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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법꾸라지 김만배의 말바꾸기…'50억 클럽'이 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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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정영학 녹취록에서는 '50억 클럽' 자랑했던 김만배
법정에서는 "부끄러운 언어습관"…檢도 "디테일하게 거짓말"
검찰 신문조서에 가득한 김만배의 로비 시도…'허언'은 검찰 조서 무력화?

연합뉴스연합뉴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대장동 특혜 의혹은 정치권 풍문에 불과했습니다. 여야 모두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때라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음해하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죠. 하지만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 병채씨가 화천대유로부터 50억(세후 25억)에 달하는 퇴직금을 받았고, 박영수 전 특검의 딸도 비슷한 금액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연달아 밝혀지면서 특혜 의혹에 신빙성이 더해졌습니다. 특히 '50억 클럽'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화천대유가 정치권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했다는 심증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정영학 회계사 간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이들의 금품 로비는 성공적이었다는 인상도 자아냈습니다. 녹취록 속 김씨는 "50개(억)가 몇개냐"며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수남 전 검찰총장, 권순일 대법관, 곽상도 전 의원, 박영수 전 특검,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을 언급합니다. 한명당 50억원씩 300억원어치의 로비자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도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김씨가 곽 전 의원의 뇌물 관련 공판에서 갑자기 "허언이었다"고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에 전화해 화천대유가 꾸린 컨소시엄에 남도록 힘을 써줬다는 정영학 회계사의 진술에 대해서도 "농담이었다"고 했습니다. 앞서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 4월 30일 공판에서 "지난해 즈음 화천대유 양모 전무가 병채 씨에게 퇴직금 등 명목으로 50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반대했더니 김씨가 '컨소시엄이 깨지지 않게 하는 대가'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김씨의 '농담'은 당시 정 회계사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소리 치던 곽 전 의원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동업자들에게 자랑할 땐 언제고…농담, 허언이라는 김만배

2022. 06. 15 곽상도 공판
검사: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에 잔류하는 것을 두고 '알을 품고 있는 수탉은, 본인이 알을 낳고 있지 않지만 과연 누가 알을 낳을 것인가 궁금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요?

김만배: 저는 하나은행 위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직원들이 물으면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어떻게 구성되고 선정됐는데, 제가 농담으로 '아, 최순실이가 해줘서 그리고 병채 아버지가 해줘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에 곽 전 의원이 압력을 가했다고 한 본인의 주장은 '농담'이었다는 겁니다. 또 그 대가로 곽 전 의원의 아들에게 퇴직금 50억원을 줬다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항상 50억으로 팔았는데, 그건 제가 하도 허언을 많이 하다 보니까"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김씨가 거듭 허언이었다고 반복하니, 검사도 "되게 디테일하다"며 비꼴 정도였습니다.

2022. 06. 15 곽상도 공판
검사: (화천대유 고문료에 대한) 세금 납부는 받는 사람이 책임지는 거라고 했는데, 맞나요?

김만배: 진지하거나 계획된 게 아닌 그냥 대화였습니다.

검사: 계획되거나 진지한 걸 떠나서 50억을 지급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 중이지 않았나요. '변호사들에겐 고문료 방식으로 지급하면 된다, 그 경우 세금을 내야 하는데 받은 쪽에서 내면 된다고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김만배: 네.

검사: 증인은 박OO(박영수 전 특검의 딸)과 곽상도의 경우엔 고문료 지급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까? '두 사람은 고문료 지급으로 안 되지'라고 한 게 맞습니까?

김만배: 네.

검사: 박영수는 2015년 7월부터 고문직으로 일을 하다가 사임한 지 4년 가까이 경과한 후로 계속하여 특검으로 재직중이었습니다. 피고인 곽상도는 현역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결국 박영수와 곽상도는 화천대유 고문 채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증인은 '고문료 안 되지'라고 말한 것 아닌가요?

김만배: 네, 맞는데요. 거짓말도 좀 구체성을 띄고 싶어서.

검사: 당시 진술한 게 맞지만, 본인이 거짓말을 구체적으로 하고 싶어서 이런 말까지 했다는 거지요?

김만배: 네.

검사: 되게 디테일하게 거짓말을 하네요.

