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와 지자체가 주최가 없는 행사나 현상이어서 관리 소관이 아니라는 해명을 했다가 국민의 생명을 두고 책임회피성 해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각종 법안과 조례 매뉴얼을 정비하기로 해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일 서울시의회 정례회 본회의 개회식에서 김현기 의장은 이태원 참사 발생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태원 핼러윈 축제처럼 주최 없는 행사도 지방자치단체가 안전관리를 하도록 하는 내용의 '다중 운집행사 경비 및 안전 확보에 관한 조례' 제정을 즉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핼러윈 행사가 주최자 없이 자율적으로 진행돼 용산구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안전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데 따른 것이다.
시의회는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효고현의 '혼잡경비업무규칙'을 참고해 조례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 7월 일본 서부 효고현 해변도시 아카시 불꽃놀이 행사에서 인파 수천명이 마주치면서 인파에 휩쓸려 어린이 등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 경찰은 이에 '혼잡 경비' 업무를 신설해 다중 인파가 모이는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이튿날인 2일 김춘곤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서울시 옥외행사의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내용에는 옥외행사의 범위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군중 행사'를 추가하고 '옥외행사 장소 및 접근 경로 등 주요 통행로 등에서의 군중 밀집에 대한 예측과 감지'를 안전관리계획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김 의원은 "주최·주관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대책과 군중 밀집에 대한 예측과 감지를 통해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하도록 조례로 규정하는 것은 전국 최초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회의원도 2일 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안전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재난과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재난안전법)'을 대표 발의했다.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경찰.현행법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 등이 대규모 지역 축제를 개최하는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는 등 안전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주최자가 없는 축제의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인원 참여가 예상되는 축제에 주최·주관 기관이 없거나 불확실한 경우에도 개최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안전관리 전문 인력을 확보하도록 규정했다.
또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안전 계획의 이행 실태를 지도 점검할 수 있으며, 점검 결과 보완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의 장에게 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정 의원은 "주최 측이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시민 안전 관리의 미비점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국회 차원의 조속한 논의로 사회 안전망이 촘촘히 수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을 열고 전날 열린 범정부 다중밀집 인파사고 예방 태스크포스(TF) 첫 회의 결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핼러윈 축제와 같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주최자가 없는 축제라도 지자체가 안전관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의원 발의안과 연계해, 세부 규정으로 '다중밀집 인파사고 안전관리 지침'을 제정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장 등 내부에서의 유사 다중밀집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연장 재난대응 매뉴얼 등을 보완할 방침이다.
또 핸드폰 위치정보, 지능형 폐쇄회로(CC)TV, 드론 등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해 실시간 다중 밀집도를 분석, 위험예측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는 현장에서 질서유지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관 기동대를 대상으로 인파관리 집중교육을 실시하고, 경찰서장 등을 대상으로 인파관리 지휘 특별교육도 적극적으로 실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울시 '디지털 시장실' 캡처그러나 경찰은 이미 2015년 발주한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용역'에서 지역축제나 공연 외 다중 행사는 안전관리계획 등을 수립할 법적 근거가 없어 이런 행사 유형을 정리하고 관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후속 대책이나 입법조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관리 책임이 불분명한 다중 행사에 행정력이나 공권력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무엇보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것만으로 경찰 등 공권력이나 정부·지자체가 임의로 시민을 모니터링하고 다중을 통제하는 경우 전체주의적 체제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공공안전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가 마련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데이터 전문가의 목소리도 여유있게 충분히 귀담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 전문가들은 경찰이든 정부·지자체든 다중 행사의 위험도를 감지·계측하고 감지, 인파를 관리하는 정보를 수집할 때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인만큼 국민들에게 실시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실시간으로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와 유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융합한 '디지털 시민시장실', '실시간 도시데이터', '열린데이터광장' 등을 이미 개발해 시민들에게 대부분 공개하고 있다. '시민이 데이터의 주체'라는 철학이 반영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