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수형인 재심 개시 여부 공판 모습. 고상현 기자'희생자 검증' 논란이 불거진 제주4·3 수형인 재심 여부를 결정할 2차 공판이 26일 열렸다. 증인으로 참석한 국무총리 산하 4·3중앙위원회 김종민 위원은 검찰이 문제 삼은 희생자 4명에 대한 근거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교차 검증되지 않은 진술 또는 자료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검찰 증거 두고…김 위원 "신뢰할 만한 자료 못돼"
이날 제주지방법원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4·3수형인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할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검찰이 이미 희생자 결정이 이뤄진 4명에 대해 "좌익 활동 전력이 있다"며 문제 삼자 증인 신문으로 진행됐다.
증인으로는 전 제민일보 4·3전담취재반 기자였던 4·3중앙위원회 김종민 위원이 참석했다. 4·3중앙위에서 희생자를 결정하는 만큼, 희생자 결정 과정에 대해서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또 김 위원이 4·3탐사보도의 전형인 '4·3은 말한다'를 집필했기 때문에 희생자 취재 내용을 묻고자 한 것이다.
검찰은 이날 정부의 희생자 결정을 문제 삼는 근거로 보수단체에서 작성한 글귀나 동네 주민의 증언 등을 들었다. 혹은 보수단체에서 작성한 '혁명투쟁위원회 간부 명단' 등을 제시했다.
4·3중앙위원회 김종민 위원이 진술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이를 두고 김 위원은 "이런 자료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소위 보수 인사들이 명단을 나열하면서 무장대 간부였다고 하면서 만든 자료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4·3 당시 통행증이 없으면 이웃마을도 못 갔는데, 어떻게 무장대 조직을 알겠나. 이런 자료들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지적했다.
한 희생자를 '북촌리 남로당 조직책'으로 든 마을주민의 증언에 대해서도, 김 위원은 "오랫동안 4·3을 공부하다 보니 무장대 조직뿐만 아니라 증언자의 이름도 기억한다. 이 분(희생자)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누가 증언했다고 해서 다 사실이 아니다. 교차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은 검찰이 문제 삼은 희생자 중 1명에 대해서는 유독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로 활동할 당시) 여러 사람을 취재했는데, 굉장히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 '4·3은 말한다' 6권에 이 분의 내용을 썼다. 기사로도 나왔지만, 지금껏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 '사상검증' 유감 표명에…재판부·변호인 발끈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4·3희생자 검증' 논란에 대해서 억울함을 표명했다. 정부의 희생자 결정을 트집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한 절차라는 것을 강조했다.
검찰은 "정부의 4·3희생자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특정 피고인의 경우 관련 자료에 4·3 당시 남로당 간부로 활동한 사실,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사실 등이 언급되고 있다. 상당수 국민은 어떻게 희생자 결정이 내려졌는지, 이번 재심 절차를 통해 되짚어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검찰은 사상검증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하는 명확한 사법적 판단을 남기자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12일 재판부가 "자칫 검찰이 사상 검증에 나섰다는 누명을 쓸 수 있다"고 한 데 따른 유감으로 읽힌다.
4·3수형인 유가족 모습. 고상현 기자재판부는 "자칫 사상 검증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족이 반발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따지려면 유죄 확정 판결에 준하는 완벽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변호인 역시 "검찰이 자의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왜 오늘 같은 증인신문을 해야 하는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조만간 4·3수형인에 대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