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블랙폰'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마블 히어로 무비 '닥터 스트레인지'의 감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콧 데릭슨 감독이 블룸하우스와 손잡고 자신이 사랑하는 호러 무비로 돌아왔다. 납치 스릴러에 오컬트가 섞인 '블랙폰'은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어른에 대항해 살아남은 아이들의 성장기를 그려낸, 일종의 블룸하우스식 하이틴 성장 영화다.
호러 소설 대가 스티븐 킹의 아들로도 유명한 조 힐의 베스트셀러 '20세기 고스트' 속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 '블랙폰'(감독 스콧 데릭슨)은 기괴한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된 소년이 죽은 친구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호러 영화다.
폭력과 왕따 등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부터 짝사랑까지 10대들의 정서와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주인공인 피니(메이슨 테임즈)와 그웬(매들린 맥그로) 역시 여느 10대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 두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정한 규칙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폭력으로 다스린다.
동네 불량배나 친구들에게도 곧잘 괴롭힘을 당하는 피니는 그들의 폭력에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친구나 동생 그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니는 정체불명의 사이코패스 그래버(에단 호크)에게 납치당하고 죽음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
외화 '블랙폰'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영화의 주요한 지점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는 것이다. 꿈을 통해 현실을 목격하는 그웬과 더불어 피니는 납치된 이후 연결선이 끊긴 검은색 전화기의 벨 소리는 물론 수화기 너머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 즉 그래버에게 납치당해 죽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들리지 않아야 할 벨 소리를 듣는 피니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그웬, 그리고 이를 믿지 않는 어른 그래버와 피니의 아버지를 통해 '블랙폰'은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는 나뉜다. 그래버는 벨 소리가 들린 적이 있지만 그건 정전기 내지 자신의 착각으로 치부하며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피니는 믿음이 있기에 벨 소리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건 같은 피해자이자 같은 아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믿음이다.
피니의 아버지 역시 꿈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그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폭력을 가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강제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보이는 것만을 믿고 중시하는 것은 어른의 시각이기도 하다.
믿음과 믿음을 제거하려는 사이에서 납치당한 피니를 구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와 들리지 않는 세계로부터의 목소리다. 이는 피니를 그래버의 폭력에서 살아남게 만드는 요소인 동시에 '블랙폰'에서 긴장과 공포를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웬이 꿈에서 본 상황과 피니가 처한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본 것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긴장하게 된다.
외화 '블랙폰'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피니와 그웬 남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고 서로를 구원하려는 가운데 희생된 아이들은 그래버에 대한 복수이자 또래 피해자인 피니를 살리기 위해 일종의 '연대'를 보인다. 아이들 스스로 아이를 구원하려는 이야기 속에서 영화 내내 피니에게 주어진 과제인 '혼자서 스스로 살아남기'가 진행된다.
그래버는 죽인 아이들을 두고 '나쁜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그래버는 일부러 문을 열어둔 뒤 이를 열고 나온 아이들에게 때리고 결국 죽이는 등 자신만의 규칙을 벗어난 아이들을 폭력으로 대한다. 사이코패스 그래버처럼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사실 피니의 아버지 역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벗어난 자식들을 폭력으로 다스린다. 다만 죽이지 않을 뿐이다.
결국 아이를 자신의 세상 안에 가두고 벨트로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이 정한 규칙을 넘어서도 강압적인 말투와 폭력으로 대응하는 아버지와 그래버는 닮은 꼴 존재다. 피니의 아버지나 그래버라는 어른들이 말하는 '나쁜 아이'란 어른이 정한 규칙을 벗어난 아이, 어른의 강압과 억압에서 벗어난 아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래버는 피니와 그웬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폭력을 통해 아버지가 남긴 트라우마가 실체화된 존재와도 같다.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그의 지배적인 공간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의 명령에 따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
외화 '블랙폰'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그렇기에 피니와 그웬이 그래버를 넘어서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는 것은 아버지의 폭력에서 살아남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아이'라는 지점에서 아이와 어른 사이 경계로 넘어가게 되고, '블랙폰'은 나쁜 어른들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아이들의 생존기가 됐다.
영화의 마지막, 생존한 피니와 그웬에게 그들의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피니와 그웬은 딱히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하거나 사과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릎 꿇거나 침묵해야 했던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았고, 두 아이는 그렇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한 단계 성장했다.
불길한 기운이 흐르는 가면 뒤에 얼굴을 숨긴 에단 호크는 목소리와 눈빛, 행동만으로 소름끼치는 그래버를 완성해내며 긴장과 공포를 자아낸다. 피니와 그웬을 연기한 메이슨 테임즈, 매들린 맥그로는 베테랑 배우 못지않은 명연기를 통해 영화의 몰입과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1978년을 배경으로 하는 '블랙폰'에는 스윗의 '폭스 온 더 런'이나 에드가 윈터 그룹의 '프리 라이드', 핑크 플로이드의 '온 더 런' 등 197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음악이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103분 상영, 9월 7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블랙폰' 메인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