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 감염병진단분석국의 김은진 신종병원체분석과장이 18일 충북 오송 질병청 브리핑실에서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 감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2019년 12월 '신종 원인불명 감염병'이라고 중국 우한에서 폐렴이 발생했을 때는 세계가 다 패닉이었죠. 처음엔 (설마) 그렇게 많이 퍼질까, 라고 모든 전문가들이 의심했는데 퍼져나갔고…. 이 당시엔 원인불명 폐렴이라 한 만큼 상당히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질병관리청 감염병진단분석국의 김은진 신종병원체분석과장은 지난 18일 충북 오송 소재 질병청 브리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존재를 처음 접했던 2년 10개월 전을 이렇게 회고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검사분석팀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확인된 코로나 유행 초창기부터 이 신종 호흡기바이러스의 세부적인 특성을 연구해왔다. 코로나 대응의 컨트롤타워로 흔히 '방역당국'이라 지칭되는 질병청 안에서도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이 대면하는 최전방이라 할 수 있다.
감염병진단분석국은 지난 2015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은 반성의 산물이다. 당시 국내 누적 확진자는 20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186명)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최다환자가 발생한 국가란 오명을 남겼다. 가장 철저한 방역이 적용돼야 할 원내 응급실에서 연쇄 감염이 일어나고 확진자 주요 동선이 비공개되는 등 미진한 대처로 확산을 키웠다는 비판이 많았다.
유천권 감염병진단분석국장은 "메르스가 터졌을 때 국민들이 (당국에 대해) 왜 그렇게 진단을 못했냐는 질타를 많이 하셨다. 정부에서 (감염병) 진단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을 토대로) 2016년 질병관리본부 시절에 진단관리과란 정책부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예방관리에 좀 더 특화된 실험부서를 재조직(reorganize)하게 됐다"며 "정책행정부서와, 관련된 실험·분석 부서가 함께 있는 것이 저희 국의 특징이다.
정책에 필요한 근거를 바로바로 분석해내고 그걸 정책에 반영하는 일을 진단분석국에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변이 분석(유전체 감시) 방법 별 특성. 질병관리청 제공 구체적으로 실험·분석은 △세균분석과 △바이러스분석과 △매개체분석과 △고위험병원체분석과 △신종병원체분석과에서 맡고, 감염병 진단업무의 표준지침 및 정책 수립은 감염병진단관리총괄과에서 수행하는 이원화 방식이다. 실험실적 대응이 실무적 방역정책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과학 방역'에 가장 근접한 체계라고 할 수도 있다.
앞서 2018년 구축한 '원인불명 감염병 검사분석 TF(태스크포스)'도 진단이 곧 방역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같은 조치가 실제 코로나 사태 이후 초동 대처에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김은진 과장은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9년 12월 17일 이뤄진 검사분석 TF의 모의훈련(도상훈련)을 절묘한 한수로 꼽았다. 중국 운남성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병에 걸려 귀국한 내국인이 사망한다는 가정 아래 실시한 훈련이었다. 미지의 감염병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로 설정했다. 공교롭게도 결과적으로 임박한 상황을 거의 비슷하게 예측한 셈이다.
감염병진단분석국 신종병원체분석과의 김일환 연구관이 18일 질병청 염기서열 분석실(NGS Lab) 내부에 있는 장비(iSeq10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이 분석은 방법과 설비에 따라 소요기간과 검체처리량에 차이가 있다. 이은지 기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 등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경험해온 터라 이런 바이러스가 신종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생각으로 타깃화한 거죠. 이 과정에서 (전체 코로나바이러스 대상의) '판코로나(pan-coronavirus)' 검사 필요를 도출하게 된 거예요. 핵심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어요."
이날 출입기자단이 찾은 4층 진단분석국 유전자 검사실에서는 흰색 가운을 입고 마스크, 장갑을 착용한 직원들이 검체 처리에 여념이 없었다. 유리문으로 연결된 핵산 추출실에선 검체로부터 RNA(리보핵산)를 뽑아낸 후 유전물질과 시약을 디스펜서로 섞는 진단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최대한 사람 손을 덜 타고 검체 오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원웨이(One-way) 시스템'으로 진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질병청의 설명이다. 확진 여부를 판단하는 장비가 구동되는 시간만 보통 2시간 정도라고 했다.
코로나19도, 원숭이두창도 모두 여기서 최초 확진 판정을 했다.
