경한다고 돼 있습니다. (중략) 이 사건에선 사채, 회사채 취득가액이 있고 감정에 의해 나온 정상액이 있습니다. 그래서 취득가액에서 정상취득 가액을 뺀 금액이 손해액이라고 주장하고 있잖아요. (중략) 취득가액 100억원을 주고 산건데 실제 정상가액이 70억이면 30억이 손해액이죠. 권면액에 손해배상 액수가 포함된 상태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인가요?

원고 측 대리인: 저희가 만원에 사서 만원을 변제받으면 (손해액은) 0이 됩니다. 그런데 저희가 3000원에 살 수 있었는데 상대가 만원을 받으면 7000원 이득이죠. 들어온 돈이 플러스인지 아닌지를 보시면 안되고, 처음에 7000원 싸게 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으니까 손해를 입었고… (중략) 변제된 금액과 취득 금액의 차이는 존속합니다.

제14부 재판부: 일단 원고 측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산 이상 거래관계는 인정됩니다. 그 다음 손해액을 따져야 하는데, 국민연금 측에서는 사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교보증권이나 유안타증권은 살 수도 있죠. 피고 입장은 원고들의 내부규정에 따라 손해배상액수가 달라져야 된다는 결론인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 피고 측에서 답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 이사건의 경우, 국민연금뿐 아니라 교보증권 등 다른 원고들도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더라면 취득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인했습니다.

원고 측은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로 실적을 부풀린 만큼 회사 가치도 커졌으니까, 원고들이 당시 회사채를 샀다고 항변한 겁니다. 쉽게 말해 300만원짜리 가짜 명품을 원고 측에서 천만원짜리 명품인줄 알고 산 건데, 왜 그 차액을 배상해줘야 하느냐는 거죠. 이자까지 다 쳐서 갚았으니 됐다는 피고 측과 애초에 비싸게 사면서 본 손해는 여전하다는 원고 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은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서울고법 제14민사부와 제18민사부는 다음달에 각각 속행기일을 잡고 추가 변론을 듣기로 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와 안진회계법인의 부실감사에서 촉발된 손해배상소송이라는 점에서 두 재판부는 대단히 유사한 사건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원고가 기관이냐, 증권사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회사채 가격을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를 놓고 손해액을 따진다는 점에서 특히 유사합니다. 두 재판부가 머리를 맞대면서 각각 진행됐더라면 놓쳤을지도 모를 증거나 양측의 논리적 허점을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사안에 엇비슷한 답변을 하는 번거로움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다만 향후 각 재판부에서 다른 결론을 내놓는다면 오히려 사법 신뢰는 훼손될 수도 있겠죠.

O.J. 심슨의 변호를 맡으면서 유명해진 미국의 법학자 앨런 더쇼비츠는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으면 가산점을 받긴커녕 오히려 감점을 받는 것이 법조계"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요. 판례와 관례를 중시하는 것이 사법 시스템인 만큼 새로운 시도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입니다. 두 재판부가 각각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우리 사법 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공동심리'는 가산점을 받을 수도 감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법조계 반응은 일단 '가산점을 주고 싶다'에 쏠려 있는듯 합니다. 다만 여섯명의 고등법원 판사들이 머리를 맞댔는데, 원고와 피고 양측 중 일방이라도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가고 혹시라도 다른 결론이 나온다면 그것만큼 머쓱한 일도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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