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비(非)영어권 드라마 최초, 한국 드라마 최초, 아시아 배우 최초,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 한국이 제작한 한국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운 전례 없는 대기록에 외신들은 하나같이 "새 역사를 썼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과 제작진은 이러한 새 역사의 밑바탕에는 '자율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3일(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이자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받았다.
앞서 진행된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여우게스트(이유미), 싱글 에피소드 부문 특수시각효과상(정재훈 외), 스턴트 퍼포먼스상(임태훈 외), 내러티브 컨템포러리 프로그램 부문 프로덕션 디자인상(1시간 이상)(채경선 외)까지 포함하면 '오징어 게임'은 6개 트로피를 가져가며 전무후무한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1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기념 간담회에 참석한 황동혁 감독과 제작사 싸이런픽쳐스 김지연 대표를 비롯한 제작진은 '오징어 게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동력과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를 이야기했다.
1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기념 간담회에서 황동혁 감독, 배우 이유미 등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이하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비롯 13개 부문, 총 14개 후보에 올랐으며 총 6개 부문 트로피를 가져갔다. 박종민 기자 모두가 안 될 거라 했던 '오징어 게임', 글로벌 OTT 타고 세계로
황동혁 감독은 당초 '오징어 게임'을 영화로 준비했으나, 정서나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를 거절당했다. 그러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며 전환점을 맞게 됐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영화용 시나리오는 9부작 시리즈가 됐고, 지난해 9월 17일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모두가 마다했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오징어 게임'은 공개 후 28일 동안 누적 시청량 기준 16억 5045만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가 됐다. 또한 비영어 드라마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콧대 높은 미국에서는 비영어권 시리즈 중 '최초'로 21일 연속 '오늘의 톱 10' 1위에 오르며 매 순간 새로운 기록을 썼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탄생하고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디어 환경 변화와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의 탄생이 '오징어 게임' 탄생과 큰 인기를 가져다준 확실한 요인"이라고 단언했다.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가 공개한 비(非)영어권 시리즈 중 최초로 미국에서 21일 연속 '오늘의 톱 10' 1위 기록했다. 또한 공개 1년이 넘은 현재도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TV(비영어)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김지연 대표는 '오징어 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도 분명히 작용했지만 그 이면에는 창작자의 자율성에 투자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K-무언가'를 만들자고 하거나 그걸 향해서 의도를 갖고 달려가는 순간 오히려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히려 작가들이나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인내하는 시간, 그리고 유·무형의 자본을 많이 투자해 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채경선 미술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이 '새로움'이라고 말했다. 기존 미술에서 표현하는 방식과는 다른 시선으로 색상이나 공간을 표현하되 흔히 K-콘텐츠의 세계화 과정에서 이야기되는 '한국적인 것'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채 미술감독은 "우리나라 창작자들에게 '자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운 좋게 넷플릭스에서 많은 지원을 받고, 감독님을 비롯해 피디님과 대표님이 믿고 자율성을 준 덕분에 내가 창작할 기회가 있었고, 이런 결과물(에미상 수상)이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韓 창작자, 이미 높은 수준…정부 지원 더해진다면 '제2의 오겜' 나온다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방송계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의 상징적인 시상식이자 보수성으로도 이름난 에미상의 벽을 넘은 건 결국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역량을 펼친 결과물이다.
황동혁 감독은 "우린 항상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항상 세상에 알리려 노력해 왔다. 그것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꽃이 필 때가 온 것"이라며 "한국 작품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굉장히 치열하고 다이내믹한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고, 그 안에서 생산되는 작품에는 빠르게 변화하고 치열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 반영돼 있다"며 "그런 것들이 높은 퀄리티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가 사랑받고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지연 대표는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의 창의성이 단연코 높은 수준"이라며 "이제 한국어로 만든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선보일 수 있는 통로가 생겼고, 여러 통로를 통해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면서 다른 나라 관객과 시청자도 이걸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김 대표는 중요한 건 국내 제작사가 창작자들의 IP(지식재산권)을 자체적으로 영상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나 민간 투자자 차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제작사가 자기 자본을 갖고 들어올 수 있을 때 훨씬 더 (IP 소유와 기획 개발 등에 관한) 힘이 생긴다. 나 역시 그런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VFX(시각특수효과)는 컴퓨터가 그리는 거라고 흔히 생각하겠지만, 컴퓨터는 도구일 뿐 아티스트의 역량이 훨씬 더 중요한 기술집약적이자 노동집약적인 예술"이라며 "그러나 현재 고급 인력은 거의 돈이 되는 게임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VFX 관련 개발이 더디게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오징어 게임'의 게임 체인저(어떤 일에서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만한 중대한 사건이나, 중요한 제품 혹은 인물을 일컫는 말)가 됐다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다"며 "(이번 에미상 수상이) 고급 인력이 (VFX로) 많이 들어와서 우리가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