질병관리청 신종병원체분석과의 이남주 보건연구사가 18일 유전자 검사실을 방문한 기자단을 상대로 코로나19 진단·분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질병청 제공 '양성'이 나온 환자 검체를 대상으로 한 추가 변이분석은 한층 위에 있는 염기서열 분석실(NGS Lab)의 소관이다.
병원체의 성격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는 변이분석은 크게
△전장 유전체 분석(whole genome sequencing) △타겟 유전체 분석(Target Sequencing) △변이 PCR 분석(Genotyping)으로 나뉜다. 유전자 감시는 새로운 변이 인지뿐 아니라 '단백질 스파이크' 등 진단부위의 염기서열 변화가 진단에 주는 영향 모니터링, 집단감염의 감염원 추적분석 등에 쓰이고 있다.
코로나19 전장 유전체 분석의 개요. 질병관리청 제공가장 오랜 시간(5~7일)이 소요되는 전장 유전체 분석이 약 3만 개 가량의 염기서열을 다 판독하는 작업이라면, 타겟 유전체 분석은 4천~5천 개 정도의 핵심 부위만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3~4일이면 결과가 나온다. 변이 PCR은 바이러스의 단일 염기서열을 증폭시켜 탐지하는 분석법으로 하루이틀 내로 주요 변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장 유전체의 경우, 3만 개의 염기서열을 300개 정도로 균일하게 잘라 책갈피 같은 '마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데, 이를 '라이브러리 제작'이라 한다. 염기서열 분석실에는 3가지 유전자 분석을 각각 수행하는 고가의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수억대를 호가하는 설비들이다. 최대 150만 개의 전장 유전체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저장 서버(총 저장용량 1200TB)에는 약 10만 개의 정보가 쌓여있다.
당국이 지금과 같은 체계적 감시체제를 확립하기까지는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코로나 발생 직후인 재작년 1월 말 전국적으로 검사방법을 전파했지만, '시퀀싱(Sequencing)'이라 부르는 염기서열 분석은 여전히 질병청만이 할 수 있었다. 진단-분석이 한 데 몰리다 보니 그해 상반기엔 하루 '18시간' 근무도 예사였다. 대구 신천지를 주축으로 한 1차 대유행까지 모든 직원이 '초죽음' 상태였다는 게 김 과장의 표현이다.
질병청 내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시설인 BL3(Bio Safety Level3)에서 살아있는 코로나19 병원체 등을 다루는 연구자들은 혹시 모를 병원체 노출 등에 대비해 전신복과 송풍형 호흡보호구 등을 착용하고 실험실을 출입한다. 이은지 기자다만, 민간에서도 RT-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는 검사역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매일 수십만이 확진된 올 봄 오미크론 대유행에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밖에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시설인 'BL3'에서는 외부와 격리된 음압 시스템을 이용해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다루는 모든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연구활동 중에 생기는 에어로졸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3등급 시설은 보통 감염됐을 때 증상은 심각하나 치료가 가능한 코로나19, 사스, 메르스 등의 병원체를 취급한다.
BL3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각종 실험을 직접적으로 수행한다. 안전 상 이유로 실험시간은 3시간으로 제한돼 있지만, 실제로는 세포가 자라는 시간 등에 따라 이를 넘기는 경우도 많다. 이은지 기자연구원들은 만일의 노출을 대비해 전신복은 물론 송풍형 호흡보호구 등 중무장을 한 채 실험에 임하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가 높은 만큼 재실 시간은 최대 3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세포 배양시간 등에 따라 이를 넘기는 일도 다반사다.
유천권 국장은
감염병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가 '진단'과 '역학'이라고 강조했다. 또 향후 코로나19 변이 전망에 대해
"숙주를 죽이면 자신도 죽다 보니 바이러스가 살기 위해 증식을 많이 하는 식으로 진화되고 있다. 구조를 분석해봐도 바이러스가 처음 나왔을 때는 굉장히 불안정했는데, 요즘은 안정적인 스타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과거엔 바이러스가 (알파→베타→델타 변이 등) '빅스텝'으로 변화했다가 오미크론 내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이어지면서 아형(서브타입)으로 변이가 진화되고 있다"며 "'스몰(small)'이 모여 '빅(big)'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메이저(변이)에서 마이너가 나와 메이저를 뚫고 가기란 어렵고 당분간은 오미크론 하위변이가 계속 유행을 주도할 거라 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