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질문이 참 아팠나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첫 내각 인사를 두고 이른바 서오남(서울대 출신.50대.남성) 편중 비판이 줄기차게 나왔지만 한결같이 외면해왔다.
"능력만 보고 인사하겠다"며 "여성 할당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내각에 여성의 비율이 낮다"는 외신 기자의 느닷없는 질문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김상희 국회부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틀 뒤인 26일 추가 발표한 장차관 3개 자리 모두를 여성 전문가로 지명했다.
윤석열 정부에 여성 장관의 비율이 5명으로 늘어나면서 30% 여성할당 구색을 맞췄다는 평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런데, 인사 면면을 들여다보면 "또 교수냐?"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27일 여의도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인 박순애 교수는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다. 차관급인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서울대 교수다.
교수는 장차관 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정치하지 말라는 법은 더욱 없다. 전문가 영역에서는 교수가 공직자 출신보다 나을 수 있다.
문제는 자질과 품성의 문제다. 사퇴한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수십 차례 해명을 내놓았지만 '아빠찬스' 의혹을 떨치지 못했다.
이에 앞서 사퇴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부도덕성과 어이없는 해명은 국민들에게 분노를 넘어 허탈감까지 안겼다.
윤석열 정부 내각 19명 가운데 5명이 현직 교수다. 낙마한 장관 후보자 2명이 공교롭게도 모두 대학 교수다.
교수들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만의 현상이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있었고 민주화된 이후에도 보수와 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교수들이 정부에 참여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 1순위'가 됐다는 점이다.
사퇴 입장 밝힌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황진환·윤창원 기자 관료나 정치인 출신에 비해 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비율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을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교수들은 학계에서 최고의 기득권이자 공직인사에서 항상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다.
정치인과 관료 출신에게 부족한 전문성과 개혁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러나, 자녀들을 아빠찬스를 이용해 의대에 편입학시키거나 몰빵 장학금을 받는 등 각종 특혜를 누리고 논문표절과 탈세, 심지어 음주운전 경력까지 있다면 능력을 우선할게 아니다.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일반 국민보다 높은 도덕지수를 기대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물며, 국정을 책임지는 장관에게 이 정도의 도덕성과 품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6·1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6일 서울 한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관계자가 준비를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선거 때마다 장차관 인사 때마다 교수 출신들의 행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교수들에게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딱지가 붙었다. 굳이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정치교수'다.
윤석열 정부 장차관 외에 정부 위원회, 대통령실에도 폴리페서들이 즐비하다.
폴리페서들은 대체로 휴직계를 낸다. 교수직을 사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의실을 박차고 나간 교수님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 몫이다.
폴리페서들에게 학문과 지식을 팔아 권력과 명예를 쫓는 곡학아세(曲學阿世)는 하지 말라는 당부는 길거리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된지 오래다.
도덕성 문제로 사퇴한 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들 후임에 다시 교수 출신이 임명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에는 이런 폴리페서들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는 정당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순발력이 보통이 아니다"라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칭찬에 설마 으쓱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어쩌면 윤석열 정부에서도 계속될지 모르는 폴리페서들이 인사청문회도 잘 통과하고 장관직도 잘 수행하기를 바란다.
폴리페서들의 잇따르는 출현과 몰락이 "또 교수냐?"라는 국민들의 한탄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