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준비 돌입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장관 직무대행)을 복지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조 후보자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정호영 경북대 의대 교수, 약사 출신 김승희 전 의원이 '아빠 찬스' 및 '정치자금 유용' 의혹으로 연달아 낙마함에 따라, 보건복지 컨트롤타워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석 달 넘게 공석을 유지해 왔다.
조 후보자가 낙점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복지장관이었던 권덕철 전 장관이 이임한 지난 5월 25일 이후 105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된 김 전 후보자가 사퇴한 지 65일 만이다. 대통령실 검증에만 꼬박 두어 달이 걸린 셈인데 더 이상의 '인사 논란'으로 정국의 혼란을 자초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대통령이 실책을 만회할 뜻밖의 카드를 꺼내리란 전망도 나왔지만, 야권의 반대를 확실히 잠재울 수 있는 인물이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감동적 인선'이 인사기조로 거론되며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도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경원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도 하마평에 올랐기에 조 후보자가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돌고 돌아 결국 또 기재부(기획재정부)냐'라는 반문도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필두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나주범 교육부 차관보 등 기재부 출신이 정부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가장 큰 제약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조직이 좀 굴러가야 하니까 (조 후보자가) 잘하리라 저희는 믿는다"고 밝혔다.
질문에 답하는 조규홍 복지장관 후보자. 연합뉴스조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32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후 1995년부터 재정경제원 예산실, 기획예산처 정책홍보관리실, 기재부 예산실 등에서 근무했다.
2018년 10월~지난해 10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를 지낸 조 후보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 몸담기도 했다.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은
이른바 '늘공'(직업 공무원)인 점을 감안하면 외부 영입인사에 비해 인사청문회 쟁점은 적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이다. 1차관으로 복지부에서 4개월 간 일해온 것도 '업무 연속성' 측면에선 장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잡음 없이 장관으로 임명되더라도 산적한 현안은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숙제는 국정과제이기도 한 '연금 개혁'이다. 국민연금의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지난달 19일 대통령실 업무보고에서 "상생의 국민연금 개혁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착수한 복지부는 기초연금 인상(30만원→40만원)과 연계한 연금 개편안을 마련해 내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제4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57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는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등 '모수(母數) 개혁'에 우선 초점을 맞추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직역 연금을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류영주 기자재정 전문가인
조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건강보험 지출 개혁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건보 재정개혁 추진단'을 발족해 첫 회의를 열었다. 복지부를 비롯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참여한 추진단은 건보 보장성 강화를 내세운 '문재인 케어'를 본격적으로 손볼 계획이다. 뇌·뇌혈관 MRI(자기공명영상) 등 건보 적용을 받게 된 비급여 항목들이 연간 지출 목표치를 한참 웃도는 등 '재정 누수'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연 500일 이상 외래이용자가 증가하는 과다 의료이용 실태를 살피는 한편 백내장 수술 등 비급여·급여 이용량 증가와 민영 실손의료보험 간 관계도 따져보겠다고 했다. 건보 자격도용, 외국인 피부양자의 부적정 이용도 점검 대상이다.
복지부는 "국민이 현재 받는 건보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정지출이 급증하는 항목이나 과다의료 이용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 후보자가 장관에 오르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더 방점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실 역시 조 후보자의 전공을 염두에 두고 '연금개혁 추진, 사회복지 및 보건의료 재정지출 효율화, 건보제도 개편' 등에 기대를 걸었다.
복지 담론이 '경제논리 일변도'로 흐를까 염려하는 시민사회계에서는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강한 목소리도 나왔다. 조 후보자의 역량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보건·복지 정책을 총괄할 적임자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조 후보자를 '모피아'(마피아+재정·금융 관료)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재정건정성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윤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살펴볼 때 기재부 출신의 경제관료가 우리 사회에 산적한 복지과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미 기재부는 복지부의 복지 강화를 위한 재정 확대요구에 반대해 여러 차례 예산을 삭감하며 긴축재정을 표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라는 시대적 위기를 마주하며 복지국가적 대응이 무엇보다 필요한 지금,
복지부 장관이 될 사람은 그 누구보다 복지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개혁 등에 있어서도 "복지부는 경제논리에만 휘둘릴 것이 자명하다"며 "조 후보자는 지난 3개월간 윤석열 정부의 의료보장성 축소, 의료민영화, 친기업 규제완화, 공기업 재정긴축 등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며 혹평하기도 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조 후보자는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지난 8일 첫 출근길에서 "제 경력을 보시면 복지전략을 수립한 경력도 있고 예산총괄 파트에서 복지예산을 편성한 적도 있다. 청와대에 근무하며 복지이슈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며
"복지 분야는 친숙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또한 "두텁고 촘촘한 취약계층 보호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빈틈없는 방역을 주축으로 해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체계를 구축하고, 복지의 지속가능성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복지부 예산은 108조 9918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억을 넘겼다. 정부 전체 예산(639조원)의 17%에 달한다. 필요한 곳에 적절한 예산을 배분·운용하는 게 핵심인데, 연금개혁 외 상대적으로 조 후보자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분야도 많다.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전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한 표어였던 '과학 방역'은 국민들로부터 낙제점을 받고 있다. 일단 재유행이 감소세에 접어들긴 했지만, 동절기 인플루엔자(계절 독감)와 코로나19의 '트윈데믹(twindemic)'이 유력하게 전망되는 만큼 복지부의 향후 대응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항체양성률 조사, 고위험시설 환기설비 기준 마련 등
지난 4월 말 인수위가 발표했던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도 태반이 미완인 상태다.
이밖에 '수원 세 모녀 사건'으로 주목받은 복지 사각지대의 발굴 및 지원, 저출생·고령화 심화도 차기 복지부 수장이 당면한 과제들로 꼽힌다.
한편, 조 후보자는
최근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은 세종시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2년 분양받은 세종시 도담동 소재 '특공' 아파트를 보증금 2억 3100만원에 전세로 준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살지는 않으면서 재산상 이득만을 취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인사청문준비단은
"실거주 목적으로 특별 분양받아 현재는 임대 중으로 후보자는 1가구 1주택 보유 상태"라며 "가족 근무여건에 따라 서울, 오송 등 다른 곳에 주거공간을 전세로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조 후보자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인 배우자와 충북 오송의 오피스텔을 임차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관보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본인 명의 주택으로 세종시 아파트 1채(84.82㎡·가액 5억원)를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