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은과 폴 마르크 '인 더 나이트' 리허설 공연 모습. 롯데문화재단 제공 "이번 시즌을 한국에서 끝내게 되어 설렙니다. 프랑스 춤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파리오페라발레단의 별 박세은(33)이 지난해 에투알(Etoile·발레단 최고 댄서에게 주어지는 칭호) 승급 이후 처음 고국 무대에 선다. 28~29일 '파리 오페라 발레-2022 에투알 갈라'(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 관객을 만난다.
박세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에투알이 된 후 지난 1년간 많은 무대에 섰다. 이번 시즌 발레단의 공식 일정은 며칠 전 LA(미국) 갈라 공연으로 마무리됐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국 갈라 공연이 마지막이다. 시즌 막바지에는 체력적으로 지쳐 있지만 이럴 때 가장 좋은 춤이 나온다"며 "발레단 동료들과 함께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웃었다.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준단원으로 입단한 박세은은 이듬해 정단원이 됐다. 이후 코리페(2013), 쉬제(2014), 프리미에르 당쇠르(2016)로 승급했고 2021년 6월 바스티유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 직후 에투알에 임명됐다. 발레단 단원(150여 명) 중 에투알은 15명 내외로, 동양인이 에투알에 오른 건 박세은이 처음이다. 박세은은 올 시즌 '랩소디' '돈키호테' '라 비야데르' '지젤' 등을 소화했다.
박세은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을 때 '내가 뒤처졌다'는 열등감보다는 '이 곳 사람들은 이렇게 춤을 추는데 이걸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늘 배우는 자세를 가졌다"며 "꾸준히 연습해서 인정받기 시작하고 내 춤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가 이 스타일을 배워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조지 발란신, 루돌프 누레예프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 프랑스 안무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2인무),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파드되, '한 여름 밤의 꿈' 등 고전과 '달빛' '애프터 더 레인' 등 현대 발레를 골고루 준비했다.
박세은이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 리허설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박세은은 '인 더 나이트'와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를 선보인다. '인 더 나이트'는 쇼팽의 '녹턴' 피아노 연주에 맞춰 세 쌍의 파트너가 커플의 여러 단계(젊은 연인·행복한 결혼생활·이별을 앞둔 동반자)를 춤으로 표현한다. 세 커플(6명) 중 5명은 에투알이고, 1명은 프리미에르 당쇠르다.
피아노는 파리오페라발레단 소속 피아니스트 엘레나 보네이가 직접 연주한다. 박세은은 폴 마르크와 파트너를 이뤄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들이 열정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에 객석에서 이 작품을 보고 반했었죠. '프랑스 사람이 춰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프랑스 춤 스타일이 가장 잘 녹아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이다. 특히 발코니 파드되는 점프 60번, 리프트 22번, 주테 점프 8번, 아라베스크 24번, 키스 5번을 쉴 틈 없이 퍼부어야 하는 강도 높은 춤이다. 박세은은 "굉장히 힘든 작품이지만 객석에서 봤을 때는 힘들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쉽게 보이게끔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 중 프랑스 작품은 2편(잠자는 숲 속의 미녀·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모두 루돌프 누레예프가 안무했다. 박세은은 프랑스 발레에 대해 "더 우아하고 정확하고 섬세하고 세련된 춤을 추는 것 같다. 드라마적인 요소도 잘 풀어서 설명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 등 누레예프의 전막 작품이 좋은 예다"고 말했다.
이어 "누레예프의 작품은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힘들다. 처음부터 끝까지 런스루를 두 번 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한계가 지나면 어느 순간부터 힘들다는 생각은 사리지고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표현력이 커진다. '어렵지만 쉽게 풀어내는 것'. 이것이 프랑스 발레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파트너 폴 마르크(26)와는 서로 신뢰하는 동료다. 폴 마르크는 2014년 피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6년 만인 2020년 12월 '라 바야데르' 온라인 공연 후 에투알에 지명됐다. 2021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박세은의 에투알 승급 파트너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는 '라 바야데르'와 '지젤'에서 박세은과 짝을 이뤘다.
박세은은 폴 마르크에 대해 "이젠 서로 눈빛만 봐도 안다. 나보다 7살 어린데도 무대에서 나를 침착하게 이끌어준다. 자신만의 예술철학이 뚜렷해서 작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 나눌 수 있어 좋다. 실력은 무대에서 보면 알 것 같다. 발레단의 간판 스타가 될 것이다"고 치켜세웠다.
폴 마르크는 "프랑스 발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넘어 친한 친구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일하는 방식이 비슷하고 서로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둘만의 것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화답했다.
발레 마스터 리오넬 델라노에는 "박세은을 처음 봤을 때부터 '보통이 아니구나' 느꼈고, 결국 에투알까지 됐을 때 기뻤다. 폴 마르크는 24간 내내 춤만 생각한다고 할 정도로 춤을 대하는 자세가 훌륭하다. 실력 있고 성격 좋고 재능 있고 호기심 많은 두 무용수와 함께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박세은은 추후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이번 시즌에는 '지젤' 데뷔 무대를 가질 수 있어 기뻤고 '마농', '까멜리아 레이디' 등을 해보고 싶어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는 고전 발레만 했는데 마츠 에크의 '카르멘'같은 현대 발레도 해보고 싶습니다."
파리 오파레 발레 2022 에투알 갈라 리허설 후 커튼콜 모습. 롯데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