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카우', 인간이 제한한 삶에 갇힌 소의 시선이 향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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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카우'(감독 안드레아 아놀드)

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스포일러 주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농장에 사는 소의 일상을 인간의 관점이나 시각을 배제한 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소의 시선으로 그 발걸음을 뒤쫓게 된다. 소의 시선은 그를 둘러싼 세상을 관통하며 스크린 밖으로 뻗어 나와 우리들에게 와 닿는다. 그렇게 소의 시선과 삶을 담은 '카우'는 인간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데뷔작 '말벌'로 아카데미시상식 단편영화상을 받고, '붉은 거리' '피쉬 탱크'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로 칸영화제에서 세 번의 심사위원상을 받은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이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로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제74회 칸영화제 프리미어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 '카우'는 영국 켄트주 농장에서 살아가는 젖소 루마의 여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기록한 동물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4년에 걸쳐 루마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깊이 탐구했고, 이를 시네마 베리테(프랑스어로 '진실 영화'라는 뜻으로, 예상된 서사 라인이나 소재 개념을 거부하는 일련의 기록 영화를 의미) 형식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소 루마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낭만'은 걷어내고 '현실'만 건져내 관객들의 눈앞에 들이민다. 카메라는 루마의 출산 장면을 포착하며 시작한다. 갓 태어난 새끼를 정성스레 핥아주는 루마는 곧바로 착유(搾乳, 젖소나 염소 등의 젖을 짬)를 위해 이동한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는 귀표(가축의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해 그 가축의 귀에 달아 놓은 부착물)를 달고 대용유(代用乳, 송아지를 키울 때 우유 대신 먹이는 액체 사료)를 먹으며 세상에 적응해 나간다.
 
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카메라는 시야를 넓게 확장하기보다 루마의 눈, 얼굴 등을 클로즈업하거나 한정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루마의 시선에서 루마의 삶을 시종일관 따라다닌다. 특별한 기승전결이나 뚜렷하게 그려가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카메라는 루마의 반복되는 일상과 생애를 차곡차곡 담아나간다.
 
그렇기에 '카우'는 친절하지도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루마의 시선을 따라가는 관객들은 장면과 장면 사이 행간을 읽고, 암시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며 생각해야 한다. 루마의 시선을 뒤쫓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루마가 되어 스크린 속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소인 루마와 인간인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에 자꾸 보려고 애쓰고, 따라가려 애쓰는 과정에서 루마와 그의 삶을 느끼게 된다. 결국 '카우'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다가가 루마의 시선으로 루마의 삶에 접근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게 따라간 루마의 삶은 별다를 거 없어 보이는 일상의 반복이다. 더럽고 비좁은 축사에서벌어지는 모든 일이 루마의 세상이자 루마의 일상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떤 소는 삶을 시작하고, 어떤 소는 삶을 마감한다. 유일하게 루마가 가장 많은 몸짓을 보이며 정말 온몸으로 즐거움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때가 바로 축사 밖의 세상, 즉 자연과 만나는 때다.
 
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루마와 루마가 낳은 새끼의 모습이 교차되는 가운데, 활기를 되찾은 루마의 눈과 풀을 되새김질하는 모습은 루마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온몸으로 생기를 띄는 루마와 루마의 새끼를 교차로 보여주는 영화는 한 편으로는 루마의 반복적인 삶, 즉 출산과 이별, 착유라는 루프에 갇혀 같은 삶을 살아갈 것임을 이야기한다. 비좁은 공간 안에서 반복되는 루마의 세상은 사실 '인간'이 만든 세상이다.
 
카메라는 다섯 번째 출산에서 시작해 여섯 번째 출산한 루마의 모습과 그사이 삶을 보여준다. 다섯 번째 출산과 여섯 번째 출산 사이의 모습은 별다른 차이 없이 똑같다. 그렇다면 루마는 여섯 번의 출산 과정에서 매번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일상 안에 갇혔다는 거다. 똑같은 삶을 6번이나 반복하는 루마의 생명은 인간이 만든 굴레에 갇혀 버렸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다. 6번 출산하는 과정에서 6마리의 새끼를 낳고 우유를 짜낼 수 있는 때부터 평생을 착유당하며 살아온 루마는 어느덧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런 루마를 따로 데려와 밥을 주고, 밥을 먹고 있는 루마의 머리에 대고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총을 쏜다. 루마는 저항조차 못 한 채 쓰러져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숨을 거둔다. 죽음마저 자연스러운 생의 주기에 따라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나 자유는 루마에게 없다. 죽음마저도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루마의 일생이다.
 
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카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온전히 한 생명으로서 살아가지 못한 채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살아갔던 루마의 삶과 그 마지막 순간은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고 끔찍하다. 쓸모를 다하면 버리는 물건처럼 루마도 버려진 것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이 드리운 루마의 눈을 보면, 모처럼 축사를 벗어나 초원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던 루마의 눈빛이 떠오른다. 바람을 들이마시며 내뱉던 호흡과 태양 빛을 보며 내던 루마의 울음소리가 눈앞에 드리워진다. 그때 하늘을 바라보던 루마는 무엇을 그리워했던 걸까 생각하게 된다.
 
루마의 죽음 뒤로 이어지는 루마의 새끼의 모습에 '또 다른 루마'들의 삶이 교차되는 순간, 루마의 새끼가 다시금 루마의 한정적이고 반복되는 삶을 이어갈 것임을 예고한다. 루마의 마지막과 또 다른 루마의 시작을 목격하는 그 순간,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94분 상영, 8월 11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카우' 메인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카우' 메인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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