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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위령공간 주민 반발에…중국전시관 화장실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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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자구리공원 부지였으나…"혐오시설" 주민 반대하자 이전키로

제주4‧3유족회 오순명(79) 서귀포시지부 회장이 주민 반발로 옮기게 된 '4‧3 정방폭포 위령공간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이전 부지는 서복전시관 주차장 인근 공터다. 고상현 기자제주4‧3유족회 오순명(79) 서귀포시지부 회장이 주민 반발로 옮기게 된 '4‧3 정방폭포 위령공간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이전 부지는 서복전시관 주차장 인근 공터다. 고상현 기자
70여 년 전 제주 4‧3 당시 수백 명의 사람이 희생당한 서귀포시 정방폭포. 유가족의 숙원 사업이던 위령 공간 조성 공사가 주민들의 반발로 중단[관련 기사 3월 11일자 노컷뉴스 : 제주4·3 추모공간이 혐오시설?…주민 반발에 공사 중단]된 가운데 결국 다른 부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주민 반발에…결국 중국 전시관 화장실 옆 공터로

 
15일 서귀포시 서귀동 서복전시관 주차장 내 공중화장실 옆 공터. 제주4‧3유족회 오순명(79) 서귀포시지부 회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취재진을 만났다. 당초 200m 떨어진 자구리공원 25㎡ 부지에 '정방폭포 4.3위령공간'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주민 반발로 결국 이곳 부지로 옮기기로 한 탓이다.
 
4‧3 당시 정방폭포에서 아버지를 잃은 오순명 회장은 "그동안 주민들을 여러 차례 설득했다. 하지만 땅값이 떨어진다고 하거나 가게 손님이 안 찾는다는 등 위령공간을 혐오시설로 보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결국 도청 공무원과 논의 끝에 서복전시관 부지로 옮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2억여 원을 들여 자구리공원 25㎡ 부지에 위령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이곳에 정방폭포를 형상화한 위령 조형물과 연결로를 설치하는 내용이다. 위령조형물은 '어두웠던 과거의 문을 열어 진실과 화해의 빛을 맞이해 희생자 넋을 기린다'는 의미가 담겼다.

당초 계획된 위령조형물 설계 디자인. 제주도청 4·3지원과 제공당초 계획된 위령조형물 설계 디자인. 제주도청 4·3지원과 제공
올해 3월 중으로 공사를 끝내기로 했지만, 인근 주민과 상인의 극심한 반발에 지난 2월 17일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현재까지도 해당 부지에는 공사장 맞은편 아파트 주민과 상인들이 내건 '4.3 위령비 설치 결사반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현장에는 공사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새로이 선정된 부지는 지난 2003년 중국과의 수교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서복전시관 주차장 화장실 바로 옆 공터다. 문화재 설계 승인 변경 등의 행정절차를 거쳐 완공되면 유족들은 중국풍의 입구를 지나 화장실 옆에서 희생자를 추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복전시관에서 만난 이영희(61‧여)씨는 "자구리공원 부지가 탁 트여 있고, 사람들도 많이 다녀서 더 좋을 텐데, 이곳으로 옮긴다고 해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모(81)씨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 4‧3위령공간을 왜 혐오시설로 보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주민 반발로 옮기게 된 4‧3 정방폭포 위령공간 부지. 서복전시관 화장실 바로 옆이다. 고상현 기자주민 반발로 옮기게 된 4‧3 정방폭포 위령공간 부지. 서복전시관 화장실 바로 옆이다. 고상현 기자

다시 고개 든 혐오…"역사적 교훈…인식 개선 필요"

 
70여 년간 제주4‧3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뿐만 아니라 혐오로 고통 받았다. 군사정권 기간 연좌제 등으로 유가족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민주화되며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와 대통령 사과, 지난해 배‧보상 결정까지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며 유족도 비로소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방폭포 위령 공간 조성 공사 과정에서 혐오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연좌제 피해로 청년시절 고통 받았다는 오순명 회장은 "4‧3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다. 그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이 '폭도 새끼'라고 부르거나 연좌제로 고통 받았다. 현재 4‧3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 다른 혐오와 맞서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당초 예정됐던 자구리공원 부지. 현재까지도 반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고상현 기자당초 예정됐던 자구리공원 부지. 현재까지도 반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고상현 기자
사단법인 제주 다크투어 양성주 대표는 "일부에서 과거사를 바라볼 때 참혹하고 안 좋은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 정방폭포의 아름다운 경치도 있지만, 그 속에 담긴 4‧3의 아픔도 역사적 교훈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크 투어리즘으로 찾는 관광객들도 있다. 인근 상인들에게도 좋을 텐데 배척하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4‧3을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양 대표는 강조했다.

서복전시관 입구 모습. 고상현 기자서복전시관 입구 모습.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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