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인 1937년 준공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충정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시는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충정아파트 철거 내용을 담은 '마포로 5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정비구역·정비계획 변경결정안'을 수정가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의 모습. 류영주 기자한국 근현대사의 굵은 생채기를 지닌 가장 오래된 아파트 '충정아파트'가 철거된다.
서울시는 15일 열린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마포로5구역 정비계획안이 수정 가결됐다고 밝혔다.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서울시 건축물대장 기준) 지어진 국내 최고령 아파트다. 1932년 지어졌다는 기록도 있는 이 아파트는 일제강점기 건립자인 도요타 다네오(豊田種松)의 이름을 따 '도요타아파트'로 불리웠다가 해방이후 도요타의 한자명인 '풍전아파트'로 불리기도 했다. 50·60년대 호텔로, 1970년대 '유림아파트'로, 이후에는 지금의 지명을 딴 '충정아파트'로 바뀌었다.
본래 4층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한 때 호텔로 운영되며 5층으로 증축해 80여년 간 국내 최고령 아파트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박원순 전 시장 재임시절 지역 유산으로 보호가치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보존하기로 했지만 몇년 전부터 생활하수가 건물 내벽 사이로 스며들면서 붕괴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과 주민들의 민원이 커지자 결국 철거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대신 철거 부지에 충정아파트의 역사를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근현대사의 생채기 고스란히 팔순 넘은 충정아파트에
6.25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의 모습. 군인들 뒷편의 건물이 지금의 충정아파트다. KTV 캡처
충정아파트가 지나온 근현대사의 긴 시간만큼이나 몸집에 새겨진 상처도 적지 않다. 1930년대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어진 최초의 철근콘트리트 구조의 아파트로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한창 태평양 전쟁이던 시절이어서 값비싼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지명 충정로는 구한말 대신 민영환이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뒤 그를 기려 시호 충정공(忠正公)에서 따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다케조에쵸(竹添町, 죽첨정)라 불리웠는데 주(駐)조선 일본공사였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의 성에서 가져왔다.
충정아파트는 당시 경성의 8층짜리 고층 호텔인 '반도호텔'과 함께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현대식 주거공간으로 각광을 받았다. 해방 직전 한 사업가가 인수해 잠시 호텔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주인을 잃고 방치되거나 무단 점거하는 일이 빈번했다.
6.25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서울 건물이 파괴되거나 크게 훼손됐지만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위세 때문인지 용케도 소실을 면했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이 건물을 인민재판소로 사용하면서 수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서울을 수복하고 한국전쟁이 끝나자 미군은 이 곳을 '트래머호텔'로 부르며 유엔군의 숙소로 사용했다.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의 모습. 류영주 기자이승만·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지던 시절 충정아파트를 둘러싼 희대의 사기극이 발생한다. 1959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들 6명을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라는 남성이 등장해 당시 3선을 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서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맡게된 박정희의 눈에 들어 1962년 3월 충정아파트의 관리권을 넘겨받는다. 그의 사연을 들은 미군이 트리머호텔을 수리해줬다고 한다.
김병조는 4층이던 충정아파트를 5층으로 무단 증축해 '코리아나호텔'로 바꾸고 운영하며 벼락 횡재를 하게 된다. 하지만 6명의 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었다는 사연은 머지않아 거짓으로 밝혀져 그 해 8월 구속된다. 정부는 양도 계약을 취소하고 몰수하여 호텔은 폐쇄됐다. 김병조가 어떻게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사기행각을 벌여 훈장을 수여받고 충정아파트 건물을 무상으로 가질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안전 심각' 문화재 지정 포기…입주민 재산권 갈등, 결국 철거
이후 충정아파트는 1970년대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다 1975년 건물 저당을 잡고 있던 서울은행으로 명의가 넘어가면서 건물은 다시 호텔에서 아파트가 됐다. 이름도 '유림아파트'로 바뀌었다. 그러다 1979년 충정로 왕복 8차선 확장 공사로 아파트의 3분의 1이 잘려나갔다. 당시 입주해 있던 52가구 중 19가구가 헐렸다. 철거된 19가구 중 3가구가 건물 중앙계단 자리에 집을 증축하면서 현재와 같은 독특한 모습을 띄게 됐다.
무려 칠순이 된 2008년 마침내 충정아파트는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계획됐지만 복잡한 재산권 처리 문제로 재개발은 흐지부지 됐다. 원 거주자와 1979년 이후 공용공간 무단 점유세대, 불법 증축한 5층 세대와 4층 이하 세대간 재산권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준공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충정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시는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충정아파트 철거 내용을 담은 '마포로 5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정비구역·정비계획 변경결정안'을 수정가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의 모습. 류영주 기자이후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라는 상징성을 가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당시 문화재청 조사결과 5층 불법증축으로 인한 안전문제가 심각해 문화재 지정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화재 지정을 포기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 미래유산'을 지정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과 안전문제로 진전을 보지 못하다 결국 80여년 만에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한편, 서울시는 인근 충정각은 보존을 고려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보전정비형 정비수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1900년대 초 건립된 충정각은 서울에 남은 서양식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첨탑(터렛)이 있고, 원형도 잘 유지돼 보존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시는 아울러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40년이 지난 마포로5구역의 정비계획을 재정비해 충정로와 서소문로 간 도로가 연계되도록 했다. 마포로5구역의 구체적 사업계획은 향후 주민제안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