김씨 측은 이전 공판에서부터 '50억 클럽'은 허언이었고, 허언의 이유로 '동업자들에게 사업 비용과 직원 인센티브(공통비)를 더 부담시키게 하기 위해서였다'고도 진술했습니다. '허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도록, 김씨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일종의 근거를 댄 셈입니다. 이전 공판에서도 김씨 측 변호인은 동업자인 남욱 변호사에게 김씨가 자신의 활약을 떠벌리듯 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2022. 06. 08 곽상도 공판
김만배측 변호인: 법조 인맥을 들먹이며 증인과 정영학에게 비용 부담을 더 증가시키려고 했죠?

남욱: 네.

(중략)

변호인: 사업 수익이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김만배는 화천대유 직원에게 줘야할 성과금 280억원 책정했죠? 김만배는 이 성과금에 대해 공통비용 분담 요구했죠?

남욱: 네.

변호인: 증인, 정영학, 김만배 사이 공통비 얼마나 부담할지 두고 논쟁이 있었죠?

남욱: 네.

김씨 측 변호인은 "김씨는 (50억 클럽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법조계 인맥 도움을 받았다고 거짓말해도 남 변호사나 정 회계사가 쉽게 넘어갔고 이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도 없어서 공통비를 더 부담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종일관 법조기자 출신인 김씨가 인맥을 활용해 '50억 클럽'에 포함된 소위 고관대작들에게 돈을 줬다고 거들먹거렸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고 볼 수도 있는 지점입니다.

김씨는 '50억 클럽' 로비자금 외에도 화천대유 직원들 몫의 인센티브 280억원(공통비 일부)에 대해서도 허언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영학 녹취록에서는 2020년 10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정 회계사, 김씨가 성남시의 한 노래방에서 나눈 대화에서 김씨는 대장동 사업의 구조를 알고 있는 화천대유 직원들에게 입막음 비용으로 280억원 상당을 성과급으로 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2020. 06. 15 곽상도 공판
검사: 증인이 곽상도의 도움을 받아 하나은행 문제를 해결했다고 진술한 적은 있지만 허언에 불과했다는 입장이죠?

김만배: 네.

검사: 이와 관련해 증인은 검찰조사에서 일관되게 공통비 관련 유리한 입장을 취하려는 의도로 허언했다고 진술했는데 맞나요?

김만배: 뭐, 그런 취지가 많이 섞여있었습니다.

검사: 공통비 관련 유리한 입장을 취하려는 의미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십시오.

김만배: 곽병채한테 돈을 주는 게 공통비는 아니고. 공통비 의미는 직원들 인센티브 부분인데, 직원들 인센티브를 한 280억 정도 책정했었다. (중략) 우리가 돈을 많이 버니까, 이것은 '내가 반을 내고 너네가 1/4씩 내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겁니다.

누구 말이 맞을까…부담 커진 재판부

왼쪽부터 김만배 씨와 남욱·정민용 변호사왼쪽부터 김만배 씨와 남욱·정민용 변호사
김씨가 허언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데엔 결국 본인을 포함한 일명 '대장동 5인방(유동규·김만배·남욱·정영학·정민용)'의 검찰 진술과 스모킹건으로 불렸던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애당초 일인당 50억씩 준다는 게 저 세상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던 데다 동업자들과의 이익분배 과정에서 본인의 몫을 더 챙기려고 자신의 활약상을 과대포장 했다는 게 상당히 설득력 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대장동 공판 초창기 법정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요. 등사기가 작동되지 않아 법원 관계자들이 이를 고치는 동안 팔을 돌리며 체조를 하는 듯한 발랄한 모습을 보여줘 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확실히 다른 피고인들과는 달랐죠. 평소에도 과장해서 말하는 언어 습관을 가졌다는 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다만 다른 피고인들의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이 엇갈리면서 재판부(형사합의 22부)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장동 사건은 피고인들이 로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은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잘못을 떠미는 모습을 보여와서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유독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런 데다 물적 증거가 많지도 않은 데다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에도 이미 의문이 제기된 상황입니다.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지는 고스란히 재판부의 몫. "대장동 재판부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말이 법원 내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미국의 판타지 소설가 짐 버처의 작품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검사가 "당신은 양심적인 사람이냐"고 물으니, 주인공은 "법정에서 주로 나오는 질문은 아니네요. 왜냐면 양심적인 사람은 당신에게 '나는 양심적이다'라고 말할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나는 양심적이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후자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도 있겠죠"라고요.

김씨의 법정 증언과 검찰 진술, 다른 대장동 피고인들의 검찰 진술 중 무엇이 더 설득력 있는지는 오로지 진술들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judge)만으로 가려져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판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가 저지(Judge)인 이유를 알 것 같은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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