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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신화 이면에 잊혀지는 우리말과 문화…정체성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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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길을 묻다

1992년 8월 한중수교는 한민족이지만 수십년을 떨어져 살아오던 조선족과의 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선족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국 땅을 밟아 주로 저임금 기피 업종에서 일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했지만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전통적 집거지였던 동북지역을 벗어나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맞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언론재단 지원으로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조선족 길을 묻다'를 준비했다.

한국말·중국어 가능…한국 기업 中 진출에 기여
한국인 中 정착에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시간 지나면서 조선족 경제적 지위도 향상
中 증시에 상장한 기업인도 생겨나
한 군에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문제 발생
전통 집거지 밖에선 조선족학교 불가능
가정 교육만으로 우리말 전승 어려워
한반도부터 이어져 온 정체성, 전통문화도 위기

▶ 글 싣는 순서
한 핏줄부터 우리말 하는 중국인이라는 생각까지
"이거 먹어 봤어?"부터 "한국 좋은 사람 많아"까지
[르포]옌지는 지금 공사중…조선족의 서울 옌지를 가다
만주로 건너간 선조들은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중국 동북지역 개척자…황무지를 옥토로
문화혁명 암흑기 건너 개혁개방의 주체로
조선족의 자랑 연변대학과 주덕해
동북은 비좁아…中 각지로 세계로 진출한 조선족
조선족 세계화·전국화 좋은데…없어지는 그들의 고향
中 최대 조선족 마을 만융촌을 가다
⑪성공의 이면에 잊혀지는 우리말과 문화…정체성 위기
(계속)

조선족들은 개혁개방과 한중수교를 계기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기 위해 자신들의 선조들이 한반도에서 동북3성으로 이주를 단행했던 것에 견줄만한 대이동에 나섰다.
 
중국 내 각 지역으로 흩어진 조선족들은 한국어와 중국어가 모두 가능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도왔고 한국 주재원들과 가족들이 중국에서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도움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이 있는 곳에 조선족이 모여들었고 한인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베이징의 왕징, 칭다오의 청양구 한인 밀집지역, 웨이하이의 한러팡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랴오닝성 선양시 허핑구에 위치한 시타(西塔). 일제때부터 있던 조선인 거리로 조선족의 집거지에서 한국 교민들의 상업  활동 및 거주 공간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안성용 기자랴오닝성 선양시 허핑구에 위치한 시타(西塔). 일제때부터 있던 조선인 거리로 조선족의 집거지에서 한국 교민들의 상업 활동 및 거주 공간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안성용 기자 
조선족들은 한국 기업과 한국인들의 조력자로 출발했지만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할 줄 알고 중국 제도와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IMF와 세계금융 위기 당시 어려움에 빠지거나 철수를 결정한 한국 기업을 인수하고, 한국이 경영하던 음식점 등을 사서 운영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상품을 수입해 중국에 팔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진출 한인들과 조선족 간에 적지 않은 갈등도 있었다.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고 급속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면서 조선족들의 성장도 괄목상대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제외하고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따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중 관계 발전에 가교 역할을 한 조선족 기업인들의 역경과 성공을 그려낸 <무지개를 수놓는 사람들> 출판 기념회 및 좌담회가 8일 베이징 한 호텔에서 열렸다. 안성용 기자한중 관계 발전에 가교 역할을 한 조선족 기업인들의 역경과 성공을 그려낸 <무지개를 수놓는 사람들> 출판 기념회 및 좌담회가 8일 베이징 한 호텔에서 열렸다. 안성용 기자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를 이끌고 있는 강성민 회장의 사례는 조선족들의 중국 내지 진출과 한국(인)과의 관계, 성공케이스를 잘 보여준다.
 
1973년생인 강 회장은 고향 헤이룽장성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허베이성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한중합작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한국 측 본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한국타이어, 삼성전자 등 한국계 회사에서 영업팀 매니저, 마케팅 팀장 등을 맡았다.
 
이후 직장인들이 점심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2010년 미스터 핫(열선생)이라는 브랜드로 푸드코트 사업을 시작해 10년 만에 회사 단체 급식, 미식광장, 레저공간, 종합비즈니스, 특생음식체인, 문화사업이 일체화된 그룹으로 거듭났다.
 
강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인 신동일 랑시그룹 회장의 성공스토리도 더 극적이다. 2000년 4월 중국 최고급 백화점인 베이징옌사백화점에 랑시브랜드 1호점을 오픈하고 한국으로부터 여성복을 수입해 팔다가 3년 만에 중국내 패션업계 유명브랜드를 자리매김했다.
 
2011년 선전증시 상장, 2014년 아가방 인수 등을 통해 사업 규모를 키웠고 2019년 말 현재 신 회장이 이끄는 랑시그룹은 전국 30개성, 100여개 도시의 고급백화점, 쇼핑몰 공항 등에 590여 매장을 운영 중이며 오프라인 VIP 고객수가 30만 명, 온라인 VIP 고객수가 25만 명에 달하고 있다.
 
2016년에는 하나은행, 하나금융투자주식회사 등과 공동으로 베이징랑시하나자산관리유한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의 등록자금은 18억 위안, 자산관리 규모는 200억 위안(약 4조원)에 이르고 있다.
 
물론 성공한 사업가 몇 명을 동북지역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생활하는 조선족의 표준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 기업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거나 한국인들의 중국 정착을 돕는 역할을 하는 조선족들도 많고 실패의 쓴 잔을 맛본 이들도 많다.
 
우리의 전통시장을 쏙 빼닮은 연길(옌지) 수상시장. 안성용 기자우리의 전통시장을 쏙 빼닮은 연길(옌지) 수상시장. 안성용 기자
성공했건 아닌 건 간에 동북 3성에서 이주한 대부분의 조선족들에겐 커다란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자녀들 문제다.
 
동북 3성에서처럼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조선족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접하는 게 불가능하다보니 우리말 전승이 단절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동북 3성에서도 앞으로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어를 잘해야 한다면서 자녀를 일부러 한족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국 각지로 이동하면서 조선족들이 부딪히게 된 자녀 문제는 동북3성에서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위협 받는 상황이다.
 
부모가 모두 조선족인 경우 가정에서 우리말을 쓰기 때문에 조금은 낫지만 자녀들이 한족학교에 다니고 한족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우리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의 위기 상황에서 한반도에 뿌리를 둔 전통문화 계승은 더 풀기 어려운 난제다.
 
A씨는 대학 졸업 후 베이징에서 한국계 대기업에 취직해 고위직까지 올랐지만 정리하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 온·오프 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A씨에게는 두 자녀가 있는 데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말은 거의 못한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B씨도 딸과 아들 두 자녀가 있는데 중학생인 아들은 우리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한족 유치원, 한족 초등학교에 다녔을 뿐만 아니라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가정에서 우리말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지 진출이 빨랐던 조선족들의 경우 자녀들이 이미 자녀들이 결혼한 경우도 많은데 이 중에는 한족 또는 다른 민족 출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룬 경우도 많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손자 손녀의 경우 민족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소수민족 우대가 없어지는 중국에서 굳이 조선족으로 살아갈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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